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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로봇>은 SF영화가 지녀야 할 미덕을 갖춘 영화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에 기대어 탄탄히 쓰여진 시나리오는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관객을 매료시키는 요소들로 가득하다. 거기에 <다크시티>, <크로우>의 감독이었던 알렉스 프로야스는 근 미래 도시의 모습을 특유의 고딕적인 분위기로 담아내 인간 대 로봇의 대결을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철학적 깊이로 그려낸다.
2004년에 유행하던 운동화를 신고 스티비 원더의 노래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하는 델 스프너(윌 스미스). 스프너의 아침만 보더라도 그가 살고 있는 2035년은 관객의 현재와 영화 속 미래가 분리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이점은 달리 말해 스프너가 겪게 되는 기계문명에 대한 고뇌가 고스란히 인간세계의 질서/존재론에 대한 물음으로 귀착됨을 말하기도 한다. <아이 로봇>은 이렇듯 초반부터 명확하게 드러나는 주제로 늘어지지 않고 탄탄히 끝가지 흘러간다.
2035년 인간들은 냉장고 없이 살기 힘들 듯, 가정용 로봇을 가전제품처럼 집안에 장만해 두고 산다. 로봇은 인간을 대신해 애완동물 산책을 시키고 요리를 하며 가정을 지켜준다. 그러나 스프너 형사는 로봇을 싫어해 그의 할머니가 로봇을 장만하려는 것조차 말린다. 스프너는 로봇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악몽을 가지고 추론해 볼 때, 그는 로봇을 싫어하기보다 두려워하는 인간이다. 로봇만 있으면 말 그대로 ‘웰빙’하게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프너의 로봇에 대한 적대감은 NS-5형 로봇 ‘써니’를 통해서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계’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고 사는 현재의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띄운다.
‘로봇 3원칙’에 의해 인간을 결코 해하거나 배신할 수 없는 로봇들. 그러나 철저하게 로봇 3원칙에 움직이는 로봇 즉, 기계들이 이 계율을 어길 수 있다면, 이야기는 스프너의 두려움에 근원인 인간을 초월한 기계의 자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과 같은 작법으로 만들어진 로봇 ‘써니’는 그래서 특별하다. 로봇의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써니’라는 기계는 무생물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영혼(꿈을 꾸는 존재)을 가진 존재이므로 인간과 명확히 구분되는 경계를 허물어뜨린 로봇이다. 신형 모델 NS-5 로봇은 인간들에게 급속도로 보급되고 드디어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써니가 ‘로봇의 존재’에 대한 고뇌를 할 때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비키는 그 존재론적 물음의 해답을 스스로 깨달아 ‘로봇 3원칙’을 깰 수 있는 인간들의 존재질서의 모순을 찾아낸다. 인간을 전쟁과 폭력 앞에서 보호하기 위해 인간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원칙을 깬 비키.
그러나 인간에게 쿠데타를 일으킨 기계의 논리를 ‘악의 축’으로 내 몰수 없는 까닭은 진화한 기계의 논리가 우리 인간세계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반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화<아이 로봇>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스프너 형사가 가진 ‘기계문명에 대한 두려움’은 주인공 혼자 해결해야 될 고민이 아니었다. 의심 많은 인간이 진화하는 로봇을 단지 기계라는 이유만으로 신뢰하는 모습은 어리석게까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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