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기대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더 큰 감동과 여운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글을 쓰게 됩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동안은 이 영화가 나를 사로잡게 될 줄 몰랐습니다. 초반부는 약간 지루한 듯 잔잔하게 진행되었거든요.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한 시점은 설경구가 공주를 강간하려고 한 때부터였습니다. 장애인이라서 해주면 아이구 고맙지 하며 순순히 응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공주의 저항은 정상인보다 더 필사적이었고 심지어 기절까지 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 나오는 둘의 정사씬을 훨씬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설경구는 미안한 마음에 공주를 다시 찾아가게 되고 서로 얘기를 나누며 사랑을 싹틔우죠.
영화에서 종종 문소리(공주)가 정상인이 되서 나타나곤 하는데 이는 공주의 설경구에 대한 사랑표현의 욕구겠죠. 하지만 곧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몸으로 돌아옵니다. 표현하고 싶지만 할 수 없음을 보는 관객으로서는 안타까움에 답답해집니다. 지하철 씬에서 처음으로 정상인의 모습으로 문소리가 나오는데 앞의 커플을 보고 설경구의 머리를 플라스틱통으로 때리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문소리의 애교있는 뒤통수치기에 미소를 머금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상상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 표현은 이상한 웃음으로 대신하죠. 만약에 제가 지하철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한다면 어디 아픈가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표현하고 싶지만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노래방에서도 나타나는데요. 이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더군요. 전에 공주의 집에서 설경구는 노래를 해줍니다. 공주는 안되지만 따라 불러보며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같이 노래방에 가게 되죠. 공주가 노래하기는 거의 불가능해보입니다. 한 마디 한마디 하기가 힘겨운데 말이죠. 웬일인지 공주는 분명히 선곡을 합니다. 설경구가 마이크를 대주었을 때 억지로라도 부를려고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부를 생각은 없는지 반주기에 흘러나오는 가사만 응시합니다. 불러줄 순 없지만 가사로서 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오늘따라 이 가사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군요. 아마도 설경구도 그 마음을 이해한듯 싶습니다. 지하철에서 또 다시 공주가 정상인이 되어 노래를 불러주는데요. 앞에선 공주가 상상한데 반해 이 부분은 설경구가 느낀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아마 노래방에서 공주의 마음을 이해했나봅니다.
설경구 엄마의 환갑날이 공주에게도 생일이었나 봅니다. 얄미운 오빠네가 찾아와 공주와 함께 누운 설경구를 보며 기겁을 합니다. 공주는 그 전에 계속 나름대로 의사표현을 했지만 알아듣지 못한 설경구는 결국 잡히죠. 관객과 두 남녀주인공만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고 그 외 모든 사람들은 오해를 합니다. 설경구는 아주 인간 말종의 강간범으로 오해받고 별다른 항의도 못합니다. 전과3범에 강간미수혐의도 있었는데 말해봐야 씨알도 안먹힐게 뻔하죠. 이제 남은 건 공주밖에 없읍니다. 사람들은 듣지도 않거니와 흥분한 공주는 제대로 말이 안나옵니다. 이 쯤 되면 가슴이 미어지고 답답한 마음에 영화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집니다. 답답하고 불편한 마음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느꼈던 그 것과 유사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기분으로 영화가 끝이 나지만 이 영화는 사막같은 답답함이 오아시스를 만나듯 희망을 품으며 결말을 맺기에 무척 감동적입니다. 둘의 사랑을 세상이 오해하고 갈라놓았지만 이 둘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전에 오아시스 그림 위로 비치는 나무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걸 상기한 설경구는 나무를 자르기 시작합니다. 공주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 도로에서 라디오 크게 틀고 춤췄던 때처럼 라디오를 크게 틀어놉니다. 주변사람들의 눈에 보이기에는 미친 짓으로 밖에는 안보이겠지만 이 둘은 서로 교감을 나눕니다. 설경구는 다시 교도소로 가지만 이제 공주는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거울을 벽에 비춰보며 비둘기, 나비들을 보지 않습니다. 대신에 자신과 주변을 가꾸며 그녀의 사랑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