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다양한 전쟁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전쟁 영화들이 있다. 휴머니즘으로 가득한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든,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든 간에 많은 전쟁 영화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다. 하나는 ‘전쟁이라는 것은, 세계 역사상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고 앞으로도 존재해서는 안 될,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로 매우 끔찍한 것이다’라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인간의 내면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어떻게 전쟁이 인간을 황폐화시키고 악하게 변화시키는 것인가’이다. 한 마디로, 전쟁 영화는 인간을 파헤쳐가며 ‘전쟁은 그야말로 지옥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 영화에서 기억에 오래 남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걸작(혹은 수작 이상)의 영화들 - 디어 헌터, 플래툰, 풀 메탈 자켓, 지옥의 영웅들, 7월 4일생 등등 - 이 유독 많이 눈에 띄인다. 그것은 아마도 초강대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이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결과적으로 패한 전쟁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을 많이 치룬 미국은 이 전쟁에 막대한 군력을 투입했지만, 그들은 (극중 대사처럼) 역사상 가장 명분이 없는 전쟁을, 그것도 정말 처절하게 치뤄냈지만, 아무런 의미 없이 결국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다른 전쟁을 배경으로 한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유독 더 깊고 참혹하다. < 디어 헌터 >에서의 무시무시했던 러시아 룰렛, < 플래툰 >에서의 부대와 참혹한(그러면서도 영상에서 약간 서정적인 면이 느껴졌던) 전쟁터, < 풀 메탈 자켓 >의 신병 훈련소와 아무런 의미 없이 허무하기만 했던 전투 등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는 무언가 더 음울하고 끔찍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 모두 걸작의 반열에 들어갈 만한 영화지만, 그 어떠한 전쟁 영화도 결코 지옥의 묵시록에서 보여주었던 것에 비교할 수 없다.
짧지만 강력한 힘을 지닌 조셉 콘라드의 철학적 소설 < 암흑의 핵심 (Heart of Darkness) >을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이 걸작은, 어떠한 전쟁 영화보다 더 거대하고, 음울하고, 참담하다. 제작 과정부터가 그러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가진 코폴라 감독은 준비를 마치고 영화 찰영을 위해 필리핀으로 갔다. 그러나 그 때 필리핀에 40년만의 허리케인으로 인해 엄청난 비가 쏟아지면서 세트는 물 먹은 생쥐 꼴이 돼 버렸다. 폭격 장면을 찍을 때에는 촬영 중이던 세트가 갑자기 폭발해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제작 예산은 이미 초과했고 촬영 기간은 밑도 끝도 없이 길어져만 갔다.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했던 코폴라 감독은 2배 가까이 늘어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자기 집을 저당잡고 빚을 지면서까지 제작비를 마련했고, 그의 결혼생활은 파경 직전까지 갔으며 그는 신경쇠악에 걸려 거의 미치기 직전까지 갔다.(무엇에 홀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는 계속 커츠 대령의 정신 상태와 같은 상태로 영화 촬영을 해 나갔다고 한다. 촬영 후에 그는 스스로 자신이 이 영화를 찍어가면서 미쳐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는 계속 수정되었고, 정글 속에서 지쳐버린 스텝들과 배우, 심지어 감독까지도 현실 도피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술에 취해서 난동을 부리고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 이러한 끔찍하고 지옥과도 같은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어서 그런 걸까. 제작진들은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완벽하고, 소름끼치는 지옥을 만들어내었고, (리덕스로 3시간이 넘는) 그 긴 러닝타임 동안 블랙홀과 같은 그 암흑의 핵심을 향한 여정을 탄성을 내뱉을만큼 압도적으로 만들어내었다. 게다가 (원래는 초대형급 영화는 아니었다지만) 엄청난 예산과 제작기간을 통해서 그들은 베트남 전쟁을 재현해버리고야 말았다.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다. 오프닝 타이틀 없이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정글을 보여준다. 그 위로 헬리콥터들이 날고 있다. 그리고 정글에 폭탄이 떨어진다. 배경 음악으로 도어즈의 The End가 흘러나온다. 이렇게 불타고 있는 정글의 모습과 방에서 누위있는 월라드 대위의 모습이 겹쳐진다. 또 정글 위를 나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의 모습과 방 위의 선풍기가 돌아가는 모습이 겹쳐진다. 이 짧지만 강렬한 오프닝을 통해 우리는 월라드 대위에 대해, 그의 심리에 어느 정도는 짐작 할 수 있다. 그는 전쟁에 찌들어져 있다. 