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깡패 같은 애인>은 얼핏 ‘박중훈의 영화’처럼 느껴지지만 이른바 ‘88만원 세대’인 세진의 고통도 현실감있게 잘 녹여냈다. 후배들이 수시로 비웃는 가운데 새로 등장한 전직경찰을 처리해야 하는 동철의 난감함은, 면접 때 면접관들의 장난으로 율동과 함께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를 부를 수밖에 없는 심란한 처지와 별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 영화는 예측 가능한 상황을 영리하게 잘 비켜간다. 설정은 도식적이지만 그 전개는 참신하다. 박중훈과 정유미 두 배우가 서로 교집합이 없는, 전혀 다른 세대에 속한 배우들임에도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여러 장면들이 예쁘게 그려진다. 무엇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건 그런 과정이나 디테일이 억지스럽지 않다는 거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처한 위치가 힘들어서인지 두 사람이 연인관계로 발전한 이후에도 지루하고 억지스런 밀고 당기기가 없다. 동철이 룸살롱에서 합기도 사범들에게 구타당하는 장면 등 좀더 과도하게 웃기거나 액션을 더할 수 있는 장면들도 결코 오버하지 않는다. 장르적으로 좀더 요란한 솜씨를 뽐낼 수도 있겠지만 철저히 현실감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은 순전히 한눈팔지 않고 이야기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김광식 감독의 담백한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