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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잔혹해지고 치밀함 뒤 서글픔 황해
sh0528p 2010-12-24 오전 1:37:28 1385   [2]

과연 <추격자>를 뛰어 넘는 작품일까?

 

 

 


<추격자>는 영화의 외적 조건만으로만 보면 절대 정공할 수 없는 영화였다. 당시만해도 무명 감독에 속한 감독의 작품이었고 영화의 내용도 잔혹한 살인마를 추격하는 스토리이다보니 영상은 불쾌하고 무거운 마음을 누를 수 없는 작품이었다. 거기에 당연한 성인 전용 등급까지...하지만 이 작품은 시사회때부터 흥행이 예견되었다. 영화가 가진 모든 악조건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마술적 매력은 <추격자>의 신드롬을 일으키며 흥행 몰이를 했고 배우들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으며 연출을 맡은 나홍진 감독은 화려한 스폿을 받으며 단연 주목받는 감독의 대열에 합류했다.

 

<추격자>의 흥행 요소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게지만 잔혹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최대로 절제한 영상과 필요할 때마다 감정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조적인 시선으로 연쇄살인범을 쫒는 남자의 사투를 빠른 스피드로 담아낸 점이 압권이었다. 두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나홍진 감독의 연출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기에  이 세남자가 다시 뭉친 새로운 작품이라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이미 <황해>는 수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드디어 2010년 12월 <황해>를 공개했다. 어떤 영화일까란 기대만큼 과연 <추격자>를 뛰어 넘을 작품이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어떤 결과를 보여줄 지 자못 궁금했다. 

 

 

 

처음 표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에 육박하는 영화라니... 왠만한 작품이면 2시간 수준에서 편집을 해 개봉했을 법한데도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은 156분이나 된다. 과연 이 시간동안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일까? 이들이 보여주는 항해는 거칠고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장면을 지독히도 감정없는 차가운 시선으로 담아낸다. 불쌍하고 애처롭지만 도와주는 사람없이 혼자서 도망쳐야 하는 남자와  그런 그를 끝까지 죽이려 추격하는 또 다른 남자들의 모습은 흡사 투견판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투견들을 보는 듯하다. 날카로운 이빨 대신 칼이나 도끼로 내가 살기위해 누군가를 살인하는 모습 목숨을 건 싸움판 그 자체다.

 

<황해>는 모두 4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첫번째 이야기인 '택시 운전수'편에서 하정우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이며 왜 이 남자가 살인 제의를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에 돈벌러 가는 아내를 위해 필요했던 돈 육백만위안으로 사체업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채 택시운전수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구남(하정우). 그는 마작을 하며 나락으로 추락한 삶에서 희망을 찾지만 돌아오는 건 모든 걸 날린 뒤의 허무함 뿐이다. 이제 그에겐  오로지 아내를 향한 증오뿐이다. 바로 그때 구남에게 면가(김윤석)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한국에 가서 사람을 죽이고 오라는 ...

딸을 돌봐주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차마 해서는 안될 일임을 알지만 구면은 아내를 만나야 한다는 목적과 헤어날 수 없는 빚을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에 다른 선택에 여지가 없다. 10일안에 상대를 죽이고 아내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길고 긴 항해를 견디게 했고 드디어 그가 죽여야하는 남자의 집에 서게 한다. 그는 누구이고 왜 죽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알 필요도 없다. 오로지 그를 죽이고 면가가 시킨대로 엄지 손가락만 가지고 가면 되는 것이다. 그 전에 그에겐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구남의 인생을 나락으로 던져버린 한때는 사랑했던 아내... 그녀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두번째 이야기인 '살인자'에서부터 이야기는 구면의 예상과 달리 복잡하게 꼬여간다. 죽여야하는 대상을 다른 남자들이 먼저 죽이는 상황을 지켜만 보고 뒤늦게 뛰어들어 오히려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지명수배를 받게 되는 구면. 거기에 그를 추격하던 경찰은 구면의 의사와 관계없이 벌어진 사고로 인해 경찰까지 희생이 되면서 그를 추격하는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강해진다. 그럴수록 살아야한다는 삶에 대한 의지는 도저히 끝이 없는 도망의 순간에도 동물적 감각을 발휘해 삶의 길을 만들어 낸다.

