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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의 날카로움과 해머의 둔탁함... 악마를 보았다
ldk209 2010-08-13 오후 6:02:46 1116   [3]
송곳의 날카로움과 해머의 둔탁함...★★★

 

두 차례 제한상영가 결정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악마를 보았다>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속 잔인한 장면을 감내할 수 있다면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자면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도 특히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김지운 감독이고 배우가 최민식, 이병헌이라는 최고의 진용으로 짜여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줄거리는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매우 단순하고 직선적인 것처럼(!) 보인다. 국정원 요원인 수현(이병헌)은 약혼녀인 주연(오산하)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되자 범인에 대한 잔인한 복수를 다짐한다. 범인이 연쇄살인마 장경철(최민식)임을 확인한 수현은 장경철을 잡아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만 가한 뒤 놓아주고는 다시 잡아 고통을 가하며 응징한다. 그러나 당하기만 하던 경철은 일순간에 수현에 대해 끔찍한 반격에 나선다.

 

무엇보다 <악마를 보았다>의 가장 큰 특징은 잔인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신체를 절단 내고 머리가 터지고, 인대를 칼로 자르고, 안면을 둔기로 강타하고, 송곳으로 얼굴을 뚫고, 입을 찢는 등 화면은 온통 핏빛으로 흘러넘친다. 웬만큼 잔인하다는 영화를 별 탈 없이(?) 봐왔던 나도 대략 세 군데 정도에선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거나 고개가 돌려질 정도였다. 한마디로 <악마를 보았다>는 목불인견적 잔인함으로 치장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화적 잔인함은 실제 현실의 여러 잔인한 범죄와 연결되어 더욱 끔찍하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실로 몸서리처질 정도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잔인하다는 것 자체만으로 비판이나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어차피 성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이고, 최대한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모방범죄 운운하는 주장은 잘 모르고 그냥 지껄이는 말이거나 그저 이런 영화가 싫다는 의사 표현에 불과하다. 오히려 영화에서 사람의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타인의 신체를 훼손하길 두려워할 것이라는 건 너무도 분명하다. 왜냐면 그건 심하게 잔인하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병약해 보이고 보수적 타입의 개그맨 이윤석이 의외로 하드 코어 메탈 매니아인 것처럼 일종의 일탈적 개념에서 잔인한 영화들이 불만과 스트레스를 푸는 통로의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 심의를 통과한 <악마를 보았다>의 잔혹 수위는 한국 영화로서 가장 높은 수준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이 보다 더하거나 비슷한 수위의 외화 - 이를테면 <호스텔> <쏘우> 등의 고문 영화 또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비기닝> 등 - 가 개봉되었다는 점에서 영등위의 제한 상영가 결정은 심히 주관적이고 편파적이다.

 

