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추천작, 쿠엔틴 타란티노가 어렸을 때 보고 충격을 받은 영화. 이 2가지만 듣고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보게된 존 부어만 감독의 <서바이벌 게임>은 그야말로 충격 그 이상의 경험이었다. 어쩌면, 공포 영화가 아닌 영화들 중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낀 것 같다. 숨겨져 있던 인간 본연의 추악한 본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중반부부터 그냥 쩌는 각본의 힘을 받는 이 악몽 같은 영화는 인간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정면으로 보여주며 헤어나올 수 없는 큰 충격과 공포를 준다.(많은 이들이 모험 영화로 치부할지라도 나는 이걸 공포 영화라고 칭할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왠만한 공포 영화보다 갑절은 무섭다. 물론 숨어있다가 우리를 깜짝 놀래키는 그런 식의 공포는 절대 아니다. 이 영화의 공포는 확실히 극한 상황 속 인간들의 모습에서 기인한다.)
4명의 사람들이, 댐 건설로 인해 곧 사라질 한 강으로 래프팅을 가기로 한다. 그 강은 인간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고 댐 건설로 인해 곧 수몰될 강이다. 인상적인 벤조와 기타 대결을 하고 난 후, 이들은 차를 타고 강에 도달하고, 래프팅을 시작한다. 첫 날 밤, 이들은 산 속에 살고 있다는 산사람들을 비야냥거리며 잔다. 그러다가 다음 날, 숲으로 들어간 2명의 일행 중 한 명이 2명의 산사람들(그것도 남자가)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일은 서서히 꼬이기 시작하고 이들의 래프팅은 이제 대자연 속에서의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가장 압도적인 것 중 하나가 일단은 촬영이다. 강을 래프팅하는 그들의 모습과 강의 모습을, 정말 훌륭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의 테마 중 하나인 자연에 대해, 영화의 배경을 이루는 대자연의 거대한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촬영이 이루어 진 것 같은데, 이는 집에서 작은 컴퓨터 화면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장면들이다.
야생의 거대함 앞에서, 이 원시 사회 같은 곳에서, 그들은 하나 둘 씩 알게 모르게 숨겨왔던 본성을 들추어내며, 이들은 서서히 원시인이 되어간다. 첫 번째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그것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고, 또 실제로 그러한 상황이었기도 했지만, 그들은 인간으로서 극도의 혼란과 패닉을 느끼고 내부에서는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나 두 번째 살인 후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더 이상 시체를 처리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고, 단지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저지르는, 야만인적인 행위이다. 그러다가 총 맞은 친구의 시체가 나무에 걸려있는 걸 보았을 때, 그들은 그 친구를 돌에 묶어 강으로 떠내려보낸다. 이들에게 더 이상 살인은 야만적이지 않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거대한 야생 속에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정복심이나 모험 정신, 강인함 모든 게 붕괴되어가면서 이들이 얼마나 악하고 약한 존재들인가를 보여준다. 갑자기 다가온 예상치 못한 일들과 폭력을 계속해서 맞딱드리게 되면서, 이들은 점점 악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감독은 이 과정을 정말 사실적인 공포로 그려내고 있다. 왠만한 걸작 공포 영화 못지 않게, 이 영화는 서서히 서스펜스를 쌓아놓았다가 야만성을 까발리는 중반부부터 그야말로 쉴 새 없이 풀어내고, 긴장을 놓을 수 없게끔 계속해서 속도감과 긴장감을 부여한다.(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하는 행위 때문에 소름이 돋았던 건 실로 오래간만인 것 같다.) 주인공 일행이 구조되고 나서도, 이 영화는 그 피 말리는 긴장감을 끝까지 지속시킨다.
이 영화는 버트 레이놀즈와 존 보이트의 모습 만으로도 기억에 충분히 오래 가는 영화이다. 가장 큰 두 축을 이루는 둘의 연기는 그야말로 아카데미 수상감이다. 특히 화살을 겨누는 장면이나 절벽을 기어올라가는 장면에서 존 보이트가 보여주었던 모습은, 정말이지 쉽게 잊기 힘들다.(존 보이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됐어야만 했다.) 영화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강간 당하는 장면에서 정말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준 네드 베티 역시 기억에 오래 남는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수많은 극찬에 나오는 말처럼, 이 영화는 미국의 어두운 내면을 탐구하는 영화다. 루즈벨트 대통령 때에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었던 것이 댐인 것처럼, 이 영화에서 댐은 미국 - 미국 뿐만이 아니라 위대한 현대 사회의 발전 - 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댐 건설을 통해 위대한 대자연을 수몰시키고, 법과 민주주의, 도덕성,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생존만이 있는 그 대자연 속에는극한 상황으로 인해 노출된 인간 본연의 본성의 추악한 결과물이 함께 매몰되어있고, 그 위대한 강은 그러한 것들을 다 수몰시켜버린다. 위대한 한 나라의 건국의 이면에는, 이러한 모순된 모습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함 속에는 숨겨진 추악함이 존재하기 나름이다.
p.s 1. 저번 1~2월 달에 있었던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추천했던 영화입니다. 그 때 시네토크 꼭 가고 싶었는데 그 놈의 시간 때문에 ㅠㅠ . 결국 집에서 힘들게 구해서 봤네요... 보고 나서 영화제 할 때 봤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 막심입니다.
2.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떤 평론가는 정말이지 이 영화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만 이를 걸작으로 인정 할 것이라고 했다. 근데 일단 이해는 둘째치고 영화는 엄청난 걸작이다. 분명히 1번 관람으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영화다. 일단 이 엄청난 작품을 추천해 주신 봉준호 감독님께(내가 한국 영화 감독 중 좋아하는 순위 5손가락 안에 들어가시는...) 감사의 말씀을....
3. 영어 제목인 Deliverance을 3류 액션 영화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변역될 수 있는 거죠? 어떻게. 왜 그렇게 한 건지 아시는 분들은 좀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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