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http://mqoo.blog.me/100110585189
아저씨 (2010)
다코타 패닝의 미모(?)가 절정에 달했던 영화, <맨 온 파이어>에서 크리시(덴젤 워싱턴) 형님께서는 용서를 말하는 노인에게 다음과 같은 명대사를 날려주신다.
용서는 그들과 신의 문제일 뿐, 제 일은 그 만남을 주선하는 겁니다.
(Forgiveness is between them and god, my job is to arrange their meeting.)
그리고, 영화 <아저씨>에서의 태식(원빈)도 소미(김새론)를 납치한 악당에게 비슷한 맥락의 대사를 날린다. 소미를 찾아도 너희 둘은 죽는다, 라고. 그렇다. <맨 온 파이어>와 <아저씨>, 두 영화는 참 많이 닮았다. 상처를 입고 마음의 문을 닫은 '전직 무엇무엇'의 주인공과 그의 마음을 열게 한 아리따운 소녀의 납치, 그리고 그 조직에 대한 처절한 응징까지. 그것이 싫든좋든 간에 영화 <아저씨>는 개봉하기도 전부터 <맨 온 파이어>와 함께 얘기되어야만 했다. 더불어 불후의 명작, <레옹>과 흡사하단 얘기도 많은데 극중 레옹(장 르노)과 마틸다(나탈리 포트만)의 관계만 생각해봐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다.(영화 초반, 흰 우유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레옹>을 떠올렸던 건 나뿐일까?) 어디 그 뿐이랴, 영화 <아저씨>는 보기 전부터 혹은 보고난 뒤에 자동연상 되는 영화가 줄줄이 사탕마냥 있음이 사실이다.
180 센치미터의 키에 오른 팔 달과 별 문신, 이라는 단서만으로 조직을 섬멸하고 딸을 구하는 슈퍼아빠액션영화 <테이큰>이 연상되기도 하고, 한 조직에 대한 한 남자의 스타일리쉬한 복수와 응징이라는 면에서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 떠오르기도 한다. 뭐, 단순히 국산유괴영화라는 점에서 <파괴된 사나이>나 <세븐데이즈>, <그놈 목소리>까지 떠올릴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아저씨>는 언뜻 보기에 여러 영화들을 적당히 버무려 흉내낸 영화로 치부될 위험성을 충분히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말이다, 그런 우려따위 개나 주워 먹어라.
영화 <아저씨>는 분명, 개별적인 영화로써 매우 멋진 영화임에 틀림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엄청 유명한 타 영화들과 비교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비슷한 설정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가 자기만의 길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는 '배우 원빈'이 있다. 원빈의 재발견이라든가, 수컷으로 돌아왔다느니 하는 얘기는 널리고 깔렸으니 생략하기로 하자. 다만, 이전 작품이 봉준호 감독의 <마더>였으니만큼 그의 스펙트럼이 꽤 넓어졌다는 데에 충분히 동의하며, 누구든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리라 확신한다.(다음 번 T.O.P CF 말고)
(의외로 이 영화, '소통'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소미는 말야, 네일아트 하겠다고 남의 손톱에는 이것저것 잘만 그리는 애가 자기 손톱은 왜그리 깨끗한지. 허허.)
어쨌거나 영화 <아저씨>의 미덕에 대해 읊어보자. 우선 영화는 매우 간결한 스토리 라인을 갖는다. 태식의 과거와 같이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나 자칫 극이 느슨해질 수 있는 부분은 짚고 넘어가는 정도로만,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더이상 의문을 남기지 않는다. 또, 극의 초반 소미와의 소통이 엿보이는 장면이나 납치 후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 또한 매우 간결한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맨 온 파이어>나 <테이큰>과는 다른 부분이다. <맨 온 파이어>만 보더라도 '크리시와 피타(다코타 패닝)의 추억 만들기'가 영화의 1/3은 되지 않았던가. 이는 <아저씨>라는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에 그 역량을 집중한 까닭이다. 영화는 살을 깎아내고 잘라, 차태식이라는 인물과 그의 액션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그 전략은 매우 성공적으로 들어맞는다.