그는 이 정글이 지겹다. 그는 자신이 아직도 사이공에 있음에 탄식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내와 이혼하기 직전에 있는 그에게 집에 돌아가봤자인 것 같다. 그는 나레이션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이공에선 집에 가고 싶고 집에 오면 정글로 다시 돌아갈 궁리만 했다.” 나레이션 후 그는 방에서 술에 취해 미쳐서 울부짖으며 거울을 주먹으로 깨고, 또 괴로워한다. 그는 정글에서 빠져 나오기에는 너무나도 깊숙히 들어가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임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고, 결국 그에게 임무가 떨어진다. 그런데 그 상관이 준 임무라는 것이 영 개운치 않다. 강을 타고 올라가 정글 속에서 숨어 사는, 한 때 전설적인 군인이었던 커츠 대령을 찾아서 그를 제거하라는 것이다. 같은 미국인인데, 그것도 자기보다 더 높은 대령인데. 상사는 그가 불온하고 미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보고 난 후 그는 상사를 의심한다. 이렇게 완벽한 이력을 지녔는데... 그러나 명령을 받은 이상 거기서 발을 땔 순 없다. 그는 해군정 하나에 몸을 싣고 ‘넝’강을 가로지르며 커츠가 갔던 길로 간다. 월라드는 이렇게 말한다. “난 지옥으로 가고 있었다. 그 땐 몰랐지만...”
그 이후 커츠를 찾아가는 월라드의 여정은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으로 진행된다. 계속 나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상황과 에피소드가 일어나는 식으로... 그 여정의 압도적인 시작은 킬고어 중령(예상하셨겠지만 저 이름은 죽이다의 Kill과 피의 Gore의 합성어다.)과 만나는 장면이다.(킬고어 중령은 정말 적은 분량에서 나오지만, 그가 나오는 장면 하나하나는 충분히 강렬하다.) 그는 셔핑 광이고(파도가 높다는 말 한 마디에 기꺼이 폭격을 감행한다. 폭격 후 네이팜 때문에 파도 높이가 낮아졌다고 아쉬워한다.) 누가 죽였는지 알리겠다면서 죽은 자들에게 죽음의 카드를 올려놓는다. 그리고, 뭐 거대한 영화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걸 다시 상기시키려고 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초반 1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전쟁 영화 역사상 두 번 다시 보기 힘들(여기에 필적하는 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첫 장면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 장면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핼리콥터 폭격 장면이 나온다. 수 많은 헬리콥터가 한 마을을 무차별 적으로 폭격 할 때의 그 스케일이나 시각적 충격도 충격이겠지만, 이 장면을 더욱 더 기억에 오래가게 하는데에는 배경 음악 - 바그너의 Rides of the Valkyrie - 의 힘이 절대적이다. 그토록 비인간적인 폭격을 하는데, 킬고어 중령은 부하들이 좋아한다며 버젓히 저 음악을 틀어주고 지상을 초토화시킨다. 그것은 광기에 가득찬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준다. 이 폭격 후 그는 유명한 대사를 남긴다. “I Iove the smeII of napaIm in the morning.” 월라드는 이 모습을 보며, 그 역시 미쳤다고 말한다.(대사 그대로 살인자가 살인자를 비난하는 꼴이다.)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폭격 장면이 끝난 후에, 이 영화에서는 더 이상 앞에서 보여주었던 것 만큼의 규모 있는 장면을 보여주질 않는다. 대신에 뇌리에 잊을 수 없는 압도적인 장면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플레이보이 걸들의 위문 공연 때 이성을 잃고 날뛰는 미군들의 모습이나 플레이보이 걸들과의 정사 장면(리덕스 버전에만 있는...)도 그러하다. 전쟁으로 인해, 그들의 이성은 마비됐고 짐승과도 같은 수준이 되었다. 그들은 요염한 자태를 맘껏 보여주는 여자들을 보고 그야말로 맛이 가버린다. 그러나 그 여자들은 그런 걸 원치 않고, 괴로워한다. 그러한 것을 하소연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여자들은 드럼통 하나와 바꾼, 일종의 거래된 물건이나 다름 없었기에, 그런 것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줄 생각은 없이 그저 즐길려고만 한다. 중간 부분에 나오는 돌렁 다리은 시각적으로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을 심어주는 장면이다. 그야말로 지옥과도 같은 어두움 속에서(본부에서 보낸 한 사람이 “여기만큼의 지옥은 없을 거에요”라고 말하는 게 그냥 사실인 것 같을 정도로), 그냥 베트콩이 있다는 것만 알고 열심히 총 갈구고 유탄을 쏘는 군인들은, 자신들의 지휘관도 모르고(벙커를 베버리힐스라고 부르는 그들에게 지휘관 그딴 건 전혀 없댄다) 그냥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역시 리덕스 버전에만 있는) 그 이후에 나오는 프랑스인 농장 장면은 영화의 흐름을 약간 끊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필요 이상으로 긴 장면이지만(20분 가까이 된다.), 장면 자체만으로는 충분히 좋다.(여기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미국은 가장 명분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감독은 분명히 영화를 통해 인류 문명의 악독하고 야만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이 장면은 인류 문명이라는 넓은 범위를 신화와도 같은 대국 미국의 모습만으로 한정시켜버린다.(범위가 줄었으니 모호함이 좀 덜해졌다고 해야 될려나...)
