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로 갓 올라온 20대 여성은 어떻게 커리어우먼으로 탈바꿈하는가. 제목만 보면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 같지만 <내 남자는 바람둥이>는 사회 초년생 여자의 성장담에 가까운 영화다. 원제목은 ‘Suburban Girl’, 교외에 사는 소녀라는 뜻이다. 이야기의 중심인 브렛-아치 커플 역시 그 핵심을 들여다보면 연인이라기보다 사제 관계에 가깝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명작을 섭렵했으며, 위트있는 토론으로 애정을 가늠한다. 성공한 남성인 아치가 젊음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수혈받길 원했다면 총명하되 설익은 브렛에게 필요한 건 적확한 조언을 던져줄 애정 어린 선임자다. 영화는 어린 여성들의 마음을 손쉽게 사로잡곤 하는 나이 든 남자 판타지, ‘키다리 아저씨’ 증후군을 자극한다. 브렛이 매너의 기술을 훈련받지 못한 또래 남자친구를 차버리고 아치에게 안기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단테가 지옥을 “친밀함없는 접근”이라고 쓴 적이 있느냐를 두고 주인공 남녀가 <신곡>을 뒤적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듯, 영화는 아름다운 창작물과 그 창조자들, 그들의 날카로운 필담을 서슴없이 인용한다. 노만 메일러와 밀란 쿤데라, 제임스 조이스를 아는 이라면 은근히 낄낄거릴 대사들이 수두룩하다. <세렌디피티> <어느 멋진 순간>을 집필한 시나리오작가 출신의 마크 클레인이 각본과 연출을 겸했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이 영화로 연출 데뷔한 그는 확실히 여성의 심리 파악에 재능이 있어 보인다. 아버지와 연인을 떠나보낸 브렛이 청바지 대신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검은 가죽바지를 꺼내 입은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걸 보면. 사라 미셸 겔러와 알렉 볼드윈이 나이 차이 탓에 부녀로 분류되기도 하는 불운한 커플을 연기했다. 원작은 멜리사 뱅크의 베스트셀러 <소녀들을 위한 헌팅과 피싱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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