 

그 순간, 구면보다 먼저 남자를 죽인 배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는 왜 남자를 죽인걸까?  죽은 남자는 교수라는 신분과 달리 유흥업소를 관리하며 이중적인 삶을 살았었고 서로의 금전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운수업체 사장은 교수를 죽인 것인가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예정된 수순대로 사장은 비밀을 지키게 하기 위해 구남을 죽이려 하고 그 수순은 면가에까지 손길을 뻗치지만 오히려 양날의 검처럼 사장에게 칼 끝이 돌아오며 피할 수 없는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뒤이은 세번째 이야기 '조선족'과 네번째 '황해'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추격은 계속된다. 면가는 구남, 사장 패거리는 구님을 쫒다가 상황이 뒤바뀌어 구남은 사장을, 면가도 사장을 추격한다. 서로 물리고 물린 흡사 꼬리물기 게임처럼 상대의 꼬리를 잡기 위한 추격은 숨쉴틈없이 질주를 계속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손도끼로 쳐죽이고 두툼한 뼈다귀는 머리를 으깬다. 특히 면가를 죽이기 위해 사장의 패거리를 보낸 장면에선 살육의 정점을 이룬다. <아저씨>에서처럼 멋지게 포장되지 않은 마치 <올드보이>의 복도에 혈투를 보는 듯한 현실적인 모습이다. 이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죽이지않으면 내가 죽는다' 바로 이것뿐이다.

 


거기에 <추격자>보다 엄청나게 커진 스케일이 압권이다. 구남과 면가가 도로를 질주하며 벌이는 자동차 추격장면이나 구남이 다시 돌아가기 위해 밀항을 시도하다 대형 트럭을 타고 도주하는 장면에선 막대한 비용을 들인 멋진 장면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추격자>에서 하정우를 추격하는 남자가 단 한명이었던 것에 비해 <황해>에선 구남을 잡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뛰어 다닌다. 총을 쏘며, 때로는 칼이나 도끼를 들고 달려든다. 이런 상황에서 구남의 선택은 한가지 '살기위해선 도망쳐야 한다'는 것 뿐이다.

 

하지만 <황해>는 이런 영상만이 볼거리인 영화는 아니다. 길고 긴 상영시간을 통해 말하려는 이야기는 숨겨져있다. 그 시작은 '왜 면가는 남자의 엄지를 갖고 오라고 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사장은 지시한 살해를 싸게 처리하기 위해 조선족을 쓴거라는 말을 한것으로 보아 면가에게 지시한 것이 그가 아니라면 누가 면가에게 살인을 청부한 것일까로 이어진다. 이 질문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선 영상만이 아니라 이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놓쳐선 안된다. 불행히도 감독은 친절하게 답을 보여주지 않기에 순간을 놓쳐서는 안된다. 다행히 정말 중요한 시점에선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두번이나 반복해 주기도 한다. '연길에 친구의 애인이 누구라고?" "면가"라며...

 

영화는 결말을 향해 치닫으면서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다. 그 숨겨진 실체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추격자>와 <황해>가 다른 큰 차이점으로,  스토리가 보다 치밀해지고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얽혀있는 복잡한 구도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대사는 구타를 심하게 당한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거나 죽어가는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와 놓치기가 쉽다. 또 조선족 말은 알아듣기가 쉽지 않은 것도 부담이다. 과연 이들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내가 사라진 뒤 구남은 분노와 증오로 삶이 변했다.  청부 살인을 교사한 사장도 정부의 바람을 들먹이며 죽어간다. 교수의 아내 또한 이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비밀스런 인물로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면가 역시 행복과는 거리가 먼 인생으로 물질과 삶에 집착하며 도전하는 무리에 처절한 응징만을 일삼는 불행한 인간이다. 이들 모두는 마치 깨진 액자의 행복한 미소처럼 삶에 희망이 없는 파괴된 인생들이다. 이들의 관계는 철저히 혼자이고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정도일 뿐이다. 마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모두 미치도록 외로운 존재인 것처럼...

 

이런 관계를 따라가는 카메라의 시선 또한 지독히도 차갑고 냉정하다. 도무지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TV에서 여자의 토막 살인 뉴스를 보며 자기 아내일지도 모르는 여자의 죽음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감자를 먹으면서 구남이 무표정하게 흘려 듣는 장면처럼 차갑고 냉정하게 바라본다. 이런 시선은 <추격자>에서 느낀 서글픈 시선보다 더 강렬하다. 그래서 일까? 이들의 결말은 더 외롭고 비참해 보인다.


"에필로그"


3시간 가량되는 긴 항해를 마친 느낌은 왠지모를 서글픔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에서 누가 이기고 졌는가, 또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은 걸까? <황해>는 <추격자>만큼의 긴박함으로 꽉찬 느낌은 아니지만 긴 시간을 짜임새있고 긴장감 넘치는 구성으로 놀랍게 그려낸다. 그 핵심은 배우들의 연기와 고생한 흔적 그리고 나홍진 감독 특유의 연출력 때문이리라. 기대만큼 만족스런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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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2010, Hwanghae / The Yellow Sea)
제작사 : (주)팝콘필름 / 배급사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20세기 폭스
공식홈페이지 : http://www.hwang-h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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