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한국영화 화제작하면 단연 <내 사랑 내 곁에>와 <불꽃처럼 나비처럼>이죠.. 감독이며 배우의 지명도하며.. 특이한 소재까지.. 화제가 될만한 영화지만.. 나에겐 이 두편이 너무도 '명절용' 영화로 보이네요.. 도무지 땡기지 않아요.. 추석때.. 친척끼리 명절의 분주함을 끝내고.. 손에 손잡고 보러가면 좋을듯한 영화.. 보러가기 좋으라고 관람연령가도 아주 적절하더군요.. 친척들끼리 손잡고가서 살빛이 노골적인 관람불가 영화를 볼수 없는노릇이잖아요.. 반갑게도.. <날아라 펭귄>을 개봉해주네요.. 오늘이 개봉첫날인데.. 달랑 하루에 두번..(그나마 씨너스에서나 개봉하지 프리머스에선 아예 상영일정조차 없더군요) 주말인 토요일부터는 무려 '한번'상영인 열악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런영화를 우리동네 극장에서 볼수 있다는것만으로도 감지덕지..
대락의 줄거리는 알고갔기에.. 사실 별 기대는 안했죠.. 뭐 새로운것을 보여줄것이 없는듯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상당히 매서운 영화더군요.. 그냥 일상의 한단면을 뚝 잘라 무심히 보여주는듯 하지만.. 영화장면의 결은 깊습니다.. 평이한 어조로 평이하지 않는 감정을 담아내는 솜씨가 참 좋더군요.. 특히 나란 사람을 자극한건.. 내가 바로 가해자라는것이죠.. 보통 이런 영화를 볼때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감정을 자극당하며 보다가.. 정작 극장문을 나올때쯤엔 뭘봤더라 하기 쉬운영화인데.. 가해자로서 매를 맞고나니.. 내 상처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아프기도하고.. 하여튼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강렬한 감정이 뒤범벅이 되네요..
다만.. 영화 초중반을 볼때만 해도.. 이거 진짜 강추다.. 주윗사람들에게 꼭꼭 보라고 당부해야지 했는데.. 정혜선-박인환 커플을 앞세운 황혼이혼파트는 이 영화의 다른 에피소드의 완성도를 갉아먹을 만큼 지지부진하더군요.. 그래서 강추까진 아니고..그냥 추천으로 바꿨습니다.. 네번째 에피소드의 흠을 잡아보자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백만번도 더 본듯한 장면이 나오네요.. 노부부의 첨예한 대립이 처음엔 흥미로웠지만.. 나중에 좋은게 좋은거지.. 식의 일식집에서 화해씬은 KBS 8시 30분대의 드라마를 보는듯 식상했지요.. 요즘 늙은 남자가 제일 필요한것은 뭐냐 등등 <-- 영화에서 대사로 나오지요.. 1위가 '처'고.. 2위가 '마누라'인지 뭔지하는.. 남자가 집에서 밥을 몇끼를 먹는냐에 따라 호칭에 달라진다는 것 등등의 리스트놀이는 요즘 유명하게 떠도는 이야기지요.. 이런걸 쭉 늘어놓는게 뭘 말하려는지는 알겠는데.. 그게 영화속에 서사로 녹아들지 않고 그냥 이야기꺼리로 머무는 느낌이였죠.. 또.. 할아버지가 질투하고.. 할머니는 질투를 즐기다.. 은근히 화해하는 장면은.. 드라마로써야 보기좋지만.. 별로네요..
세번째 에피소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도고.. 첫번째 에피소드는 좋았는데.. 이건 영화의 장면자체가 좋았던건지.. 아니면 지금의 바로 내 얘기라 정신을 못차렸던건지.. 그게 좀 헷갈려요.. 두번째 에피소드는 진짜 참 좋더군요.. 두번째 에피소드야말로.. 인권영화라는 영화에 딱 어울리는 소재면서.. 그걸 그려내는 방식이 참 좋아서 보는 관객의 마음을 참 (긍정적인 의미로)자극 하더군요.. 소수를 배려하기는 커녕.. 구석으로 몰아가 공격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 공동체의 선(line)이란걸 일방적으로 그려넣고.. 그 선을 넘은자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는 방식의 부당함.. 더불어.. 폭력적인 남성(술)문화에 대한 비판까지 두루두루 좋았지요.. 마초적인 남성문화의 밖에 서있는 모습을 못마땅해 하는 선배직장인의 "군대는 갔다왔느냐" 물어보는 모습은 압권이죠.. (우리나라 남자들은 빼뚤어진 공동체문화를 군대라는곳에서 많이 배워오잖아요) 계단에서 담배를 피고있는 여자신입을 발견하고는 "담배하나 달라"고 비아냥 거리는 모습도 참 현실감 있더군요.. 이 마초적인 남자직원 캐릭터는 분명 영화상 악역으로 설정된 인물이지만.. 상징적인 악역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너무도 흔한 악역(심지어 자신이 정의사회를 구현하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가진 악역)이라.. 더 치가 떨리지요..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사회에 나오기전에도 끊임없이 선밖으로 밀려났을텐데도.,. 특유의 넉살로 견뎌나가는 주훈이란 캐릭터를 연기한 '최규환'이란 배우의 모습이 좋더군요.. 세심함 연기를 하는지라.. 어쩌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들릴수도 있는 '바지락 바스럭 거리는 소리'에 관한 대화도 관객으로써 충분히 감정이입이 되었지요.. 문소리는 이전작인 <우생순>에서 부부로 나왔던 박원상과 또 부부로 나오네요.. 어찌하다 또 부부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서로의 신뢰를 볼수있는듯 참 보기 좋아요..
딴얘기를 하자면.. 이 영화 네번째 에피소드에 곁들일 말인데.. 남자들은 제발제발 살림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이건 뭐 부인을 사랑해서 잘 '도와줘라'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란 사람의 기본적인 품위를 위해서이지요.. 양성평등이니 그런 거시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진짜 여자고 남자고.. 자신의 입에 밥을 넣을 정도의 경제력과.. 실제로 자신의 입에 넣을 밥을 할정도의 능력은 필수지요.. 누굴위해서가 아니라.. 나자신을 위해서요.. 내 기본적인 것을 남에게 의탁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정작 무너지는것은 자신이란걸 왜 모를까요.. 내손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순간.. 자신은 누군가의 짐덩어리로 전락한다는것을요.. 아무래도 내가 여자라서 여자입장으로 말하는것이겠지만.. 자신을 삼식이 '새끼'로 바닥까지 밀어내 버리고 싶지 않다면.. 진심으로.. 진심으로.. 살림을 배우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