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맹"이라는 단어는 영화의 키워드이다.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것은 그녀에게 고통을 줄수 있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응하지 않는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고상태의 아내의 취미가 요리라는 설정은 함축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맛을 감별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색다른 요리들을 창출해나간다. 그것은 그녀의 삶이며 유일한 행복이다. 여기에 그녀의 행복감을 절충시켜주는 또다른 키워드는 아이들 역시 미맹이라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해주시는 맛모를 음식들을 맛있게도 먹어댄다.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늘 감사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건 정말 크나큰 문제다. 아이들의 아버지 미맹부인의 남편 주인공 고상태는 결정적으로 미맹이 아니다. 그는 맛을 느낀다. 간을 느낀다. 그런고로...하루하루가 그는, 생지옥이다. 온가족이 불편함없는 하루세끼의 식탁메뉴가 그에겐 너무나 불편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영화. 그런 고상태의 애로사항은 철저히 무시하며 저벅저벅 걸어 지나간다. 그저 조금 불편할뿐. 주인공 고상태는 별...말을 하지 않는다. 매끼마다 느끼는 음식맛의 부조리한 세계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고상태는 함구한다. 왜냐면...그는 무능한 가장이기 때문이다. 무능한 가장이 반찬투정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사실이다. 그는 반찬투정을 할수 없으며 매끼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제공되는 모든 음식에 감사해야 하며 대궐같은 저택에서 살고 있는것만으로도 100번 이상 절해야 할 크나큰 축복인것이다. 미맹의 아내와 무능한 가장 아버지를 무시하는 아이들의 이색적인 설정관계는 색다른 가족극의 탄생을 예견하는 (비교분석 ; 김지운의 조용한가족)풍성한 이야기씨앗의 건강한 토양이 되어줄 자질이 느껴진다. 그것은 관객에게 던져줄 싱싱한 미끼이며 평론가들의 구미를 당겨줄 말끔한 잿밥이다.
그런데 이영화 어찌된일인지 초반부에서 느껴진 감독의 감각들이 중반에 다다르자 허공으로 소멸되어 좀처럼 보여지지가 않는다. 감독은 무언가 자꾸 관객에게 설명하려고 든다. 극도의 클로즈업과 효과음으로 인물들을 줌인시키고 줌아웃시키면서 지나간 사건들의 설명에 대해 강박증환자처럼 집착하여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관객들은 이미 전부 혹은 모두를 이해하고 있는데! 감독 임경수는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그사건이 어떻게 된거냐면 말이죠..."하면서 수도없이 설명하고 안내하려 드는 과도한 친절로 범벅된 엉뚱한 매너를 보여준다. 한두번이면 끝날 인써트들은 수십번씩 반복되며 시끄러운 효과음들은 귀를 피곤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알았어 알았다니깐!"관객들은 지루해지기 시작하는데 감독은 조금도 지루하지가 않다. 아니, 오히려 신이 나기 시작했다. 상황설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니 관객들이 재미있어 하는것 같으니, 이제 모든 사건들을 설명해줘야 겠다. 여기에 만화적기법을 적용시켜 과거와 현재 시간을 전후한 사건들을 오가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줘야 겠다는 성실한 자세로 감독은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부친다. 과도한 나래이션의 남용으로 이야기는 늘어지고 개연성없는 에피소드들은 매번 뜽금없이 나타나고 사라져, 보는이를 괴롭힌다. 가장의 권위를 실추당한 무능력한 고상태의 슬픔이 느껴지는것도 아니며 밤마다 고상태의 집을 털러 잠입하는 게임프로그래머 최강조(소지섭)의 심리묘사는 영화에서 찾아 볼수 없다. 단지 돼지 귀초밥이후로 집안에 들어와 리모콘과 음식들을 해치우고 돌아가는 도둑 소지섭을 잡기 위한 가족들의 끊임없는 분열들이 허공에 붕붕떠다닐뿐이다.
모든것을 다 갖춘 최강조(소지섭)이지만 왜 밤마다 남의 집을 털지 않으면 안되는지 캐릭터의 동기부여는 찾아볼 수 조차 없으며 가족들의 달재를 향한 태도또한 납득이 가질 않아, 이야기는 겉잡을수 없이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엔딩마저 너무나도 예상된 작위적인 결말을 제시함으로써 극초반에 보여주었던 감독의 영화적 감각을 그리워 하게 만든다.
도둑맞곤 못살아는 공룡알의 흔적, 미맹가족, 돼지귀초밥, 호신술연마등의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가능성의 초밥알들로 가득찬 색다른 초밥이었다.(과거형) 그 초밥은 분명 너무도 새로운 색과 향기를 갖고 있기에 관객은 초밥을 최강조(소지섭)처럼 집이라도 털어서 집어 먹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그 초밥...먹어보니 맛이 쉬었다...모양은 그럴싸 한데 맛은 예전에 만들어놓은 밥으로 똘똘뭉친 한참은 된 초밥이다. 색다르지도 않고 겉모습과 향기만으로 포장된 이 초밥...쉬어도 한참 쉰초밥이다. 이젠 더이상 그집을 털고 싶지가 않아진다. 쉰초밥을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도둑맞곤못살아는 빼먹을것들이 많은 새로운 각종 재료들을 한참이나 묵은 기법으로 안일하게 버무려 만들어진 쉰초밥과 닮아있다. 그래서 , 우린 향기에 취해 초밥을 들지만 한번 베어물곤 다시 먹고 싶어지지가 않아진다. 조금만 더 과감했었더라면 조금만 더 기발했었더라면 조금만 더 생략해줬더라면 조금만 더 고심했더라면... 분명 이영화는 재미와 완성도 둘다를 잡을수 있는 신감각프로젝트로 쌈빡하게 탄생될수 있었다. 그점이 아쉽다.
그러나 우리가 이영화에서 분명 주목해야 할 사실은 모두가 동의하는 배우 박상면의 연기다. TV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과장된 연기들은 스크린에서는 늘 채로 잘걸러진 음식들처럼 그렇게 잘 정재되어 있음을 우리는 발견해왔다. 그는 매우 똑똑한 배우다.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자신의 연기영역을 구분해놓지 않고서도 자기몫 그 이상을 해내는 자질을 갖고 있다. 이제 도둑맞곤못살아에서 우리는 실추된 가장의 이미지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는 배우 박상면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만나게 된다. 그의 연기는 수많은 테이크들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만드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실추된 가장의 이미지를 넘어서 한인간의 홀로서기를 외치는 고상태의 연기를 박상면보다 더 잘할수 있는 사람을 떠올리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꽃미남들의 반열속에서 그가 빛을 발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넉넉함이 외모뿐 아니라 내면에 도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멜로와 미스테리 ...장르와 관계없이 매체를 아우를 잠재력을 가진 배우다. 우리는 배우 박상면의 연기세계를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주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