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는 배우 셋이 나온다. 카세 료, 오다기리 죠, 쿠리야마 치아키. 누누히 말하지만 나한테는 캐스팅 그 자체가 충분히 영화를 고르는 이유가 되고, 또 실제로도 그게 내가 이 영화를 골라서 보게 된 이유지만, 사실 이 영화 정말로 괜찮다. 감독이 이상일, 이라는 사실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하는 데에 조금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언젠가 '버디 무비'에 대한 내 무한한 애정을 글로 풀어 낼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는 거창하지 않은, 버디 무비다. 물론, 무언가 일을 성공시키고 킬킬거리는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화라는 건 맞다. 주인공은, 무료한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경찰관이고 카세 료가 연기한다. 그의 버디, 오다기리 죠는 빌딩 청소부였던가ㅡ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시작되는 법.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세 명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인식하게 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마음 먹고 있었던 일을 기어이 시도하고, 그렇게 시작한다.
하늘이 너무 예뻐서, 저 어딘가에 천국이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오다기리 죠가 나오기에... 주저 없이 선택한 영화.
일본 영화는 몇몇 흥행 영화 말고는 대부분 상업성과 거리가 멀고 실험성이 강하다는 인식 때문인지 내 주위에는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인디 필름 페스티발이라니 상업성과는 무관하게 이해하기 힘들 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듯하다.
딱히 관심 없는 사람한테 같이 가자고 얘기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고문일 것 같아 그냥 혼자 극장에 가서 봤던 작품이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 주었던 오다기리 죠.
개인적으로는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스타일이 좋지만, <스크랩 헤븐>에서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껄렁껄렁하면서 오버 액션을 하는 역을 맡아 연기했다.
오다기리 죠가 오버하는 연기가 눈에 거슬렸다는 영화평을 봐서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오다기리 죠가 맡은 캐릭터 자체가 매사에 오버 액션을 하는 인물이었다. 닭 벼슬을 연상시키는 머리 스타일과 느끼하고 뺀질뺀질거리는 웃음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저기서 오다기리 죠를 일본의 꽃미남 스타라고 추켜세우지만, 그보다도 다양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그의 연기력에 매번 감탄한다.
껄렁껄렁한 날건달 오다기리 죠, 소심한 경찰 카세 료. (기억력이 3초라 극중 이름은 생각 안 남.)
카세 료는 경찰 내부의 부조리한 현실에 염증과 회의를 느끼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세상을 원망한다.
오다기리 죠는 "책상 앞에 앉아만 있어 봤자 세상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 두 사람이 선택한 방법은 '복수 대행'이다. 일단 억울한 사연과 복수하고 싶은 이유를 들어 본 뒤 타당하다 싶으면, 복수하고 싶은 대상을 찾아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통쾌하게 복수해 준다.
복수... 거창하게 10년간 칼을 갈며 복수를 꿈꿀 만큼 증오하는 대상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복수하고 싶은 대상이 있을 것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를 학대하고 상처 준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오다기리 죠와 카세 료를 찾아와 복수를 청탁한다.
명확한 복수의 대상이 있고, 복수할 만한 명확한 이유가 있으니, 이들의 복수 대행 행각은 보기만 해도 유쾌, 통쾌, 상쾌하다. '저런 놈은 당해도 싸'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관객들은 대리 만족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복수의 대상은 불분명해지고, 복수를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직접 복수를 하고도 영혼을 구원받지 못한 금자 씨처럼.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뿐, 자신의 내부에서 찾으려고 들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건, 나 자신 때문이 아니라 '타인이나 세상'이기 때문에 복수할 대상을 찾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복수는 순간의 짜릿함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오다기리 죠와 카세 료가 계속해서 통쾌하게 복수 대행을 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응어리를 시원하게 풀어 주고, 그 덕분에 세상이 좀 더 밝아지고 유쾌해졌다는... 그런 해피엔딩이었다면 잠시나마 대리 만족을 느끼며 행복했을 텐데. 결국은 복수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만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천국이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이 지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세상인 걸까? 반드시 죽은 뒤에야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인 걸까?
나보다 약한 자를 배려해 주고, 서로 존중해 준다면 우리가 숨쉬고 사는 동안에도 충분히 천국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할퀴고 상처 주는 사람들의 모습...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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