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시맨>의 주인공 현석은 방황하는 청년이다. 외면적으로 그의 고통은 이명(耳鳴)현상이다. 가수로 살아온 그에게 이건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노라면 그가 낯선 타지에서 며칠을 보내는 건 꼭 그 때문이 아니다. 어쩌면 그가 앓는 건 청춘이라는 이름의 병인지도 모른다. 지금 어두운 복도를 걷는 그에게 결국 다다르게 될 미래는 너무도 불투명하고 불안한 곳이다. 이제 한 걸음만 내딛으면 낭떠러지에 다다라 사회라는 거센 파도를 향해 번지점프를 해야 하는 그에게 여행은 일종의 도피이자 위안인 셈이다.
얼핏 보기에 <오이시맨>은 심심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그 여행에서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길에서 현수는 치명적인 사건을 겪지도 않고 거창한 깨달음을 얻지도 않는다. 메구미 또한 격렬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말이 통하는 또래이거나 그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눈에 띄는 사건도 없고 등장하는 인물도 적은데다 대사조차 그리 많지 않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지루하냐 하면 꼭 그렇진 않다.
이 영화에서 여백을 메워주는 요소는 소리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음악과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뿐 아니라 무음에 가까운 절제된 사운드는 소소한 이야기를 확장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 텅 빈 소리는 관객 또한 현수처럼 홋카이도 북쪽 지방인 몬베쓰의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으로 빨아들일 수 있도록 만든다. “나는 내 안에서 조금씩 음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날 둘러싼 이 소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현석의 독백처럼, 자극적인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이 순백의 아름다움은 비로소 스스로의 내면을 향한 여행을 가능하게 만든다. 전작 <허스>를 통해 세 여인의 쓸쓸한 내면을 알래스카의 대자연에 비췄던 김정중 감독은 청춘의 거센 박동을 고요한 홋카이도의 풍경을 통해 위로해준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케와키 치즈루의 여전한 매력과 이민기의 노래 실력을 확인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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