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공개되고 말아버렸다. 무비스트 네티즌 박스오피스 등 다종다양한 영화사이트에서 5월 개봉작 중 웬만하면 1등자리를 꿰차고 있어 세인들의 관심이 장안의 화젯거리 수준을 넘어서고 있음을 당차게도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 영화 <트로이>가 말이다.
사실, 머 제작비가 2억불에 육박하고, 그간 큰 영화에선 당최 보기 어려웠던 원조? 섹시 가이 브래드 피트, <반지의 제왕>의 예쁘장한 오빠 올란드 볼롬, 안면 근육 움직임만으로도 크나큰 인상을 남겼던 <헐크>의 에릭 바나, <아라비아 로렌스>의 명배우 피터 오톨 등의 배우들이 한 영화에 등장하니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액션대서사 로망스펙터클의 블록버스터 <트로이>는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 셈이다.
해서, 결국 뚜껑을 살짝쿵 열어봤더니, 전언했던 그 ‘반’만큼은 확실히 보장하고 있었다는 게 본 필자의 소견이다.
다시 말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 값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고, 화려한 진용의 캐릭터들은 출중한 내외면 연기로 자신들의 이름값을 하고 있었다는 게다. 본의 아니게 다시금 호명해 죄송하다만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욕은 욕대로 얻어먹은 그러면서도 길기도 무지 긴 <진주만>을 보고 난 후의 참담한 심정과 같은 불상사가 <트로이>에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예비관객들 중 적잖은 분들이 이런 생각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동서고금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려진 하지만 막상 읽어본 이는 별로 없는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드>를 원작으로 <트로이>가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혹 내용이 복잡다단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닐지.....게다, 캐릭터 이름도 메넬라오스 라는 등 그리 친숙하지 않은 작명이고. 결국, 영화의 배경지식을 조금은 알고 보러 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 조바심들....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시대극을 표방하거나 대가의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한 영화라면 원작을 들춰보거나 그 외 영화적 가치에 살을 더해줄 그 무엇을 알고 간다면. 하지만 설령 그렇게 못한다손 치더라도 어떤 강박증을 가질 필요는 없다. 괜히 할리우드 영화고, 블록버스터이겠는가? 얘들, 대중의 이런 마음 속속들이 다 간파하고 영화 제작하니 걱정하실 거 없다.
영화 <트로이> 역시 마찬가지다. 얘기는 아주 단순하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란드 불롬)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다이앤 크루거)가 한눈에 서로 홀딱 반해 트로이로 야반도주, 당연 뚜껑 열린 남편이 그리스 연합군을 규합해 트로이와 피비린내 진동하는 일대혈전을 벌인다. 젊디젊은 총각과 고귀하신 아줌마의 불륜이 광포한 전쟁을 야기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게 기둥 줄거리다. 동시에 이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들끓는 용맹함을 보인 불세출의 전사 아킬레스(브래드 피트)의 무용담이기도 하고.
원작과 맞닿지 않는 점이 있다면 끊임없이 서사에 등장하는 신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대신,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에어포스 원> <퍼펙트 스톰> 등을 통해 선보인 자신의 장기인 원초적 윤리의 가족의 혈육지정 그리고 사내들의 의리 우애 등으로 그 빈자리를 채운다. 감독의 말마따나 <트로이>는 잔혹한 전쟁의 이미지에 가려진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욕망, 즉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드라마에 무게를 싣는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는 의외로 끔찍 살벌한 살풍경의 세세한 묘사가 눈에 띄게 적다.
짙푸른 바다 위를 힘차게 가로지르며 위용을 자랑하는 수천대의 군함, 땅이긴 땅이건만 디딜 때가 없어 보일 만큼 영토를 빼곡히 점령해버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쪽수의 병사들, 그리고 그네들이 맞서는 스펙터클한 전투신, 철통같은 요새의 트로이 성 함락까지 영화는 3200년 전의 장대한 풍광을 온전히 재현해 스크린에 투사한다. 허나, 앞썰에서 밝혔듯 인물의 캐릭터에 방점을 두다 보니 각고의 노력이 배어 있는 이 같은 장면들은 그 이상의 가슴살을 뒤흔드는 진한 파장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한다.
무엇보다 당 영화의 백미는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에 있다.
그 중에서도 보드라운 금발을 출렁이며 불혹의 근육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우람한 가슴팍과 굵직한 팔뚝의 불멸의 영웅전사 브래드 피트는 단연 압권이다. 한 나라의 국운을 좌지우지하는 결전의 장소에조차 느지막이 지각 출정하는 귀차니즘의 대담성을 드러내는 초반부터 시작해 오만하면서도 정에 약한 그리고 사랑에 집착하면서도 사내다운 호기를 부릴 줄 아는, 심히 여러 갈래로 나눠진 미묘한 감정의 결을 별다른 굴곡 없이 체화시켜 브래드 피트는 영화의 정점에 우뚝 선다. 특히나, 여러 차례에 걸쳐 시연한 그의 세미 누드는 뭇여성관객들로부터 크나큰 환대를 받을 것으로 헤아려진다.
한편, 샴프 CF를 찍고도 남을 윤기나는 생머리 <반지의 제왕>의 올란드 불롬은 상서롭지 못한 기운의 전조라 할 수 있는 깜장 뽀글 머리로 분해 나오더니 아니나 다를까 예상을 깨고도 남을 ‘깨’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 외 에릭 바나, 피터 오롤, 숀 빈 등은 자신의 역할 이상으로 훌룡한 연기을 펼친다.그렇지만 배우들의 호연을 엮어주며 묶어줄 드라마가 좀 단선적이고 전형적이라 뭔가 밋밋하다는 느낌 역시 지우기 힘들다.
<트로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민망할 정도로 헐거웠던 종래의 그것과는 달리 소구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볼 만한 영화임을 당당하게 자신했고 사실 그렇기도 하다. 때문에 본전 생각이 나지 않고 나름대로들 기대하는 정서적 충족의 그것을 일정부분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 그 이상의 과욕은 영화에서처럼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유념해두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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