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재밌지만, 허술한 마무리... ★★★☆
※ 영화의 주요한 설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찰에 검거된 골동품 밀매범인 창인(한석규)은 함기수(박원상)가 값나가는 골동품을 집에 숨겨두고는 사망하자, 출소 후 함기수의 미망인인 연주(김혜수)와 딸 성아(지아)가 사는 집에 들어가 조용히 훔쳐 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작가로 위장한 창인은 소설을 쓰기 위해 조용한 집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고는 2층에 세입자로 들어온다. 남편을 잃은 뒤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연주는 창인과 술을 마시며 자신의 푸념을 늘어놓다가 생각지도 않게 잠자리를 하게 되고, 창인에게 점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창인의 목적은 오로지 그 집에 숨겨져 있는 거액의 중국 골동품.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보물은 나오지 않고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간다.
<이층의 악당>이라는 조금은 뻔해 보이는 제목의 영화에 관심을 갖고 관람을 결정하게 된 건 이 영화에 한석규, 김혜수라는 걸출한 배우가 출연했기 때문이 아니라, <달콤, 살벌한 연인>을 연출한 손재곤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단지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달콤, 살벌한 연인>의 이미지는 대단히 인상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을 돌이켜 볼 때, 흥행을 어느 정도 바라볼 수 있는 톱이 아닌 어중간한 지위의 배우로서 일궈낸 성과는 온전히 손재곤 만의 성과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맞춤형 캐스팅, 언어의 유희를 통한 스크루볼 코미디로서의 재미, 범죄스릴러와 로맨스를 결합한 독특한 형식의 <달콤, 살벌한 연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과연 나름 톱스타로서 진용을 꾸린 <이층의 악당>에서도 여전히 살아남아 관객을 매료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이층의 악당>은 <달콤, 살벌한 연인>을 재밌게 관람했던 관객이라면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때 느꼈던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층의 악당>에서 역시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이자 특징은 언어의 유희에 의한, 그러니깐 일종의 스크루볼 코미디로서의 재미다. 크게 터지는 장면은 없지만, 잔재미가 끊이질 않는다. 객석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킥킥대는 웃음소리는 이를 증명한다. 여기엔 교묘하게 관객의 예상을 비껴나가는 데에서 오는 어긋남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하나 들자면,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성아는 어느 날, 학내 킹카 현철(동호)로부터 수모를 당하게 되고, 이를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창인에게 현장을 들키고 만다. 창인은 성아의 고민을 듣고는 안경을 벗어보라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 장면은 <록키>를 포함한 많은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안경을 벗으니 이쁘네’ ‘이쁜 얼굴 가리지 마’ 등등의 답변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창인은 “그래, 안경 잘 골랐구나. 안경이 너의 단점을 잘 가려주네”라며 진지한 표정으로 상담(?)을 해준다.
다음으로 이 영화는 전편과 마찬가지로 적격 캐스팅에 의해 재미가 배가됨을 느낄 수 있다. 전형적인 사기꾼과 인간적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창인은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석규가 처음으로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서울의 달>의 제비를 연상시키는 지점이 있다. 달리 말하자면, 어쩌면 창인 역은 한석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캐릭터일지 모른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는 연주 역의 김혜수도 끝까지 흥미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TV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순한 이미지가 있는 유키스 동호의 이미지를 변주해 활용하는 등 요소요소에 등장하는 단역마저도 맞춤옷을 입은 듯 제격이다.
마지막으로 <이층의 악당>은 의외로 스릴러 장르적 매력도 듬뿍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연주는 죽은 남편에 대한 얘기를 창인에게 하다가 “재산증식을 위해서는 역시 아파트를 샀어야 해”라며 한탄한다. 이러면서 연주는 “굳이 땅이 있는 집이 좋다고”라는 식의 얘기를 한다. 이는 언뜻 남편 함기수가 보물을 땅에 묻은 건 아닐까 하는 예상을 하게 한다. 감독이 의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장르 팬의 예상을 깨는 일종의 맥거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적 공간이 저택 내부에서 정원으로 확장되면서 이웃집 아줌마의 관음증적 취미로 인해 주인공에게 위기(이런 예상으로 보면 히치콕의 영화가 떠오른다)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상은 무참히, 너무나 어처구니없게 깨져버린다.
<이층의 악당>에 언어의 유희에 의한 코미디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 이 영화 최고의 장면, 최고의 재미는 슬랩스틱 코미디로부터 나온다. 보물이 숨겨져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창고에 몰래 들어간 창인이 그곳에 갇혀서 지내다 겨우 밖으로 나오는 장면은 한 마디로 최근 한국 코미디 최고 명장면이라 할 만하다. 충분히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영화임에도 뭔가 역할을 할 듯 싶었던 캐릭터들의 소모적 활용이라든가 특히 성급하면서도 허술한 마무리는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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