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어렵기만한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영화 만삭의 여인이 바닷가를 배경으로 선 채 배를 만지고 있는 모습은 아름다움 이상의 따듯한 감동마저 느껴진다.
"프랑소와 오종"
프랑스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지만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프랑스 감독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프랑소와 오종을 꼽는다. 유명한 프랑스 배우들의 총 출동해 관심을 끌었던 <8명의 연인들>부터 시작한 그와의 악연은 스릴러 <스위밍 풀>을 지나 천사같은 아기 <리키>까지 신선한 스토리와 독특한 소재로 많은 기대를 하지만 직접적인 묘사나 설명보다 비유나 생략을 통해 흐름을 읽어 나가야 하는 그의 작품은 매번 넘기힘든 벽을 실감케 하는 작품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유머에 인색해 영화 한편을 다 보도록 웃음 한번을 허락하는 그의 고집스러움은 <레인>의 아그네스 자우이 감독처럼 곳곳에 유머 섞인 위트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영화 스타일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그의 신작 <레퓨지>도 그가 선보였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특징을 보이며 그가 말하려는 사랑과 상처의 치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성간 혹은 동성간 그리고 조금 더 크게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에 대한 여러가지 사랑에 대해 말하는 이번 작품도 역시 직접적인 사랑에 대한 묘사나 표현 대신 비유나 연상을 통한 전개와 여전히 웃음에 인색한 그의 모든 특징이 녹아 든 작품이라고 본다. 역설적으로 이런 그의 고집스러움이 그의 영화를 사랑하고 어렵지만 계속 보게 만드는 그만에 매력이기도 하다.
"충격의 연속"
하지만 영화 초반은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들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프랑스 밤 거리를 배경과 함께 젊은 남녀 루이와 무스가 마약을 탐닉한다. 얼마나 주사를 놓았는지 수많은 바늘 자국이 선명하고 그들도 어디에 놓아야 할 지를 고민하다 결국 다리나 목에 주사를 놓는 장면은 사랑 영화의 시작치고는 가히 충격적이다. 그런 밤이 지나 깨어난 루이는 뭔가에 쫒기는 듯 다시 주사를 놓고 그대로 생을 마감하고 남겨진 그녀 무스의 이야기, 즉 사랑한 사람을 떠나 보내면서 다른 한 생명이 찾아 온 상황에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한다.
사랑했던 루이를 떠나 보내고 사랑한 결실을 잉태한 것처럼 그녀에게 루이의 동생 폴이 곁에 다가온다. 아이를 지울까를 고민한 뒤 머물던 그녀가 쉼터(레퓨지)에 폴이 찾아온 것이다. 동생 폴도 형 루이의 죽음 이후 남겨진 상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녀의 레퓨지로 찾아 간다. 그런 만남의 감격도 잠시, 불륜으로 보일 수 있기에 또 다른 놀라움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니 그는 이성을 사랑하기 보다는 동성을 사랑하는 남자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또 다른 충격적인 상황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놀라운 충격의 장면이 대미를 장식한다. 어쩌면 무감각할 수 있어 충격이 아닐 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겐 이런 모습이 아직까지는 충격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에선 이런 상황들이 놀랍게 그려지거나 파격적이지 않다. 사랑에 대한 큰 이야기 흐름을 이어가는 중 섞여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비춰질 뿐이기에 이들도 그런 놀라움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모습처럼 이들의 놀라운 상황의 연속은 부각되지 않고 약간의 파장을 만든 뒤 사랑의 감정처럼 자연스레 사라질 뿐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기억이 있나요?"
<레퓨지>는 많은 충격 속에서도 사랑에 대한 큰 흐름은 놓치지 않는다. 그녀 혼자서의 삶에 끼어 든 폴과의 일상에서 인정하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사랑이 머물렀던 것 처럼 그녀는 사랑받고 싶은 여인일 뿐이다. 폴이 동성애자이기에 사랑에 목마를 때 다른 남자로부터 사랑을 채우려고 그녀를 유혹하는 남자와 동행도 하고 혼자서 춤을 추다 접근하는 남자와 춤을 추며 사랑에 갈증을 풀어보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배 속에 아이를 자각하는 순간 사랑의 환상에서 바로 현실로 돌아와 자리를 찾는다.
그렇지만 단 한명의 남자, 즉 폴에게만은 사랑의 빈자리를 허락하고 심지어 자신의 배를 만지며 사랑을 나누기까지 한다. 한때 무스가 사랑해 임신까지 한 루이와의 사랑은 진정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폴과는 서로의 상실을 채워가며 진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기억이 있는지를... 그녀에게 접근해 단순히 쾌락을 탐하려던 남자들과 달리 비록 동성애자였지만 그와는 사랑을 나누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그 순간에 그들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렵고도 아름다운 사랑"
루이가 남긴 사랑의 빈자리를 채운 폴, 그들을 사랑한 무스의 이야기는 모두 사랑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모습이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사랑에 대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찌보면 답답하기까지하게 자신들의 마음을 숨긴다. 차라리 동생 폴은 자신의 동성애를 과감히 표현하고 드러내지만 그 또한 그녀에 대한 감정이 명확하지 않다. 점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사는 것이 일상의 삶이 된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감정인 사랑을 프랑소와 오종은 그만의 방식으로 그려낸다.
여전히 쉽지 않았던 프랑소와 오종 작품인 <레퓨지>는 단 한번의 웃음을 허락하지 않은 건조하고 어려운 '사랑학 개론'이었지만 우리들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 작품이었다. 아이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형 루이와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동생 폴 그리고 아이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그녀 무스의 묘한 관계는 상실을 치유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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