이러한 여정을 지나면서, 월라드는 점점 그를 만나고 싶다는 호기심과 그와 동시에 생겨나는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히고야 만다. 결국 그는 이 지옥을 향한 여정을 통해 커츠가 있는 지옥과도 같은 그곳에 도달하게 되고 거기에서 그는 그의 내면에 있는 악마를 만나게 된다. 커츠가 군림하고 있는 정글 속의 제국에서 벌어지는, 40~50분에 달하는 이 긴 후반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첫 장면부터 인정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촬영에 대해 먼저 존경해 말을 하고 싶다. 이 영화의 촬영을 담당하신 비토리오 스트라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함께 만든 영화들(순응자, 마지막 황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등...)에서 그야말로 전설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부족함 없는 최고의 영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내리는 수준의 영상미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가 해낸 최고의 촬영은 단연컨대 지옥의 묵시록이다. 여기에서 그는 온갖 기법들과 빛과 어둠을 적절하게 사용한, (난 겪어보지 못한) 전쟁 속에서의 공포를 정말 정확하게 잡아내어, 거의 4D 같다고 느낄 정도로 온 몸에 소름이 확 돋게 하는, 엄청난 두려움이 느껴지는, 어두컴컴하고 음울하지만 그와 동시에 거대하고 약간은 시적이기까지한 장면들을,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보여준다.
너무나도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약간의 초현실적인 느낌까지 짓게 하는(그래서 전쟁 영화를 왜 컬트 영화로 끝내냐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한) 후반부에서 비토리오 스트라로의 전유물과 같은 엄청난 영상이 절정을 이룬다. 여기에서는 그는 말론 브란도와 함께 그야말로 전설적인 명장면들을 만들어냈다.(어두운 화면 속의 어두운 배경 속에 파묻혀있는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걸 반복하는, 그러면서 말을 읊조리는 장면은 정말...) 출연하는 영화마다 항상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는 이전에도 코폴라 감독과 함께 대부를 촬영했었다. 그 때 돈 꼴레오네라는 캐릭터를 영화사에 가장 빛나는 연기를 통해 보여주었던 그는 코폴라 감독과의 2번째 작업에서 그랬던 그의 모습을 180도 바꿔버린다. 처음에 캐릭터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하고 감독과 많은 말다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브란도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것 같다고 하면서 세트장에 나타났을 때, 세상에나, 그는 머리를 빡빡 밀고, 살을 찌운, 영락 없는 사이비 교주의 이미지를 가지고 등장했다. 이 영화에 출연할 당시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출연료를 받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완전한 이미지 변신을 한 브란도는 영화 전체에서 중요한 역활이지만 그와 동시에 적은 분량임에도 그 액수에 합당한, 아니,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과연 그 누가 이 역활을 브란도 이상 해낼 수 있을 것인가.(처음에 잭 니콜슨에게 이 배역이 갔다고 들었다. 그러다 그는 정글에서 촬영한다는 말을 들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전쟁에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찌들어진 연기를 그야말로 완벽하게 보여주는 마틴 쉰의 엄청나게 대단했던 명연기가 초라하게 느껴질 수준인건지...(원래 이 배역은 하비 케이틀이 맡기로 했다고 한다. 마틴 쉰은 36세의 젊은 나이에 이 영화를 찍다가 치명적인 심장 마비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의 정신은 멀쩡한데 영혼이 미쳤어”, “그는 시인의 마음을 가진 군인이야” 영화 속에 나온 이런 말로 그를 가장 간단히 묘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은 멀쩡한데 영혼은 미쳤다... 그가 느낀 공포에서 오는 것이리라. 그는 공포와 친해져야 말하면서, 자신이 특전사 시절에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에게 소아마비 접종을 해주고 그 수용소를 떠나려는데 한 노인이 울면서 달려왔어. 차마 말은 못하면서... 다시 가 봤더니 애들은 접종해 준 팔을 잘라 냈더군. 통 속에 팔들이 수북했어. 그것도... 조그만 팔들이... 난 그들이 우리보다 더 강하다는 걸 깨달았지. 그들은 정예 부대야”
