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헬싱. 악을 물리쳐야 할 숙명과 살인자로 살아야 하는 저주를 한 몸에.. |
모든 사람에겐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초점을 어디에다 맞추느냐에 따라 오늘의 주연이 내일의 조연이 되기도 하고, 조명의 방향에 따라 숨어있는 1인치는 얼마든지 찾아낼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지킬박사네 하녀인 <메리 라일리>가 어엿한 주인공이 되고,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의 순애보가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아니겠나.또 이런 설정은 어떤가? 해리포터가 다니는 호그와트 학교의 교장 덤블도어 교수는 아이들이 모두 떠난 방학 동안 학교를 떠나 또 다른 이름으로 색다른 임무를 수행하느라 바쁘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간달프이며, 주어진 임무는 절대반지를 찾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상상에 조금이라도 구미가 당긴다면, 당신은 이미 <반 헬싱>의 포로가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왜냐..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영화 <반 헬싱>에 등장하는 인물 소개가 잠시 필요하겠다.
먼저, 베일에 싸인 주인공 반 헬싱(휴 잭맨). 그는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 등장하는 인물로 드라큘라의 천적에 다름 아니다. 드라큘라에 대한 연구로 매진했으나 어느 한 자락 살짝 얼굴만 내밀다 만 반 헬싱 박사가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영화에서, 드디어 좀 더 파워풀한 능력과 그럴듯한 비밀을 간직한 남자로 멋지게 컴백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을 좀 더 부각시키기 위해 이 영화 속엔 드라큘라를 비롯한 갖가지 요괴들이 등장한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소설과 영화 속에선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 가닥씩 하던 의미심장한 주역들인 지킬박사와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괴물, 늑대인간까지 한자리에 모으기 간단치 않았을 유명하신 캐릭터들을 어울리게 하기까지, 이 영화의 감독 스티븐 소머즈는 참으로 끝간데 없는 상상력의 나래를 활짝 펼친다.
이미 죽어 탄생한 자식들을 살려내기 위해 드라큘라는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부활 능력을 이용하려 하고, 자신의 천적인 늑대인간도 스포일러성 이유로 수하로 부리며, 악에 대항하는 신의 사제 반 헬싱을 여유롭게 기다린다. 그리고, 여기에 드라큘라와 견원지간(?)인 발레리우스가의 마지막 혈육 안나(케이트 베킨세일)까지 소개하면 걸출한 선수들은 한자리에 다 모인 셈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반 헬싱 대 드라큘라의 게임을 시작해 보자.
공중에 매달린 저 자루. 샌드백이 아니다. 저기서 탄생하는 뱀파이어들의 비상, 끔찍하고도 멋진 장면 중 하나 | 1단계인 초보자 코스는 무기 선택이 관건이다. 고전과 수많은 변주 스토리들을 통해 마르고 닳도록 익혀 온 드라큘라 퇴치 무기들은 여기선 모두 무용지물이다. 400년을 세파에 시달려 온 드라큘라도 그렇겠지만, 21세기를 사는 게임 전문가들에게 십자가나 성수, 말뚝 따위 고색 창연한 무기들은 식상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들 중 몇 가지를 섞어 드라큘라의 사랑하는 신부 중 하나를 퇴치하고 2단계 중급자 코스로 넘어간다.
이 단계에선 조력자를 얻어 더욱 다양해 진 요괴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거대한 스펙타클을 선사할 배경으로 로마, 파리, 트란실베니아, 프라하를 두루 섭렵한 올 로케이션 외에도, 이제 더 이상 어색한 티를 찾아낼 수 없는 요괴들의 변신 과정 등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입 떡 벌어질 경이로운 비주얼을 만나게 된다. 허나, 마냥 즐기고만 있을 시간이 없다. 그 멋진 화면도 아깝지 않은 듯 내 달리는 롤러코스터적 속도감이 눈을 핑핑 돌아가게 만들기에 말이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반 헬싱은 중대한 위기에 빠짐과 동시에 딱 그만큼의 기회를 얻으며 마지막 3단계 고급자 과정에 돌입한다.
이 과정은 말 그대로 약간의 복잡한 내막이 그 마수를 드러낸다. 드라큘라만 없애면 될 줄 알았던 게임에서 반 헬싱은 잃어버린 과거의 해답도 얻어야 하며, 자신이 봉착한 위기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마지막 과정에서 밝혀지는 반 헬싱의 비밀은 무엇일까? ... 이 질문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영화의 결말이 꽤나 허탈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허나 이 영화는 비밀의 문을 두드리는 스릴러 영화도 아니요, 기억을 잃은 반영웅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심오한 깨달음의 영화도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소설 속에서 각자 의미심장한 생존의 고민에 휩싸였던 괴물들이 그저 단순히 적군과 아군으로 구분되어 새로운 재미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듯, 우리의 주인공도 그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숙련된 프로게이머의 일사분란한 게임진행을 구경하듯 그렇게 즐기면 그만.
이만한 상상력과 흥미로운 캐릭터들의 조합이 어우러진 게임이라면.. 어떤가? 무더운 여름을 내 맡길 만 하지 않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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