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재탕인 것은 아닐까? 비디오판 <주온>과 극장판 <주온> 1, 2편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그루지>에 이어 <그루지2>까지. 여러 종류의 귀신이나 원한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가야코와 토시오의 조합만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런 우려 때문인지 시미즈 다카시는 말한다. “<그루지2>가 <주온2>와 같은 내용이었다면 난 연출을 포기했을 것이다. 변화없는 리메이크는 전편 하나로도 충분하다.”
<그루지2>는 <주온>을 모사했던 <그루지>를 넘어 공간을 확대시킨다. 가야코 집에서 시작된 공포는 이제 태평양을 건너 미국 대륙까지 침투하게 된다. 1편의 주인공인 카렌의 여동생 오브리가 일본으로 건너온다. 카렌이 방화를 하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도착한 날, 카렌은 오브리의 눈앞에서 자살한다. 오브리는 기자인 도슨과 함께 카렌이 불을 질렀다는 집을 찾아간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도쿄의 국제학교에 다니는 여고생 앨리슨이 친구들을 따라 폐가에 들어갔다가 가야코를 만난다는 것이다. 함께 갔던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앨리슨은 저주를 피해 시카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앨리슨의 옆집에 살고 있는 제이크는 날마다 이상한 신음과 벽을 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주온2>와 다른 내용이라고는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다. <주온> 시리즈는 모두 가야코의 집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주온2>는 사건 뒤에도 여전히 귀신이 나온다는 폐가를 찾아오는 아이들과 가야코의 남편이 살인을 저지른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렸다. <그루지2>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집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만이 아니라, 다시 그들이 살고 있는 집 전체를 감염시킨다. 가야코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던 사람들도 가야코의 원혼을 보고 끔찍한 공포를 겪게 된다. 일관성에서는 좀 벗어나지만, 공간을 미국으로 확장하기 위한, 미국 관객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단지 괴담을 즐기고, <주온>의 관습 자체를 즐긴다면, <그루지2>도 꽤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원래 시미즈 다카시의 스타일은,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주기를 자제하고, 오로지 ‘존재’ 그 자체로 승부했던 나카타 히데오의 <링>과는 다르다. 시미즈 다카시는 70년대 공포영화만 아니라, 보여주기의 쾌감에 빠져들게 했던 80년대의 난도질 공포영화에도 매료되었던 세대다. 시미즈 다카시는 적어도 10분에 한번씩은 섬뜩하고 공포스러운 장면을 집어넣는다. 비디오판 <주온>이 놀라웠던 것은, 그렇게 반복되는 공포에도 불구하고 점점 공포감이 고조된다는 사실이다. <그루지2>는 직접적인 공포, 논리적인 공포를 원하는 미국 관객의 입맛에 맞게 가야코의 출현이 잦다. 에피소드식 구성이 아님에도 매번 시퀀스마다 확실하게 등장하여 팬서비스를 한다. 탈의실 장면이나 암실장면 등 새로운 장면도 있고 <주온> 시리즈에서 이미 보았던 장면을 교묘하게 섞어 쓰는 경우도 많다. 적어도 귀신이 등장하는 신의 양으로만 본다면, <그루지2>는 어떤 공포영화에도 뒤질 게 없다. 하지만 B급 공포영화가 아닌 <그루지2>에서는 그 이상을 기대해야만 한다. <그루지2>는 핵심적인 이야기로 가야코의 과거를 택했다. 비디오판에서 가야코의 죽음을 보여준 것에서 더 나아가, 가야코의 어린 시절을 캐고 들어가는 것이다. 서구인들이 좋아할, 괴담의 토속적이고 이국적인 근원을 파고 들어가는 설정이지만, 너무 어중간하다. 어릴 때부터 외로웠던 가야코는 무언가에 집착하는 성격이었고, 한 남자를 스토킹하던 것이 남편에게 밝혀져서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니 일어날 수 있는 괴담이기 때문에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애초에 가야코가 강력한 악령을 지닌 여인이었다고 말한다면, 할리우드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악마나 요괴와 무엇이 다를까. 하긴 <그루지2>는 가야코를 거의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그린다. 언제 어디에서건 등장하여, 어떤 존재든 말살할 수 있는 강력한 악령이 된 것이다. 사실 그건 뜬금없다.
<그루지2>의 주인공은 가야코의 과거를 캐는 오브리지만, 오브리의 이야기에는 긴장감이 없다. <주온> 시리즈의 장점은 에피소드식 구성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마구 뒤섞고, 철저하게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을 부각시키는 형식. 에피소드마다 집중되는 공포는 복싱의 콤비네이션 연타 공격처럼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그루지>는 원작을 할리우드식으로 인과적 구성으로 끌어들였지만, <그루지2>는 우왕좌왕한다. 이야기의 전후, 공간의 이동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바람에 공포감도 점증되지 못한다. 그저 쉴새없이 튀어나오는 가야코와 토시오에게 놀라기만 할 뿐이다. 일본 호러를 할리우드식으로 변형시키는 시도는, <그루지2>에서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미즈 다카시는 <주온>에 머무르지 않고, <마레비토>와 <환생>을 통해 공포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루지2>는 할리우드식 시스템에 맞춰진 답습일 뿐이다. 할리우드 시나리오작가가 쓴 <그루지> 시리즈가 아닌, 시미즈 다카시가 자기 방식으로 만든 <주온3>를 이제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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