문제는 잔인하다는 게 아니라 왜 잔인해야만 하냐는 것이다. 악마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니면 현실의 범죄가 그만큼 잔인하다는 걸 확인시키기 위해서? 그저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영화를 보고나면 어느 주장에도 쉽게 동의하기가 힘들어진다. 그건 이 영화가 뭘 보여주고자 만들었는지 그 지향점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악마를 보았다>는 사적 복수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수현의 삶은 공적 영역에 걸쳐져 있다. 이러한 수현의 위치는 이 영화가 사적 복수와 공적 처벌 사이의 철학적 문제제기를 던져 주지는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악마를 보았다>는 이러한 철학적이거나 수현의 고뇌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악마를 보았다>, 아니 김지운 감독의 관심은 복수가 아니라 가장 센 두 명의 남성이 부딪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보인다. 뜨겁고 강렬한 최민식과 차갑고 냉철한 이병헌의 대립은 누구나가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일 요소이고, 그 자체로만 본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야기도 나름 흥미진진하고 김지운의 인장이 찍혀 있는 몇 차례의 유머도 관객의 숨통을 틔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영화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풀어내지를 못한다. 몇 가지 사소한 결점은 영화적 설정이라고 이해해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찰이 연쇄살인마 명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우습고(연쇄살인마는 어느 날 뚝 떨어지는 것이지 그럴만한 사람들의 명단이 확보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보인다) 어설픈 방법으로도 쉽게 장경철의 은신처를 찾아낸 수현에 비해 처음부터 끝까지 헤매는 경찰의 모습도 웃기고, 장경철의 복수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수현이 처제에게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도 웃기다. 이런 설정들은 원인이 쌓여 결론으로 다다르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 맞춰 원인을 만들다 보니 발생한 문제라고 보인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자. 내가 생각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왜 수현은 자꾸 경철을 풀어주는가 이다. 이 영화는 지속적으로 ‘내가 저 입장이라면’이라는 감정 이입을 강조한다.(경철을 풀어줄 때마다 경철의 범행 대상이 포착되고 결정적 순간에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수현은 여성을 구해준다) 왜냐면 관객이 그런 입장에 서지 않는다면 이 영화의 존립 근거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이입하기 힘든 상황이 경철을 풀어주는 가장 기본 상황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이 그러겠지만, 내가 수현 입장이라면 경철을 잡아 누구도 찾기 힘든 곳에 도저히 풀 수 없는 쇠사슬 등으로 묶어 놓고는 매일 매일 잔인한 고문으로 괴롭히다 죽일 것이다.(스스로 악마가 되는 과정) 왜 굳이 풀어주어 잡는 노고를 해야 하는가. 영화적으로도 풀어주는 게 안 좋은 방법이라는 건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그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했고, 경철이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도 말했지만, 수현이 경철을 풀어주지 않고 잡아 둔 채 고문을 한다면, 굳이 이 영화를 만들 이유는 없다. 그런 영화는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철을 풀어준 이유는 다른 영화와의 차별성을 위해서, 경철의 반격과 함께 그럴듯한 결론을 맺기 위해서란 말인가?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출연 배우들의 연기에는 대체로 긍정적인 것 같다.하지만 나는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힘들다. 물론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가 좋은 연기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이병헌의 연기는 <달콤한 인생>의 자장 안에 있고, 최민식의 연기는 워낙 센 연기라 어느 정도 연기력이 있는 배우라면 누구라도 괜찮은 연기였다는 평가를 얻을 배역이라는 점이다. 일종의 착시 현상이라고나 할까.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 경력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작품을 꼽을 때, 과연 <악마를 보았다>가 몇 번째에 위치해 있을까를 생각하면 그다지 높은 순위를 차지할 것 같진 않다.

 

아무튼 <악마를 보았다>를 보고 나와선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당히 힘들다는 걸 느꼈다. 날카로운 송곳이 신체를 관통하고 둔탁한 망치와 각종 무기가 신체의 일부를 박살내는 장면들이 쌓이고 쌓여 내 신체가 마치 그런 만행의 대상이 된 듯한 아픔을 동반했다. 만약 <악마를 보았다>가 관객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만든 영화라면 일단 내 입장에선 성공한 것이다.

 

※ 김지운 감독은 박찬욱이나 봉준호 감독이 되고 싶은 것일까. 영화의 곳곳에서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연상되는 장면을 만나게 되는 건 꽤나 흥미로웠다.

 

※ 영화의 시사회가 끝난 시간 정성일 평론가는 트위터에 딱히 <악마를 보았다>를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이 영화를 보고 쓴 듯한 글을 하나 올렸다. “배우들은 자기 경력에 초조해지기 시작하면 '쎈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참인가? 그런데 그건 감독들도 마찬가지이다.”

 

 


(총 0명 참여)
jhee65
너무 잔인하드라   
2010-08-19 22:31
verite1004
그럴 수도...   
2010-08-15 16:24
qhrtnddk93
그냥그래여   
2010-08-14 14:19
k87kmkyr
안좋다고해여   
2010-08-14 12:07
1


악마를 보았다(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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