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편지, 그리고 김기덕
★★★☆
얼마 전 '하인스 워드'의 미국풋볼 MVP수상으로
(정말 대단한 업적이라지만 풋볼엔 문외한이라)
예전의 탤런트 이유진으로 인해 달아올랐던
혼혈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 지폈다.
이것에 대한 김기덕의 시선은 놀랍도록 명확하고 재간있다.
양동근이 연기한 '튀기'는 한 흑인미군의
한순간 욕정으로 나온 아이일 것이다.
튀기는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때문에
노동판에서 무시받으며 일당도 못타고,
개장수 밑에서 굴욕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는 그 삶을
어머니에 대한 구타로 표출해버린다.
오빠의 장난으로 인해 눈이 애꾸가 되버린 여자는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려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시킨다.
말 못하는 강아지빼고말이다.
소심하게 나오는 남자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캐릭터다.
누가 그를 그렇게 소심하게 만들었는지...
상처가 안 보인다 내 눈에는;
비록 훈장이라는 명예에 목매다는 사람이지만,
아들의 잘못을 뒤집어쓰려는 좋은 아버지가 있고
가정도 그럭저럭 부유하게 나온다.
소심하다 못해 무식하고 답답하다.
이상 이 세 아이가 이 영화의 주축이다.
미군이 아직도 물러가지 않은 분단상태의 우리에게
멀지만은 않은 미군마을 이야기다.
내가 아는 김기덕 감독은 초등학교만 졸업했다고 한다.
껍질과도 같은 학벌, 학력주의라는 것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지만,
분명 그의 그런 학력은 놀랍다.
벌써 나조차 색안경 끼고 보는데 영화계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그러나 이 사람은 황소도 울고갈 똥고집으로 뚝심있게~
베를린과 베니스를 정복했다.
밑바닥이라면 밑바닥일 그의 인생때문인지
인물들의 소외된 소통, 세상과의 격리된 삶...
이해불가인 행동들을 일삼는 캐릭터가 많다.
하지만 알고보면 지극히 정상인 사람들인데...
사회에 의해, 세상에 의해 썩어가고 오염된다.
안쓰럽고 불쌍하다.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건
소외된, 격리된 커뮤니케이터들에 대한,
한결같은 시선의 김기덕의 확고한 주제전달 능력이다.
그저 허무맹랑하기보다는 현실적인 힘도 많이 느껴진다...
내가 표현하자면 도저히~~도달할 수 없는!!
이창동의 리얼리즘과는 사뭇 다르지만,
현실과 판타지를 능구렁이같이 툭툭 넘나드는 모습에
김기덕 영화가 비호감만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변태적이라는 표현을 넘어 엽기적인 그의 페미니즘은
<나쁜 남자>에서 치를 떨며 봤으나...;;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 그렇게 끔찍하진 않다.
역시나 여자들은 남자에 의해 상처를 받지만...
치욕,모욕,굴욕 따윈 나타내지 않는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내버린다.
감정없이 씩씩대기만 하는 개들의 교미처럼...
기대했던 것보다 연출이 깔끔했다.
(2001년작이지만 상당히 오래전 작품이라고 알고 봤기때문에...)
악취미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로 이 영화 이전에
접했던 김기덕 영화들은 전부 끔찍했다.
<봄여름...>이야 예외지만..
그래도 <수취인불명>은 적당히 끔찍해서 좋았고
가끔씩 나오는 저 스틸컷과 같은 유머러스한 소스도 맘에 든다.
아..슬프다...
그 슬픔에 크게 공감한 건 아니지만
마지막 엔딩에서 똑부러지게 슬픔을 다룰줄 아는 김기덕에
마치 줄인형이 된듯 그가 파놓은 감동의 우물로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는 상처...
그저 땅에 얼굴처박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처...
김기덕은 치유해주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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