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호시탐탐 왜군 침범의 기운이 감돌지만 조정은 민심을 등진 채 당파싸움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 때에 정여립, 황정학, 이몽학은 썩어빠진 나라를 구하고 왜군도 무찌르자며 대동계를 만들지만 서인은 대동계를 역적으로 모함하여 정여립을 숙청하고 대동계를 해체하려 합니다. 이에 이몽학은 조정에 반기를 들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정관료들에게 칼을 겨누며 대항합니다. 그러나 황정학은 이몽학을 만나 정여립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이몽학을 쫒게되고 그 길을 이몽학에게 죽은 아버지 한신균의 원수를 갚기 위한 서자 견자도 동행하며 이들의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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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박흥용 화백의 동명 만화가 견자라는 인물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주된 내용의 원작에 비해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선 비운의 시대를 산 세 남자가 벌이는 야망과 대립 관계에 비중을 두어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몽학을 연기한 차승원은 야망을 위해 냉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날선 연기를 보였고, 상대역인 황정학을 연기한 황정민은 넉살과 능청스러움으로 둥글 둥근한 맹인 검객을 연기하여 반대되는 인물구도를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 핵심 인물인 견자를 연기한 백성현은 서자의 한과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복수만을 꿈꾸며 두 인물 사이에서 또 다른 각을 만들어 안정적인 삼각 구도를 이룹니다. 때론 웃음이 넘치고 때론 이들의 아픔으로 인해 눈시울이 붉어지는 상황은 역시 이준익표 영화란 생각이 절로 들지만 왠지 <왕의 남자>에서의 해학과 풍자 속에 녹아 든 냉소적인 시각은 부족한 듯 보여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동인과 서인 그리고 대동계"
<구르믈...>은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보면 더 재미있을 영화이지만 딱히 역사적 지식을 갖지 못해도 괜찮도록 감독은 친절하게 많은 것을 설명합니다. 견자는 서자의 설움으로 방황하지만 당시 왕인 선조역시 서자 출신의 왕이고 그렇기에 동인과 서인간의 당파 싸움에 왕의 권위는 흔들립니다. (이때문에 왕의 역을 김창완씨가 했는지 몰라도 어색하면서 어울리는 느낌을 주었음) 동인의 말이라면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서인이기에 동인과 관련된 대동계는 그들의 눈에 가시였기에 리더격인 정여립이 역적으로 죽고 이에 대한 진실을 찾는 과정이 작품에 갈등을 이루는 중요한 계기입니다. 동인도 서인도 아닌 그들은 오로지 일본을 막기 위해 조직되었으나 일본이 아닌 당파싸움으로 죽음에 몰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비운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역사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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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학, 황정학"
이몽학은 정여립의 죽음에 매우 깊게 관련된 인물로 서인의 모함에 몰려 죽을 바에 차라리 반란을 택한 야심가입니다. 그가 가는 길에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동지라도 단칼에 베어 버리는 잔인한 일면을 갖지만 사랑한 여인을 찾아가 안전을 염려하는 여린면도 갖고 있는 인물이지요. 영화를 이끄는 내내 몽학은 피를 부르는 칼을 휘두르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꿈을 위해 걸어가지만 결말에 비로소 덧없는 꿈을 깨닫고 마치 떨어지는 해를 쫒아간 달처럼 비운의 결말을 스스로 선택하게 됩니다.
이몽학이 점점 변하게 되는 과정엔 황정학과의 대결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황정학이 꽤뚫고 본 정여립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에 서로에게 칼을 겨눌 수 밖에 없었지만, 대결의 결과가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동료를 위해 운명을 받아들인 황정학의 마지막 충고는 이몽학의 가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고 결국 마지막 대결에서 몽학은 황정학과 같은 선택을 하기에 이릅니다. 지나친 야망은 화를 부르며 정도의 길을 가야한다는 믿음으로 몽학의 마음을 바꾸기를 바랬던 황정학의 바램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어둠을 비추는 달처럼 분명히 길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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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부질없음"
두 남자의 날선 칼의 춤사위와 견자와 황정학이 가는 길 속의 해학과 능청스러운 재미는 있지만 왕이 왜적을 피해 달아난 궁궐처럼 왠지 모를 허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분명 카리스마 넘치는 차승원의 연기나 황정민의 연기는 흠 잡을 곳 없이 훌륭했지만 견자와 백지의 연기나 역할은 결말에서까지도 두 남자의 뒤에서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조정의 군사마저 대동계에 합류했다며 한양으로 집결한 군대가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전투의 결말은 아무리 이번 작품이 액션을 위주로 한 영화가 아니라도 좀 더 보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은 달이 저무는 해를 따라잡으려 한 덧없음을 보여 준 사내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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