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천재의 순수성이 사회속에서 깨지고, 그 깨어진 천재성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살아나는 스토리를 그린 영화로서 실화를 바탕으로 둔 영화다. 그리고 피아니스트인 David Helfgott(영화의 실제 주인공) 은 부인인 질리언과 함께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감독은 평소 클래식을 좋아했는데, 총망받던 천재 피아니스트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후에 재기했다는 소식과 함께 데이빗의 이야기를 알게된다. 그리하여 감독은 데이빗의 재기 공연후 데이빗과 부인인 질리언의 동의를 얻어 데이빗의 삶을 영화화 하게된 것이었다.
천재와 같은 시대에 공존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예술적 영혼의 순수성이 사회속에서 더럽혀지고 상처입어 죽음으로 끝나 버리던 과거의 천재들의 불행한 인생과 달리 다시금 그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앞에 음악을 들려주는 천재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런 상황에서 데이빗의 재기는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다. "나는 운이 좋아, 좋아, 좋아" 라고 말한다는 데이빗의 현재의 모습에서 새삼 그를 일으켜준 그의 부인 질리언에게 고개숙여 감사하는 바이다.
영화는 한때 끝없이 추락하던 이 천재 피아니스트가 비를 맞으며 어느 카페를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카페의 손님은 이 미치광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피아노 앞에 앉은 이 미쳐 버린 천재는 경쾌한 연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음악은 모든이의 닫힌 마음을 열고 데이빗을 받아들이게 한다.
폴란드계 유태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데이빗은 부모의 제지로 음악을 공부하지 못했던 아버지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이 경쟁의 소굴에서 살아남아야한다며 데이빗을 독려하는 아버지의 기대와 수많은 책임감은 데이빗을 소년 시절부터 정신적인 고통속에 헤매게 한다. 그리고 그 맺힌 한을 아버지가 음악과 그의 부모에게 가졌던 한까지 모두 이어받은 듯이 매 연주때마다 천재성과 함께 음악에 묻혀 토해낸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불러모으는 사람들의 권유를 그의 아버지는 아우슈비츠에서 부모형제를 잃었던 기억으로 인해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일념으로 데이빗의 유학을 반대한다. 자신의 꿈인 음악을 데이빗으로 풀려했던 아버지는 또다른 아픔으로 인해 다시금 데이빗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후 정신적인 성장에 도움을 준 여류작가 캐러드 부인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반대를 이겨내고 런던 왕립 음악대학에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 천재는 그곳에서 전설적인 외팔이 교수에게서 교육을 받게된다. 곧 데이빗의 천재성에 기뻐하지만 그 순수성을 염려해하고, 결국 악마의 곡 이라 불리우는 [라흐마니노프 3번 교향곡]을 완벽히 처낸 데이빗은 쓰러져 버리고, 그것으로 그의 정신마저 잃어 버리게된다
영화에서 가장 명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이 연주 장면은 진동하는 피아노. 빠르게 연주되는 곡. 데이빗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땀 방울과 모든 음을 단절시킨채 침묵속에서 묵묵히 건반이 눌리는 소리와 숨 소리만으로 채워지면서 데이빗이 같고 있는 가족을 떠나온 것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등 갖은 정신적 고통을 그렇게 격정적으로 형상화 시켜준다.
결국 질리언을 만나 그녀와 사랑을 하게됨으로써 과거의 정신적 상처를 이겨내고, 그 순수성만을 가슴속에 담고서는 음악에 대한 그의 재능을 다시 살린다.
필자는 이 영화에서 데이빗의 아버지에게 관심이 갔다. 재기하는 아들의 공연을 보러온 가족들. 데이빗에게 말을 건내지는 못하지만 눈물로써 그의 음악을 기쁘게 받아준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후에 질리언과 함께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데이빗은 질리언의 "인생은 영원하지 않아요. 지금에 충실하며 살아가야해요"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라는 말을 되뇌이며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아무튼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자식을 통하여 대리만족하기위해 자식에게 혹독하기 까지한 음악 교육을 시켰으며, 또 아들은 그 교육을 묵묵히 받아내며 정신적 고통속에서 그렇게 격정적인 연주를 매번 해내었다.
마치 베토벤 처럼 말이다.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어준 자랑스러운 아들의 연주. 그것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가슴은 얼마나 뜨겁게 달아올랐을까.
천재와 그 천재의 재능을 일찌감치 키워준 부모. 하지만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천재성을 묶으려 했던 아버지의 심정. 이 이야기야말로 사건이야말로 이 사회의 전형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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