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안이 분주하다. 관객들은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끙끙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장르 영화들이 그러하듯 초반과 막판 몇분만 버티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여성관객 상당수는 경철(최민식)의 동료가 푸주간 고기 처럼 여자를 질질 끌고나와 도륙하려는 중반 무렵에 이르자 삼삼오오 극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김지운 감독의 화제작 [악마를 보았다]는 개봉 직전일인 어제가 되어서야 심의위원회로 부터 일반관 상영 허락을 받은 사상 초유의 영화로 기록되었다. 영화를 다시 곱씹어 생각해 보면 영상등급위에서 문제가 되어 편집된, 인육을 개와 나누어 먹는 장면이나 도려낸 시체를 바구니에 던져담는 씬은 이미 과하디 과한 영화의 장면들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을 듯 하다.
국정원 경호 팀장이자 약혼녀에게 참으로 다정다감한 주인공 수현(이병헌)은 강둑에서 약혼녀의 절단된 머리가 떠오르자 끓어오르는 분노와 자괴감을 동시에 느낀다. 강력계 형사였던 장인과 동료의 지원으로 연쇄살인마 경철(최민수)을 찾아내 지독한 복수를 시작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뻔하디 뻔하고 지루한 "복수극 타령" 쯤으로 보이겠지만 이 영화는 두가지 면에서 차별화 전략을 구사한다.
첫번째는 복수의 스타일이다. 한국에서 복수 영화라고 하면 단연 복수 3부작 [올드보이] [복수는 나의것] [친절한 금자씨]를 만든 박찬욱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역시나 박찬욱 감독은 엔딩의 "도움주신 분"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복수 3부작에서 보여준 복수들이 응집된 분노를 마지막 한방에 터뜨리는 것과 달리 [악마를 보았다] 의 수현(이병헌)은 초반부터 복수를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마치 복수행위 자체를 점차 즐기려는 듯, 반쯤 죽였다 살렸다를 반복한다.
두번째는 잔혹함의 온도이다.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살인마를 난도질 하는 장면이나 타란티노의 "거친 녀석들"에서 야구배트로 나치의 머리통이 터질 때까지 내려치는 장면은 잔혹함의 강도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럽겠지만 그들의 영화속 잔혹함은 뜨겁고 한편으로는 예술적이다. 오히려 그 영화속 악인들은 경철(최민식)보다 덜 악하게 그려졌음에도 복수의 쾌감이 있는데 반해 [악마를 보았다]의 복수는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한채 너무나 서늘한 채 우리 몸을 훑다 빠져나간다. 처음부터 김지운 감독이 밝힌 바와 같이 이 영화는 복수 자체에 포커스를 두지 않았으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잔혹함은 영화속 그것보다 훨씬 잔혹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만약 그것이 감독의 의도였다면, 그저 영혼이 없는 자와 영혼이 파탄나 버린 짐승간의 대결 구도에 촛점이 있거나,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연쇄살인의 잔인함을 눈앞에 들이밀고자 한 것이 의도였다면 김지운 감독의 결과물은 어느 정도 만족스럽다. 특히 택시 안에서 3명이 벌이는 살인 시퀀스는 관객을 집단 경직의 상태로 밀어 넣을 만큼 아찔하다.
아마 이 영화를 본 여성관객 모두는 여지껏 실제 연쇄 살인범 뉴스를 접했을 때 보다도 밤길 걷기가 심히 두려울 것이며, 남성관객은 [아저씨]의 원빈이나 이병헌 처럼 엄청난 격투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복수는 꿈도 꾸지 못할 것이라는 자괴감에 한숨 지을 것이다. 또한 첫 부분에서 경찰이 수현 약혼녀의 잘린 머리를 라면박스 같은 데 허둥지둥 담아 나르다 자빠져서 시체와 함께 나동그라지는 장면이나 번번이 살인 사건이 터진 뒤에 달려오는 경찰들의 속터지는 행태는 최근 부산에서 일어난 "부산 도끼사건" 을 떠올리게 하여 더욱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한다.
문제는 일부 관객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간에 극장문을 나선 것이나, 대다수의 관객들이 상당한 불쾌감을 내뱉으며 엔딩크레딧을 맞이하는 것을 보면, 김지운 감독의 의도야 어찌되었든 미움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고, 그것보다 두려운 것은 많은 김지운 감독의 팬층이 이탈 할 수도 있겠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특정 장르 영화에 도전하는 감독의 지대한 욕심을 누가 나무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숨길 것은 숨겨야 하는 미학의 관점으로 볼 때 굳이 이렇게 까지 다 보여줘야하나 하는 물음은 경철(최민식)이 자기의 똥을 마구 헤치는 장면에 이르면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만다.
또한 이 영화에 표현되는 성폭행 장면은 그 묘사의 접근도가 매우 강해서 자신도 모르는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불순한 충동감에 남성 관객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할 정도라면 과장일까. 물론 여성 관객에게도 어쩌면 신체 절단 장면보다도 더 불쾌하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간호사를 성폭행 하면서 "어짜피 하게 될텐데 너도 즐기는게 좋지 않아?" 하던 장면이나 학원 여고생을 성폭행하는 장면의 묘사는 최민식의 면상에 흐르는 개기름 연기와 상승 작용을 하여 꿈에서라도 떠올 리기 두려운 장면을 연출하였다. 또한 경철(최민식)의 성폭행을 거부하는 듯하다가 더 적극적으로 혀를 낼름거리는 공범녀의 태도는 대다수의 성인물에서 표현되는 것과 같이 일부 남성들에게 빗나간 성적 환타지를 심어주는 계기를 제공한다.
김지운 감독은 전작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 놈]에서 광활한 대지를 원없이 내달렸음에도 그 어정쩡함이 발목을 잡았던 아쉬움을 [악마를 보았다] 에서도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또 다시 어딘가에 머물러 있게 된 것은 아닌지. 도를 지나친 잔혹함 때문에 더 이상 몰입할 수가 없어서 테크니컬한 연기를 구사했다는 배우 최민식의 솔직한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절정에 오른 두 배우의 힘에 기대어 감독이 원했던 잔혹함과 광기를 표현하는데 일정 부분 성공했음 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의 상투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상하리만치 익숙한 장면들 의 연속과 결투신 등에서 흘러나오는 상투적인 배경음악은 고수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고, 허무한 복수의 울부짖음에도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개연성 때문에 한발자욱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은 김지운 감독의 팬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아쉽다.
김지운 감독님. [반칙왕]에서 송강호가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사랑하는 여자앞에서 고백하던 장면과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이 복수의 순간에 "말해봐요. 나한테 왜그랬어요" 라고 묻던 장면의 그 뜨거운 가슴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제발 돌아오십시오.
Filmania cropper, 원성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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