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음악과 함께 세밀하게 표정을 살핀다... ★★★☆
영화의 도입부는 예상치 못하게 유럽의 한 폴란드인이 걸어온 전화에서 시작한다. 도대체 왜 그녀가 말없이 떠났는지 알고 싶은 폴란드인은 그녀가 수첩에 남긴 전화번호들을 찾아 그녀의 행방을 좇는 중이다. 왜 떠났을까? 그 질문에 과연 정답은 있는 것일까? 세연(염보라)은 게이라고 알려진 영수(오창석)를 사랑하게 된다. 둘의 첫 섹스는 왠지 낯설고 불편하며 어색하다. 카메라는 그들의 첫 섹스 장면을 느리게 복기하듯 보여준다. 은희(정유미)는 헤어진 연인 현오(윤계상)를 만나 화를 낸다. 너 때문에 사랑을 할 수 없게 됐다며, 책임지라고 윽박을 지른다. 현오는 어찌할 줄 모른 채 길거리에 주저앉고 만다. 영수와 동거 중인 운철(장서원)은 영수가 세연을 사랑하게 됐다며 관계 정리를 요구하자, 절망감에 영수에게 험담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영수에 대한 감정 정리가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같이 음악을 하는 주영(윤희석)과 혜영(요조)는 남산길을 걸으며 사랑에 대한 느낌들을 이야기한다. 우정과 사랑 사이의 묘한 거리감은 좁혀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다.
스토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조금만 더 가까이>는 도입부를 제외하고 네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도입부는 이 모든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듯 느껴진다. 그러니깐 어쩌면 이 영화는 사랑하는 사이가 왜 멀어지게 되며, 그 또는 그녀는 왜 자기를 떠났을까 또는 떠나려고 할까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 찬 듯 보인다.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가 대체로 부딪치게 되는 문제들에서 <조금만 더 가까이>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그건 영화가 품고 있는 이야기들의 연결지점이 매끄럽지 못하며, 그저 개별적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조금만 더 가까이>의 에피소드들은 각각 다른 감독들에 의해 연출된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한 아쉬움은 더 크게 느껴질 소지가 있다.
물론 <조금만 더 가까이>는 스토리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는 아니다. <조그만 더 가까이>는 사랑에 끝나는 지점에서, 또는 끝난 후에, 또는 어색한 인연이 만들어지는 순간의 느낌과 이미지, 감정들을 소중히 보듬어 안는 영화다. 영화는 사랑에 들뜨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당사자들의 표정을 가까이 다가가 세밀하게 살피고, 몸짓 하나 하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몸에 흐르는 정액을 보면서도 불결하다거나 찝찝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더 가까이>는 인상적인 이미지들의 총합처럼 느껴지며, 그런 느낌이야말로 연애라는 과정의 느낌일지도 모른다. 만약 운철이 영수에게 당장 집을 나가라며 소리치다가 돌아서서는 나가지 말라며 젖은 목소리로 얘기할 때,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였다면, 당신은 여전히 사랑할 힘이 남아 있는 것이다.
※ 얼마 전, <조금만 더 가까이>의 관객 일만 돌파 기념 공연 및 일일 호프를 연다는 소식을 트위터에서 보았다. 만 명 돌파도 대단한 기록으로 평가되는 게 바로 독립영화의 현실이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재미없다거나 대중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관객이 적게 드는 게 아니다. 이제 영화의 흥행 여부는 상당 부분 배급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랄까.
※ 이 영화와 관련해 기억나지 않는 모 언론 모 기자의 기사를 보면서 무지 화가 치밀었다. 그 기자는 윤계상의 이번 출연 작품도 흥행 참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윤계상을 흥행 실패 배우로 지칭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무책임하고 무식한 기사가 넘쳐난다면 나름 유명한 배우들이 과감하게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위에 말했듯이 저예산과 소규모 개봉으로 인해 만 명만 넘어도 성공한 편이라며 자축하는 현실에서 흥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거의 출연료도 받기 힘든 독립영화에 출연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줘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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