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를 만든 남기웅 감독은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선생님과 매춘하다 토막살해당하고 재봉틀로 수선되어 거대성기를 가진 사이보그로 부활... 세계적으론 완전히 새로운 상상력은 아니지만(일본만화틱하다고 할까) 적어도 우리영화에선 정말 새로운 캐릭터들이었고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뚝심이 멋졌다.
우렁각시는 한마디로 적응하긴 조금 어렵지만 어쨌던 유쾌하고 재밌다. 대학로와는 많이 다른다. 어찌보면 대학로의 순수 아마츄어리즘이 남기웅감독에겐 거대한 자본인(?) 4억원을 만나면서 조금 어정쩡하게 변한건지도 모르겠다. 막나가던 상상력대신 유쾌한 엇박자가 전면에 깔린다. 센센이션한 장면은 없고 전체 흐름도 예상대로 흘러간다.
물론 일반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겐 낯설다. 하지만 대학로를 기대한 사람들에겐 뭔가 좀 심심하다. 이 지점의 차이가 조금 어정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뭐 어떠하랴. 꼭 저예산영화는 파격으로만 승부하는건 아니니까 남기웅 감독은 양지점에서 조금씩 양보한건 같다. 충분히 관습적인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그들을 비쥬얼적으로 독특한 공간에 던져놓고는 공간 비쥬얼과 그들의 다소 얼빠진 대사와의 충돌을 만들어낸다. 공들인 미술로 표현된 공간이 얼마나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는 가는 보는 이의 몫인듯 싶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공간연출과 미술, 의상, 음악 등 아트웍에 기반하여 판타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 이명세 감독 말고는 이렇게 영화의 종합예술 측면에 고민하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남기웅 감독은 소중하고 아껴주어야할 감독이다. 꼭 드라마가 꽉 짜여 있어야만 잘 만든 건만은 아니지않은가. 고구마는 기대대로 천방지축스럽고 능청스럽다. 우렁각시는 예쁘다. 최고의 흥행조연 기주봉은 거의 주인공을 맡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며 기주봉은 좋은 친구들의 조 페시와 같은 단순하지만 잔인한 역할이 딱인 듯 싶다. 오랫만에 보는 조상구는 여전히 터프가이, 카리스마 그 자체다. 아쉬운 것은 할멈의 캐릭터가 좀 어정쩡하다.
우렁각시가 독에서 나오고 킬러가 등장하고 고구마가 나오고.. 이러한 소재를 가지고 돈도 안들이고 유쾌한 판타지로 만든 남기웅감독은 소중한 존재이다. 그에게서 한국의 장 삐에르 쥬네를 기대하며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같은 작품을 기다리는건 조금 무리일까 하지만 그런 영화를 시도해볼 수 있는 감독을 꼽아보면 남기웅감독만이 떠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