영화를 본다는 즐거움... ★★★★☆
※ 영화의 결론을 포함한 주요한 설정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스토리만 놓고 보면 그다지 독특하다거나 새로운 건 아니다. 간략히 정의해 보면, 러시아 출신으로 밀라노 상류 가문인 레키가에 시집 와 세 남매의 엄마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엠마(틸다 스윈튼)는 어느 날 장남의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에도아르도 가브리엘리니)를 만나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빠져들게 된다. 그 욕망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파국이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이 엠 러브>를 보는 두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 콩닥 뛰고, 온 몸에 짜릿짜릿한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한 마디로 말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고나 할까. 어떤 요소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러한 흥분과 감동을 느끼게 한 것일까. 고전 영화가 떠오르는 영상미,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미장센, 귀에 착착 감기는 음악,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 롱테이크, 거기에 틸다 스윈튼의 연기까지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요소들의 조화.
<아이 엠 러브>는 처음 문을 여는 시점부터 마치 오래된 고전 영화를 보는 듯한 설렘에 빠져들게 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글자체의 위엄이라니.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느닷없는 부감숏이라든가 클로즈업은 마치 ‘여러분이 보는 것은 바로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라는, 그러니깐 ‘바로 이것이 영화다’라는 걸 잊지 않게 일깨워 주는 듯도 하다.
카메라의 유려하면서도 화려한 움직임은 비유가 적당할진 모르겠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듯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킨다. 특히 중간에 몇 차례 등장하는 롱테이크는 실로 황홀하다. 마지막 파티 장면을 돌이켜보면, 엠마는 아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엠마는 연인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에 집중해 있는 상태) 파티장을 빠져나와 계단을 내려가 지하 주방에 있는 연인을 만난 후 바로 돌아서서 계단을 오른다. 등 뒤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엠마를 따라가다가 곧장 가로질러 지하로 급하강한 뒤 돌아 나오는 엠마의 등을 비추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그 어느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보다 더 활력이 넘치고 드라마틱하며 긴장을 조성한다. 바로 이 때 느끼는 긴장감은 뒤이은 예상치 못한 파국의 전조였던 셈이다.
<아이 엠 러브>는 딱히 대사량이 적다고 보기는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대사보다는 몸짓이나 표정으로 말하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배우들의 표정이나 몸짓도 중요하지만, 화면의 색감이나 연출도 무엇보다 중요하게 대사를 대신해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한다. 엠마와 안토니오의 첫 번째 섹스는 흐릿한 가운데 짧게 스치듯 지나간다. 이는 준비되지 않은 돌발적 섹스라는 점에서 그러한 것이며, 두 번째 섹스는 반대로 지나치리만큼 섬세하게 과정을 밟아 온 몸을 구석구석 클로즈업으로 잡아낸다. 벌거벗은 신체를 세밀하게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느낌으로 인해 묘한 엄숙함마저 느껴질 정도다.(꽃, 풀, 곤충의 클로즈업) 첫 번째 섹스 이후 엠마의 들뜬 표정이나 두 번째 섹스 이후 엠마의 편안해진 표정 역시 마찬가지다.(이 때 비로소 엠마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관객에게 말해준다. 그러니깐 관객은 이때까지 엠마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접하지 못한다) 단적으로 안토니오의 음식을 먹으며 황홀경을 느끼는 엠마의 표정이야말로 지금까지 레키가의 며느리로 살아온 날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행복, 즉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표정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미장센이라든가 영상과 어우러진 음악의 조화는 굳이 따로 거론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이 영화를 얼마나 아름답게 채색하고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따로 말해야 할 것은 음식이라는 부분이다. <아이 엠 러브>가 음식 영화가 아님에도 무엇보다 음식이 주는 비중은 높게 느껴진다. 영화는 처음부터 탄크레디의 아버지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엠마와 하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접시가 놓이고 맛깔나게 차려진 음식이 등장한다. 영화는 몇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장의 손놀림과 곱게 차려진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에 주목한다. 엠마가 안토니오에게 감정을 느끼게 되는 계기도 음식을 입에 넣는 장면으로 묘사되며, 아들이 엄마와 친구의 관계를 눈치 채게 되는 계기도 음식에서 비롯된다. 음식에 대한 강조는 음식이 인간이 생존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에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 즉 등장인물들이 사회적이거나 가정적인 금기를 넘어서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갈구한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사랑한다는 욕망은 먹고 싶다는 욕망처럼 포기하거나 유예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엠마의 욕망은 가족 내에 예기치 않은 사고를 불러오게 되고, 대체로 이런 상황에서 사랑을 포기하고 가정에 안주하고 마는 많은 영화와 달리 엠마는 스스로의 욕망, 사랑, 행복을 선택한다. 이 마지막 상황에서 엠마는 두 명의 여성과 감정 교류를 하게 되는데, 첫 번째 여성은 레티가의 오래된 하녀이고, 두 번째는 딸이다. 엠마와 하녀의 포옹은 그 자체로 연성연대라는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마도 엠마가 생각하기에, 그리고 하녀가 생각하기에, 신분은 다르지만 노동을 하는 둘의 처지는 동일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어머니를 이해하는 딸의 눈물도 그 자신도 남이 이해하기 힘든 사랑을 하고 있다는 동지애적 관점의 이해와 연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틸다 스윈튼의 연기를 빼놓고 이 영화를 얘기할 수는 없다. <아이 엠 러브>에서 틸다 스윈튼의 존재감은 더 없이 크고 넓게 느껴진다. 미묘하게 변화하는 표정이라든가 몸짓, 손짓의 그 아련함. 손으로 끈을 꼬아대는 장면이라든가 첫 번째 섹스를 끝낸 후의 그 들뜬 표정, 영어가 오가는 자리에서 알아듣지 못해 짓는 멍한 표정, 딸에게 이해를 구하는 그 손짓과 얼굴 표정 등. 한 평론가의 다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예약이라는 극찬은 결코 과장된 칭찬이 아니었다.
※ 이 영화엔 신자유주의 시대의 역관계가 묘사되어 있다. 세계화는 오랫동안 지켜왔던 가업을 포기하도록 강제한다. 물론 그 가업의 성장도 가혹한 자본주의적 법칙으로 인해 가능했음은 분명하다.
※ 이 영화를 보러갔을 때, 약간의 감기몸살 기운으로 몸 상태가 상당히 좋질 않았다. 취소하고 다음에 볼까 하다가 그냥 갔는데, 막상 좌석에 앉으니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런 영화들(?)이 나름 지루한 지점이 있어서 결국엔 살짝 잠들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그런데 그런 우려는 일종의 기우였다. 이동진 평론가가 남긴 ‘잠들어 있던 세포들의 일제 봉기!’라는 20자평이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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