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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의 가슴 속에 열병처럼 남아 있는 세기의 러브 스토리 <비포 선라이즈>
1995년 <비포 선라이즈>가 개봉됐을 때 비평가들은 기존의 러브 스토리와는 너무나 다른 이 독특한 사랑 이야기에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 만난 두 남녀가 함께 체험하는 낯선 도시에서의 밤. 충동적으로 기차에서 내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인생과 사랑을 얘기하는 두 젊은 남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열병과 같은 젊은 날의 사랑을 떠올렸다. 어떤 특별한 사건들을 설명하기보단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인공들의 나날의 일상을 열거해서 보여주기보단 찰나의 모습 속에서 그들의 본질을 보여준 <비포 선라이즈>는 기존 헐리웃 영화의 러브 스토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안티-헐리웃'적인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비포 선라이즈>는 매우 시적이고 독특한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국가를 초월하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매우 근접하게 접근하고 있다. 이 영화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그만큼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슬랙커> <멍하고 혼돈된> 등 감독의 전작들보다 훨씬 더 다큐멘터리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 또한 두 주인공의 사랑을 더욱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했고, 때문에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에 영화 속 캐릭터들인 제시와 셀린느는 남자와 여자의 '원형'(ARCHETYPAL)이라고까지 분석되고 있다.
1995년 <비포 선라이즈>, 2004년 <비포 선셋> 9년 만에 재회한 감독과 주연배우들
전세계 영화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 <비포 선셋>. 당시의 감독이었던 리차드 링클레이터와 남녀 주인공인 에단 호크, 줄리 델피가 이번에도 그대로 다시 만났다. 1편의 주요 촬영이 끝난 후부터 세 명은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제시와 셀린느의 캐릭터를 다시금 끄집어 내기 위해 속편을 제작하는 문제를 오랫동안 숙고해왔다. 속편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관한 아이디어는 수없이 제시됐지만, 결국 그들이 선택한 것은 영화 상영시간과 같은 1시간 반의 리얼타임 속에 제시와 셀린느의 삶을 담아내자는 것. 다시 말해, 주인공들의 일상의 한 편린을 좀 더 차원 높게 스크린에 옮기는 것이 속편 제작의 기획 의도였다. 링클레이터 감독의 2001년 작 <워킹 라이프>에 델피와 호크가 카메오로 함께 출연한 후 속편 제작 계획은 더 구체성을 띄게 되었다. 세 사람은 L.A.에서 사흘 동안 머리를 맞대고 속편의 아웃라인을 만든 후, 이메일로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감독은 <비포 선셋>은 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작품이지만, 그 중에서도 델피와 호크의 공이 특히 컸다고 말한다.
9년의 기다림, 80분의 짧은 만남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리얼 타임 러브 스토리
1편에서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낸 뒤 서로 연락은 하지 않기로 하고 헤어진다. 행여나 둘의 관계가 상투적으로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 대신 6개월 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둘이 다시 만난 것은 6개월 후가 아닌 9년 후.
그 동안 제시는 둘의 만남을 책으로 썼고, 홍보차 찾아 온 파리의 한 서점에서 가진 '저자와의 대화' 시간에 셀린느가 찾아 오면서 둘은 재회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와의 대화' 스케쥴이 끝나면 제시는 곧 뉴욕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80분이라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삶과 사랑, 자신들의 변한 모습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내면을 끊임없이 탐구하며 사랑을 재발견해 나간다.
영화는 바로 이 '시간 속의 한 순간'을 리얼타임으로 진행한다. <비포 선라이즈> 역시 14시간의 만남이 거의 리얼타임으로 진행되었지만, <비포 선셋>은 더욱 사실성에 입각한다. 더군다나 <비포 선라이즈>가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환상을 담은 영화였다면, <비포 선셋>은 사랑을 선택한 연인들의 현실을 담은 영화이다.
제시와 셀린느, 한 사람은 결혼해 가족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연인이 있는 입장이지만 현재의 관계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비슷하다. 결혼한 사람 중에 자기의 결혼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100% 확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나 누군가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땐 그런 회의는 더 커질 것이다.
