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0년대에 들어서 데뷔하신 미국 감독 중에서, 차기작이 항상 기대되는 감독 중 한 명은 바로 제이슨 라이트먼입니다. 볼 때마다 충분히 대중적인 공감을 얻을 만한 인간성 넘치는 이야기를 (많은 영화들의 단점인) 단 한 순간도 이상한 방향으로 안 세어나가고 정말 능숙하게 해 나가는 정말 좋은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5년에 나왔던 그의 첫 작품인 <땡큐 포 스모킹>을 처음 봤을 때 이 사람 앞으로 큰 일을 저지르겠군 했는데 그 영화를 만들고 나서 2년 뒤에 임신한 10대 소녀 이야기 <주노>로 엄청난 대형 사고를 치시고, 그러고 나서 또 2년 뒤에 <인 디 에어>로 완전히 만루 홈런을 쳐 버립니다.
2. 이 영화의 주인공인 빙햄은 해고 전문가입니다. 회사의 사장이 하기 껄끄러운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죠. 그는 하루 365일 중에서 322일을 비행기를 타고 - 혼자서 - 출장을 다닙니다. 그러면서 집에 있는 나머지 43일이 비참하다는 식으로 말을 합니다. 그렇게 많이 비행기를 타면서 꿈의 천만 마일리지(이게 가능 하긴 한가요 ㄷㄷ) 달성을 앞두고 어느 날, 그가 다니는 회사에 당돌한 신입 사원 나탈리가 옵니다. 해고 전문가인 빙햄에게 온라인 해고 시스템을 개발한 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그녀에게 노하우를 알려주기 위해 난생 처음으로 동반 출장을 갑니다. 한편 라운지에서 우연히 자신과 거의 비슷한 사람인 알렉스를 만나고, 난생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3. 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주목 할 것 중 하나는 일단 조지 클루니인 것 같습니다. 정말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죠. 정말 많은 영화에서, 정말 다양한 장르에서, 정말 새로운 배역을 맡아서 자기 것으로 100% 소화해냅니다. 이런 그의 연기가 마이클 클레이튼부터 물이 오르더니, 인 디 에어에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말 자연스럽고 능숙한 연기를 보여줘요.(여기에는 각본의 힘이 상당히 큽니다.) 조지 클루니 말고도, 이번에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베라 파미가와 안나 켄드릭도 좋습니다. 특히 안나 켄드릭은, 하루 빨리 트와일라잇 시리즈 속에서 빼 오고 싶은 배우입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존재감 크지 않은 배역으로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는데, 여기에서 그녀는 그랬던 이미지를 한 번에 날려버립니다. 자신만만하게 입사해서 이 일에 대해 알아가지만 결국은 무너지는, 그런 연기를, 엄청 젊은 나이에, 솔직하고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4. 새롭지 않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그냥 눈물 쏟게 하고 인생 이렇게 사세요라고 신파조로 이야기하는 영화와는 완전히 질적으로 틀립니다.(물론 이런 영화들 중에서도 예외는 있습니다. 그러한 예외가 되는 영화들 중에서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 영화도 있습니다.) 인간성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일단 상당히 현실적입니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요즘 많이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기업의 구조조정 같은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요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반부와 중반부에 간간히, 그리고 후반부에 실제로 최근에 해고 당했던 사람들이 영화에 출연해서 그들 내면의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저도 나중에 취직하면 이런 일을 만날까봐 약간 두려워요...) 10년 넘게 열심히 일했는데 돌아오는 건 해고장 하나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결코 편하게 넘어 갈 순 없는 현실의 모습인 것 같아요.
5. 이렇게까지 현실적이고 무거운 소재인데 영화는 절정의 유머 감각을 발휘합니다. 여기에서 절정이라고 표현한 건 유머 자체가 독창적이고 배꼽 빠지게 하는 그런 식의 유머가 아니라, 영화의 성격에 정말 딱 맞는, 그런 종류의 유머라는 겁니다. 대놓고 웃기려고 하기 보다는, 영화의 상황 속에 절묘하게 맞물리고 스토리 전개에, 인물들의 성격이나 이미지에 전혀 해가 되지 않는 그런 유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어두울 것만 같은 이 영화는 그렇게까지 밝은 결말을 가지고 있는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유쾌한 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합니다.
6. 이 영화의 중심 행위가 해고인데, 역설적이게도 직장에서 해고 당하는 이 암울한 상황을 가지고, 감독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애를 이야기하기에 주인공 자체부터가 좀 역설적이에요. 주인공은 혼자 살아가고, 비행기를 자신의 집으로 삼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대신 해고 통지를 보내고, 가끔씩 사람들 앞에서 배낭 속에다가 온갖 자질구레한 것을 다 넣고 태워버리라고 강의하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한 마디로 엄청나게 외로운 사람이죠. 그런 인생은 어떻게 보면 살기 정말 편안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이들의 간섭도 없이 사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인생에서 무언가 가치있는 것이 있을까요? 인생은 더불어 사는 거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함께 함으로서 더욱 더 밝아지고 더욱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7. 해고 당했던 사람들이 나와서 한 마디 씩 하는 마지막 장면에는 정말 좋은 대사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돈이 전부는 아니에요. 돈이 따뜻하게 해 주긴 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안아줄 때만큼 따뜻하진 않아요”,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저에게 동기 부여가 되요” 처럼요. 해고라는 현실적 시련 말고도 살면서 어려운 시기도 많이 있을텐데, 혼자서 극복하기도 힘들고, 그런다고 그런 거 때문에 삶을 포기할 순 없는 것이잖아요. 이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했던 대사처럼, 이런 일들을 겪고 또 극복해 냈기에 더 좋은 일이 있고 잘 하면 세상을 바꾸는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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