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어서 무서운 상황이 있다면 익숙해서 무서운 상황도 있다. 이를테면 영화 <가발>의 오프닝. 카메라가 자동차 운전자 시점에서 컴컴한 국도를 달린다. 따로 조명을 쓰지 않은 현실적 질감. 으스스한 어둠과 허연 헤드라이트 불빛의 기분 나쁜 대비.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본 이라면 ‘어둠 속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소름끼쳤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 순간 공포가 스크린에서 현실화된다. 내 눈 앞으로 섬뜩한 머리채 같은 것이 날아와 자동차 앞유리에 확 부딪힌다.
익숙해서 더 무섭게 느껴지는 상황을 <유실물>은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괴담과 지하철이라는 일상적 공간을 통해서다. 이유도 없이 사고가 잦은 터널, 선로에서 헛것을 봤다는 기관사, “너.도. 그걸 본 거야”라는 말, “옛날에 터널을 파는데 뭔가에 홀린 것 같아서 도저히 팔 수가 없었다”는 소문. 불길한 말들이 지하철을 떠돈다. 나도 들어본 말들이다. 불길한 물건도 돌아다닌다. 나도 주울 수 있는 것이다. 물건을 주운 자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나나(사와지리 에리카)의 동생 노리코도 전철패스가 든 가죽 지갑을 주운 뒤 연락이 두절됐다. 그녀가 실종되기 전 나나에게 남긴 말은 “(실종된 친구) 타카시를 봤다”는 것이다. 타카시의 집을 찾아간 나나는 타카시를 닮았지만 사람이 아닌 듯한 끔찍한 존재와 마주친다. 그는 “돌려줘”라며 기어온다.
경험했기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지는 장치로 <링> <착신아리> <주온> 등이 보여준 코드도 사용된다. 죽은 자의 혼이 붙은 물건, 그 물건을 타고 오는 연쇄적 죽음, 퉁퉁 부어오른 귀신의 몸뚱이, CCTV에 찍힌 시커먼 형체. ‘본 듯하다. 뭔가가 나오겠구나. 저기에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땀을 쥐는 순간, 우려가 현실이 된다. 호흡이 적절한 연출이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중·후반부, 사건의 핵이던 원혼(전철 패스의 주인)이 사라지고 ‘거대한 악의 기운’이 등장하면서부터 영화는 ‘궁극의 악마’에 맞서 동생과 세계를 구하려는 모험극으로 탈바꿈한다. 그 와중에 우정, 정의, 인류애 같은 공포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가치가 제창된다. 수십명의 귀신이 떼를 지어 터널을 기어나오는 클라이맥스는 꽤 그로테스크하지만 아쉽게도 이미 긴장은 다 새어나가버린 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