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서는 아쉬움.. 액션으로는 일정한 성과....★★★
다음과 같은 스토리의 영화가 있다고 해보자. 특수요원 출신의 한 남자가 작전 수행에 따른 보복으로 가족을 잃고 죄책감과 좌절 등으로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다 어린 소녀와 소통하게 되고, 그 소녀로 인해 세상에 조금씩 나오게 된다. 그런데 범죄 조직이 소녀를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전직 특수요원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 범죄 조직을 상대로 잔인한 복수극을 벌인다.
만약 <아저씨>가 세상에 선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위의 영화는 단연코 <맨 온 파이어>였을 것이다. 조금만 변주한다면 <테이큰> 정도? 하긴 이런 스토리의 영화야 널리고 널렸다. 이 정도로 <아저씨>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아저씨>에서 가장 놀랍고도 획기적(!)인 건 복수의 주체가 비현실적 외모의 원빈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원빈이 아저씨라니!!!! <아저씨>는 송강호나 설경구 등의 40대 배우를 예상하며 쓰였던 시나리오를 원빈이 덥석 집어 들면서 처음과는 전혀 다른 색깔로 변해버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원빈은 연기 변신이라기보다는 연기의 다양화에 한 방점을 찍게 되었고, 특히 액션장면만 놓고 본다면 분명 한국 액션 영화사에서 나름의 족적을 남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저씨>의 액션은 기름기를 뺀 바삭한 튀김의 맛이라고 할까, 한마디로 깔끔하고 간결하다. 기존 한국 액션영화에서 봤었던 큰 기술을 이용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특수부대 요원이 익힌 살상기술이라면 가장 빠르게 상대방의 급소를 단숨에 끊어버리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도 현실적 액션이라고 본다면 <아저씨>도 결국 <본 시리즈>의 자장 안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데 한국 영화에선 보기 힘든 총이 자주 활용되다보니 잔인함과 다양성에선 조금 부족해 보이는 감이 있다. 특수부대에서 익힌 폭파술이라든가 온갖 살상기술을 활용했더라면 고문하고 복수하는 장면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 봤던 많은 리뷰에서 이 영화의 잔인함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잔인함을 예상하고 봤기 때문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원빈이라는 배우로 인해 잔인함이 상쇄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현실적 액션과 함께 우리 시대의 잔인한 범죄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려 한 점도 눈에 띈다. 그게 실제 우리의 현실인지(그렇다고 하면 너무 끔찍하다) 아니면 상상력의 산물인지를 떠나 여러 보도를 통해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가 점점 흉악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된다고 본다. 그런데 영화 <아저씨>의 이런 부분은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어둠의 아이들>의 원작 소설인 양석일 저 <어둠의 아이들>의 일부 모티브를 차용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원작 소설로도 읽기가 너무 힘들어서 영화는 보질 못했다) 특히 차태식(원빈)이 종석(김성오)에게 “아이들이 죽고 나서도 구천을 떠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느냐”고 힐난하자 종석이 “아이들의 몸이 얼마나 돈이 되는지 너는 생각해봤느냐”며 반문하는 장면(정확치는 않지만)의 대사는 확실히 그러하다. 그래서 가끔은 영화에서 그리는 우리 시대의 초상화가 현실의 대한민국이 아닌 동남아 어디쯤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는 <아저씨>가 현실과 비현실의 묘한 혼합의 느낌이 있음을 의미한다. 비현실이라는 게 꿈이라든가 상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무국적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딱히 단점이라고 지적하긴 그렇지만, 종석이 조그만 풀장에서 옷을 벗고 몇 명의 여성들과 노니는 장면이라든가 특히 가장 인상적인 액션이 펼쳐지는 마지막 부분에서의 미장센은 홍콩 느와르를 포함한 많은 외국 액션 영화의 모방으로 보인다.
액션에서의 일정한 성과에 반해 드라마로서는 아쉬운 지점이 있다. 특히 초반부 태식과 소미(김새론)의 소통 장면이 아무리 그럴듯한 음악으로 치장되어 있다고는 해도 아이의 납치 이후 태식의 급격한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좀 부실하다. 이 부분은 <맨 온 파이어>에서 덴젤 워싱턴이 다코타 패닝으로 인해 변화되는 과정이 절절하게 그려져 후반부 복수에 동기 부여를 했던 것과 비교되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그 정도의 소통과 태식의 상태라면 처음 소미와 엄마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경찰에 신고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다. 나로선 처음부터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고자 광분하는 모습은 쉽게 납득하기 힘들었다. 감독 입장에서도 이런 점이 의식되어서인지 태식의 복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을 중간 중간 삽입시킴으로서 잔인한 복수와 태식의 분노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는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는 관객을 상대로 확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태식에게 확보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전반적으로 조연급의 뛰어난 연기(어느 정도는 스테레오 타입이긴 해도)에 비해 원빈의 연기, 그 중에서도 대사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가급적 대사가 없는 역할이다 보니 한 번 입을 열 때마다 말 그대로 ‘영화 같이 멋진 말’들만 쏟아 내는 건 원빈을 보러 온 여성 관객에게는 환호성을 지를 만한 선물일지는 모르겠지만,(실제 가끔 환호소리가 들린다. 특히 원빈이 웃통을 벗고 나올 때) 영화가 아니라 일종의 뮤직비디오 같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신체적으로도 그러하다. 카메라가 근접 촬영을 할 때는 큰 흠이 되지는 않지만, 조금만 떨어져도 저토록 야실한 신체가 살인무기라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어진다. 특히 달리는 자동차를 따라가는 원빈을 뒤에서 잡은 장면을 상기해보자. 휘청대며 뛰어가는 원빈의 신체에서 강인함보다는 연약하다는 느낌이 먼저 와 닿는다. 이건 확실히 액션 영화 속 주인공으로서는 치명적 흠이다.
※ 처음 이 영화를 보려고 마음먹은 데는 김새론의 출연이 있었다. <여행자>에서 처음 만난 이 꼬마 연기자의 향후 행보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할 때문인지 <여행자>에 비해 굳어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 원빈과 김새론의 관계보다는 오히려 원빈과 대적해야 할 범죄 조직의 킬러인 타나용 웡트라쿨(그냥 읽는 것도 어렵다)과의 관계가 더 흥미롭다. 콧수염 킬러는 처음 만날 때부터 분명히 원빈에게 반한 것으로 보이며, 이 영화에서 가장 불꽃이 튀기는 지점도 둘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나이트클럽에서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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