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K공항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묘사해 세트장으로 만들 수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그 안에서 가짜를 진실로 믿게끔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 톰 행크스가 만나 발산하는 시너지 효과는 생각보다 엄청나다.
일명, 할리우드 감동드라마 구조를 가장 미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색깔로 스크린에 투영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두 사람을 가장 먼저 뽑을 것이다. 스필버그의 신작 <터미널>은 미국 JFK공항 안에서 본의 아니게 9개월간 장기체류하게 된 빅토르 나보스키(톰 행크스)의 꿈과 희망을 통해 미국의 ‘긍정적’인 면을 아주 지능적으로 강조한 특이한 작품이다.
<Catch Me If You Can>에서 드러난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터미널>에서 정치적인 색깔을 덧씌움으로써 ‘미국적 보수주의’의 ‘보편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린다. <화씨911>의 마이클 무어가 미국을 사랑하는 방식을 부시에 대한 노골적인 조롱으로 드러냈다면, 스필버그는 <터미널>에서 그와 반대로 노골적인 ‘꿈과 희망의 예찬’으로 빗대어 표현한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순박한 어느 남자의 감동적인 ‘뉴욕입성기’를 굳이 정치적으로 읽어 낸 필자 자신의 삐뚤어진 시각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스필버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여전히 타 국가에게 ‘판타지’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밖에 날씨가 어떤지 몰라도, 두텁고 무거워 보이는 양복을 입고 미국입국심사를 받는 빅토르 나보스키. 악센트 강한 영어발음으로 더듬더듬 나이키 매장을 찾는 이 남자는 어쩐 이유인지 입국불가 판정을 받는다. ‘우유병’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펴서 ‘라이터’를 소지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알고 보니, 나보스키의 고국인 ‘크로코지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그는 한순간에 국제미아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공항에는 도착했지만 돌아갈 고국도 공항 밖의 뉴욕도 나가볼 수 없게 된 나보스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만들어진 공항이라는 장소에서 그는 9개월간 체류하게 된다. 공항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아 보인다. 나보스키는 특유의 성실함과 천진함으로 공항말단직원들과 카드 칠 정도로 친밀해지고 나름대로 공항내의 일자리도 찾아내 끼니까지 해결한다. 거기다 스튜어디스 아멜리아(캐서린 제타 존스)와 로맨스도 엮어나간다. 그를 미관상 안 좋다는 이유로 내쫓으려는 미래의 공항사장 프랭크만 없다면 그의 공항체류생활은 특급호텔 못지않아 보인다.
나보스키는 기다림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공항에서 생활을 점차 개선해 나간다. 그의 공항생활적응기는 삶에 대한 의지 또는 애착으로 해석되어 질 수 있다. 때문에 <터미널>은 진한 감동이 숨 쉬는 ‘휴머니즘드라마’의 외관을 띈다. 허나, 공항을 미국의 축소판으로 치환해 생각해보면 여권의 효력이 상실된 나보스키는 타자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타자이면서도 공항 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이 또한 나라 없는 그에 대한 동정과 우정으로 보여 휴머니티 드라마구조를 탄탄히 하는데 일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