1편의 배경이었던 비엔나는 두 사람 모두에게 낯선 도시였다. 그랬기에 둘의 관계는 현실의 테두리를 벗어나 더욱 자유롭고 사유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2편의 무대는 셀린느가 실제로 현재 살고 있는 도시, 파리이다. 그녀에게 파리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 영화도 전편과는 달리, 훨씬 더 현실적인 부분에 무게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
5개월에 걸친 시나리오 완성, 그리고 3주간의 촬영 전편의 제작진이 모두 모여 선보인 환상의 팀웍
<비포 선셋>은 오랜 기간에 걸쳐 기획되었지만 시나리오는 5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비포 선라이즈>가 4주의 리허설과 5주간의 촬영기간으로 완성되었다면 <비포 선셋>은 2주의 리허설과 3주의 촬영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의 준비 과정과 감독, 배우뿐만 아니라, 제작, 각본, 촬영, 편집에 이르기까지 전편의 제작진이 모두 모여 환상적인 팀웍으로 짧은 시간에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감독에게는 배우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성숙시켜나가고자 노력하는 에단 호크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영감, 줄리 델피의 뛰어난 재능과 열정, 아름다움과 영리함 등 모든 것이 신선한 자극이었지만, 이들과 다시 한번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한, 링클레이터 감독의 작품 다섯 편에 출연한 바 있는 호크는 감독을 믿지 않았다면 그의 영화에 그렇게 많이 출연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앞으로 다섯 편을 더 찍자고 해도 얼마든지 찍을 것이라고. 영화적인 의미를 떠나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세 사람 사이에 진정한 우정이 있었기에 이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내면 탐구와 사랑의 재발견을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사의 향연
<비포 선셋>은 <비포 선라이즈>와 달리 대사의 집중력이 많이 요구되는 영화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두 명의 배우는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아야 했다. 하지만 노련한 배우답게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다. 특히, 자동차 안에서의 8분 동안의 대화장면은 어느 한 부분 템포를 놓치거나, 단 한번의 NG도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촬영을 끝냈다. 줄리 델피가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가까운 친구와 수다를 떨듯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이었다. 애드립 없이 철저히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면서도 애드립 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해야 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지만 그만큼 연기자로서의 만족감도 컸다고.
에단 호크는 거리의 시인, 벨리 댄서, 놀이공원, 기차 등 볼거리와 주변상황도 다채로웠고,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인만큼 분위기도 로맨틱했던 1편에 비해 <비포 선셋>은 거의 대사만으로 이뤄지는 초 경제적인 영화라고 말한다. 거기에 덧붙여, 그만큼 내면적으로 더 성숙해진 이 영화의 내면적 울림이 관객에게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밝혔다.
감출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파리의 풍경
셀린느가 사는 곳이 파리인 만큼 프랑스 파리에서만 촬영된 <비포 선셋>에는 유명한 서점인 SHAKESPEARE & CO.를 비롯, 노트르담 대사원, 세느강 등의 명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파리는 셀린느의 생활 공간이기 때문에 여행객들의 시야에서 보는 파리가 아니라 삶의 터전인 일상 생활 속의 파리를 그려야 한다는 게 감독의 생각이었다.
파리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관광도시 중 하나지만, 이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들은 파리라는 공간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 가기 때문에 감독은 가능한 한 에펠탑으로 유명한 관광지의 분위기를 배제한 채 영화를 찍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화면 속에 서는 파리의 아름다움이 어쩔 수없이 드러났다고.
창의력을 깨우는 그들만의 촬영방식
이 영화를 찍으면서 특히 어려웠던 점은 광선 문제였다. 늦은 오후를 배경으로 리얼타임으로 진행되는 영화였기 때문에 한낮엔 촬영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촬영이 가능한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영화를 찍는 수밖에 없었다. 스탭들은 시간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렸다가 배우들이 나타나면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NG를 낼 여유도 없이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야 했다. "오케이, 해질 때까지 2시간 밖에 없습니다. 레디 액션!" 이런 식이었다. 거의 모험에 가까운 방식으로 촬영을 한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들 내면 속에 잠자고 있던 창의력이 다시 살아 꿈틀대는걸 느꼈다고.
"1편에서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우린 그냥 우리 방식대로 영화를 찍었다. 그만큼 위험부담도 컸다. 안전그물망 따윈 없었다. 모두들 어느 정도의 압박감을 갖고 힘겹게 그날그날 촬영에 임했지만, 그만큼 재미도 컸다." 링클레이터 감독의 말이다. 여기에 호크는 이렇게 덧붙인다. "일상적인 영역을 벗어난 작업을 한다는 건 스릴 있는 일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업이 성공하면 자신만의 독특한 뭔가를 이뤄냈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에게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 깊은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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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셋(2004, Before Sunset)
제작사 : Castle Rock Entertainment / 배급사 : 에무필름즈
수입사 : 에무필름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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