모두를 난쟁이와 같은 수준으로 만들 위대한 대자연의 앞에서, 그 위대함에 압도되어 지쳐가고, 그 거대한 자연 자체에 대해 두려움을 느껴진다.(중반부 넘어가기 전에 나오는, 월라드가 호랑이를 피해 도망가는 장면을 보라.) 그러나 커츠가 느낀 공포, 두려움은 이러한 자연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이다. 적군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난사를 하고, 자신의 팔을 자르고, 영화 속의 대부분의 등장 인물 - 월라드, 킬고어 등등... - 역시 자신의 광기를 전면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멀짱하다. 전쟁도 미쳤고 상황도 미쳤고 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미쳐버린 것이다. 이러한 미친 영혼들이 세운 나라도 미친 거고, 그들이 일으키는 전쟁도 미친거고... 이토록 절망 속에서 탄식이 나올 정도로 그들은 미쳐있으니, 그는 이제 위대한 대자연보다, 미쳐있고 원시적인 인간이 더 무섭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절망에 사로잡힌 상태로 그들을 바라봐야만 한다. 그러기에 커츠는 정글 한 가운데의,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든 걸까...
그는 월라드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란다. “넌 날 죽일 수는 있어도 판단할 수는 없어” 그러고 나서 소를 도살하는 장면과 커츠를 죽이는 장면이 교차편집되서 나오는, 전율의 결말이 나온다. 커츠를 죽인 후, 월라드는 걸어나온다.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커츠 보듯이 대한다. 그는 더 이상, 전쟁에 찌든 월라드가 아니다. 이제 그는 커츠다. 그는 커츠를 죽이러 왔고, 또 죽이는데 성공하지만 커츠가 봤던 것들, 느꼈던 암흑, 공포를 그도 느끼며, 그도 그 암흑과 커츠가 보고 느낀 것에 종식당한다. 그리고 그는 암흑의 핵심 속으로 완전히 빠져들게 된다.
이 영화는 물론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전쟁으로 인해, 그로 인한 공포 때문에, 광기에 사로잡혀 미쳐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결국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명분도 없고, 아무 이유도 없고, 암흑과도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친 영화라는 것이다. 이런 어두운 이면을 가진 곳에서, 누구든지 영혼이 미칠 수도 있고, 누구든지 악마가 될 수 있다. 커츠가 전쟁 속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인간의 어두운 내면, 광기를 목격한 것이고 그것 때문에 거대한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공포를 고스란히 월라드가 느꼈을 때, 그는 그 공포를 느끼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어두움을 타고 올라가 그가 속해있는 사회로, 전쟁터로 가겠지. 그러나 과연 그가 이전에 봐왔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보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여정을 통해 그는 그 이면을 보지 않았는가. 그러고 그 공포를 느끼고, 그걸 순응했으니... 그가 느꼈던 공포를 우리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것 역시, 정신은 멀쩡한데 영혼은 미친 사람들로 가득한, 이미 어두운 곳일지도 모르는데.
p.s. 그야말로 최고의 감독이라고 할 만한 오슨 웰즈,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 소설의 영화화를 하려고 시도했다. 그 중 오슨 웰즈는 그의 대표작이자 영화 역사상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 < 시민 케인 >, < 악의 손길 >처럼 이 영화에서도 연출과 연기 모두 하려고 하였다. 그는 커츠 역활을 맡고 영화를 철저히 말로우의 시각으로 해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그 후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소설의 기본 뼈대를 가지고 완전히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인 < 아귀레, 신의 분노 >이다. < 지옥의 묵시록 >도 그러했지만 이 영화 역시 거대하고, 찍을 때 역시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찍지 않겠다고 한 배우를 감독이 총으로 협박했겠는가.(이후에 같은 감독과 배우가 피츠카랄도라는 작품을 찍을 때에는 배우가 감독에게 영화를 그만 찍으라고 총으로 협박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영화를 찍다가 그야말로 엄청난 장면 - 거대한 배가 산을 넘는 장면 - 을 연출하기 위해 숲 속에서 3년 동안 찍었고 그 동안 몇 명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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