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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게 바라는 것 눈에게 바라는 것
sunjjangill 2010-09-12 오전 11:45:58 562   [0]

경주마의 스피드가 아닌 힘을 겨루는 반에이 경마(홋카이도 개척에 활약한 농경마를 써서 힘을 겨루게 하는 오락에서 유래)를 테마로 한 감동의 휴먼드라마 <눈에게 바라는 것>. 2005년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호평을 받은 영화는, 지난해 메가박스일본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영화 제작 시기에서 정식 개봉까지 제법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 기다림에 대한 보상은 충분한 영화다.

청운의 꿈을 안고 도쿄로 떠난 야자키 마나부(이세야 유스케)는 잘나가던 사업이 실패하자 도피 행각을 벌이다, 13년 만에 고향 홋카이도로 돌아온다. 문득 고향에 두고 떠난 어머니와 형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나부의 형인 다케오(사토 고이치)는 고향에서 반에이 경주를 위한 마사를 운영하고 있었고, 자신을 찾아온 동생의 방문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오래전에 있었던 동생과의 불화로 사이가 나빠진 탓이다. 이기적이며 체면을 중시하는 마나부는 사업 자금으로 형이 모아둔 돈까지 모두 가져버리고, 자신의 결혼식날 아내의 가족들에게 어머니가 부끄럽다는 이유로 죽었다는 거짓말을 한 것이 다케오의 분노를 산 것이다. 이제 인생의 막다른 곳에 이른 마나부는 다케오가 운영하는 마사에서 말을 돌보는 일을 하며, 어머니와 재회하고 가족에 대해서 또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진다. <눈에게 바라는 것>은 상처입은 자들의 치유 과정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오갈 데 없는 상황에서 형의 배려로 홋카이도에 머물게 된 마나부는 형이 운영하는 마사에서 지내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순박하고 아무런 걱정없어 보이지만, 모두 자기 나름의 고민과 상처를 지니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형 다케오는 과거의 일로 좀처럼 동생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며, 마사 사람들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중년의 여인 하루코(고이즈미 교코)는 과거 남자의 배신으로 큰 상처를 받고 홀로 자식을 키우며 낮에는 마사에서 밤에는 술을 팔아 생활하고, 마나부에게 관심을 가지는 젊은 여성 마키에(후키이시 가즈에)는 유명한 기수였던 아버지가 빚 때문에 어디론가 사라진 뒤, 그의 뒤를 이어 기수의 길을 걸으며 언젠가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란 믿음을 가지며 외롭게 살아간다.

다케오와 마나부가 서로에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계기는 ‘운류’라는 이름의 경주마를 통해서다. 마나부와 운류의 만남은 운명적이다. 그는 형을 찾기 전 마지막 남은 돈을 모두 털어 반에이 경주에 나선 운류에게 걸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경기에 진 운류는 1년 동안 100만엔의 상금도 올리지 못한 천덕꾸러기로 말고기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 마나부는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의 처지와 똑같은 운류를 돌보며 내면의 변화를 맞이한다. 동물을 돌보며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는 발에 채일 만큼 흔하다. 그러나 <눈에게 바라는 것>에서는 섣불리 동물과의 교감을 통한 감동을 주려는 낯간지러운 장면이 없다. 사람과 말,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만남과 관계 속에 마나부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워나간다. 굳게 닫혀 있던 다케오의 마음이 풀어지는 것도 진한 형제애에 기반을 두지만, 마나부의 변화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까닭에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안고 있는 저마다의 고민과 상처가 치유되는 곳은 눈의 고장으로 유명한 홋카이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온통 하얀 설원으로 뒤덮인 얼어붙은 공간이지만, 그곳은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진 곳이다. 홋카이도의 눈부신 설경은 그저 아름다운 눈의 경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맞물려 펼쳐지는 아름다운 설원과 붉게 물든 저녁노을, 마키에가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찾아가는 다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반에이 경주는 홋카이도 지역 고유의 특색을 나타내는 가운데, 사람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경주마들이 달리는 길게 쭉 뻗은 트랙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힘겹게 올라가야만 하는 오르막길이 놓여져 있다. 그 길을 거친 숨을 토하며 오르는 말들의 경쟁은 박진감이 넘치지만, 그보다는 인생의 큰 고비를 맞이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 우승을 하면 특별한 보살핌을, 낙오되면 육회 재료가 되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

<눈에게 바라는 것>의 감동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인생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것에서 비롯된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홋카이도의 겨울을 배경으로 한 좋은 이야기와 좋은 배우, 그리고 뛰어난 연출력을 지닌 감독의 만남으로 오랜 여운을 남기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특히 사토 고이치를 연기한 다케오는 툭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두들겨 패는 거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가슴 한쪽엔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는 정감가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뻗치는 봄을 앞둔 지금, <눈에게 바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느낌의 영화가 될 것이다.


(총 0명 참여)
kkmkyr
잘보고가네요   
2010-09-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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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게 바라는 것(2005, What The Snow Brings / 雪に願うこ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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