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시선>은 <여섯 개의 시선>(2003),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2005)에 이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해 개봉하는 옴니버스 인권영화다. 영화의 길이와 주제가 고정된 이 프로젝트에 관객은 두 가지 기대를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의제 설정 기능이다. 20분 남짓한 다섯편의 단편영화는 곧 한국사회가 인간의 존엄함을 다루는 방식과 관련한 긴급한 문제 제기다. 한편 필름의 길이와 주제라는 조건이 통제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섯 개의 시선> 프로젝트는 제한된 질료를 다루는 감독 각자의 개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어떤 특정한 이슈에 착목했는지부터, 다큐멘터리적 요소와 허구적 요소를 배합하는 전략, 20분의 ‘드라마’를 둘러싼 감수성에 이르기까지 <다섯 개의 시선>은 감독의 취향과 태도를 비춘다.
<남자니까 아시잖아요?>의 류승완 감독은 인간이 부당한 차별로 상처받는 상황이라면 멀리서 찾을 것 없다고 판단했다. <남자니까 아시잖아요?>의 주인공은 술에 취해 온갖 편견을 토사물처럼 쏟아내는 남자 우식. 잘나가는 대기업 사원인 그는 ‘정치적 불공정함’의 집대성이다. “계집애들이 여태 술 처먹고 있어?”라는 일갈과 함께 실내 포장마차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종업원에게 무례하게 굴고 외국인 노동자를 싸잡아 욕하더니, 곧이어 경제력, 학벌, 성적 취향을 빌미로 동석한 친구들의 마음을 차례로 다치게 한다. (<주먹이 운다>는 사실 이 단편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류승완 감독은 특정한 차별을 파헤치는 대신 “남자니까 아시잖아요?”라는 말이 대변하는 둔감함 안에 다양한 편견이 얼마나 쉽게 동숙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단 두컷으로 구성됐다. 술집의 울렁이는 공기와 거친 대화를 흐르듯 잡아낸 첫 번째 롱테이크의 박력이 두 번째 컷으로 다소 상쇄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진숙 프로듀서, 정두홍 무술감독, 임순례 감독이 카메오로 나온다.
정지우 감독의 <배낭을 멘 소년>은 자존을 지키는 일이 생계보다 더 아득한 탈북 청소년의 이야기다. 중국과 태국을 거쳐 간신히 한국에 온 탈북 소녀는 “너도 인육 먹어봤냐?”같은 또래들의 질문에 포위되자 스스로 말을 버린다.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귀가해 외롭게 잠드는 그녀는, 오토바이를 폭주하는 탈북 소년과 친구 비슷한 사이가 된다. 사장이 소녀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자 둘은 업소의 캔 콜라를 훔치기로 한다. 그러나 “사장님이 평생 북한 사람 도둑이라 떠들 것”이 걱정된 소녀는 콜라를 돌려주기로 한다. 소년도 그녀의 선택을 이해한다. 그제껏 필담만 하던 소녀는 입을 열어 소년에게 청한다. “남한 아이들보다 오토바이 천천히 타십시오. 고향엔 가야지.” 힘겹게 수십 개의 콜라 캔을 날라 그것으로 택시비를 지불하고, 결국 축난 콜라 캔을 사서 보충하는 둘의 번거로운 노력은, 극히 자연스럽고 쉬워야 할 일상의 행위 하나하나가 천근처럼 무거운 탈북 청소년의 현실을 은유하는 듯하다. 단순한 스토리를 곧은 구조에 담았지만, 대사보다 인물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재담가 장진 감독은 <고마운 사람>에서 매우 대담한 ‘반전’을 시도한다. 어느 지하실. 고문기술자 김주중은 12시간째 운동권 학생 윤경신을 물과 전기와 주먹으로 고문하고 있다. 학생은 비장하고 고문기술자는 피로하다. 고문의 인간성 파괴가 주제인가 싶으면, 영화의 초점은 잔업철야를 밥 먹듯 하는데 보너스도 없고 고용 보장도 부실한 비정규직 노동자 김주중의 애환으로 옮아간다. 급기야 윤경신은 상사 앞에서 김주중을 감싸려 가짜 자백을 하고, 김주중은 윤경신에게 고문 견디는 요령을 귀띔하는 지경에 이른다. 상황을 뒤집는 순발력과 폐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역설적 대화만으로도 누구나 장진 영화임을 감별해낼 수 있는 색깔 짙은 소품.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과 그것을 이야기하는 장치로 동원된 고문 취조, 두 가지 정황 중 어느 쪽도 관객의 생각을 오래 붙들지는 못한다. 상황의 역전 자체에 큰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다.
박경희 감독의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소녀 은혜의 일기다.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로 알려진 만화가 장차현실씨와 딸 은혜양의 생활에 기초해 극화했다. 플루트 불기와 춤추기를 좋아하는 은혜. ‘뚱보 메기’라는 고약한 놀림도 느리지만 당찬 말투로 끝까지 받아치는 은혜, 그러나 친구 없는 외로움은 벅차다. 그래서 다정한 동네 아줌마의 옷을 학교까지 가져가 입기도 한다. 급우들이 등을 돌릴 때마다, 사람들이 귀 기울이지 않을 때마다 은혜는 상상의 친구를 불러내 말을 건다. 감독은 은혜를 천사로 만들거나 눈물을 호소하는 대신 소녀의 혼잣말을 들려준다. “어떤 애가 있는데요. 괜찮은 애거든요. 나쁜 애 아니거든요.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 그것은 ‘다름’을 보지 않으려는 게으른 눈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운 은혜가 주는 타이름이다.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종로, 겨울>은 2003년 12월 새벽 혜화동 거리에서 동사한 채 발견된 중국 동포 고 김원섭씨가 걸었던 차가운 길을 되밟는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면하고자 한국을 찾은 김원섭씨는 불평등한 재외동포법의 족쇄를 끌고 고되게 노동했지만 1000만원의 임금을 떼여 고향에도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유난히 추운 그 겨울날, 이틀을 굶은 채 얄팍한 옷차림으로 농성장을 찾다가 시내 복판에서 길을 잃었다. 내처져온 자의 두려움 탓인지 행인들의 도움도 구하지 못했다. 극한 상황에 몰려 구조를 청한 그에게 112는 “택시를 타라”고 충고했다. <종로, 겨울>은 착취받고 외면당한 중국 동포의 절망과 그들을 착취하고 외면한 한국사회의 절망스러움에 관한 영화다. 김동원 감독은 그날의 응급전화 통화를 재연하면서 김원섭씨의 마지막 시야에 비쳤을 밤거리와 고향마을 풍경도 상상한다. 진혼곡밖에 부를 수 없는 감독의 자학과 슬픔이 객석으로 건너온다.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당신의 눈에 비친 서울의 겨울 거리는 예전과 같은 거리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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