이 영화에서의 액션은, 그야말로 무자비하다. 동시에 그것이 감독에 의한 치기어린 장난이 아닌 영화 속 인물인 태식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으면서까지 택한 액션씬들은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인 동시에 다른 영화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그 무엇'이다.(물론, 단순히 더 잔혹하고 묘사가 적나라하다는 건 아니다.) 태식은 단순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적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섬멸 자체가 목적인양 찌른 데를 또 찌르고, 동맥을 그어버리고, 꺾고 꺾어 충분히 제압당한 적을 찔러 마무리 한다. 서두에도 언급했던 '소미를 찾아도 너희 둘은 죽는다'라는 대사처럼, 그에게 협상의 여지 따윈 없어 보인다. 또, 그런 액션씬들이 꽤 현실감 있게 펼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카타르시스마저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영화의 중반 이후, 정확하게는 총을 구하고 머리를 깎은 뒤부터 펼쳐지는 태식의 응징을 보노라면 그가 단순히 소미를 구하기 위해 그랬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해소되지 않은 슬픔을 지닌 채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조용히 지내려던 사람이다. 그래서 조금 귀찮더라도 사건이 금새 해결되길 바라며 가방을 건내줬고 지구대에 신고도 하고 거래에도 응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바람과 일상은 무참히 짓밟히게 되고 다시는 일상으로 복귀할 수 없는 수순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즈음에 이르자 그는, 폭발한다. 딱히 무어라 규정짓기 어려운 분노의 폭발로 인해 그는 애초의 목적과는 별도로 '끝'을 보려 한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야 비로소 태식이 가하는 무자비한 폭력에 수긍이 간다. 생각해보라, 여느 영화에서라면 겁에 질려 전의를 상실한 적을 망설임 없이 쏴버리진 않는다.
(뭐, 원빈이 머리를 깎는 장면에서 일부 여성관객들의 비명사태가 벌어졌다는 소문이 있는데, 나는 한 쪽 눈을 가리우는 그 머리가 더 좋더라. 그래도 왠지 싸울 땐 불편하겠지? 그나저나 태식은 눈 한번 깜빡하지 않는구나.)
뭐, <아저씨>를 보며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내가 보기에 태식은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간혹 갑작스런 대사를 내뱉어 다소 당황하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밝혀보는 '태식의 갑작스런 발언 3종 세트'는 대략 이러하다.(영화를 보면 무슨 대사인지 다 알 수 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①오늘을 산다 ②구천을 떠돈다 ③금니가 어쩌고 .. 나 전당포 하거든! ..뭐, 다른 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태식이 저 대사들로 인해 조금 경박해보이진 않았을까 살짝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말이란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그저 태식이 너무 오랫동안 외부와의 소통이 없어서 그랬으려니 생각하고 말아야겠다. 태식의 대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초반에 '남에 물건에 손대지 마'라고 했을 때 목에 너무 힘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사족)
사실, 영화를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태식의 대사가 아니라 소미를 연기한 김새론 양의 연기였다. <여행자>에서 신들린 땅파기 스킬을 몸소 보여줬던 김새론 양이었지만, <아저씨>에서는 다소 수동적인 연기만을 선보인다. 대사와 다음 동작 사이에, 그 연결점이 어색했던 것은 물론이고 울먹이는 부분에서는 너무 '연기'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뭐, 딱히 누구를 탓할 양은 아니지만서도 역시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내가 <여행자>에서의 김새론 양을 너무 눈독 들였던 탓일까? 아니면, <아저씨>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을 무렵부터 김새론 양이 출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무조건 보기'로 다짐했던 탓일까? 휴아..
어쨌거나 내가 꼬집은 조그만 흠집에도 불구하고, 영화 <아저씨>는 올해 가장 화끈하고 시원한 영화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크리딧이 올라가면서 흐르는 엔딩곡 'Dear' 들으면서 혹 누군가는 전율할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이 멋진 영화가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승자가 되길 기원하며, 2년 만에 던지는 식상한 멘트로 마무리 해보자. 한국영화 파이팅!
너무 아는 척 하고 싶으면
모른 척 하고 싶은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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