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활동하고 있는 감독 중 코엔 형제만큼이나 기괴하고 독특한 이야기를 주주장창 풀어내는 감독은 없을 것 같다. 그들은 정말 불가능 할 것만 같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능숙하게,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전개시켜 나가고 결말까지 계속 얼얼하게 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항상 성공적으로, 그리고 항상 당황스럽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 같다, 심지어 그의 쉬어가는 영화였던 전작 <번 애프터 리딩>에서도 코엔 형제의 영화 중 가장 평범한 듯 한 이야기를 지닌 거 같으면서도 여기저기서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상상치도 못한 돌발 상황들을 끄집어내고 온갖 잡다한 것들을 다 펼쳐놓아서, 이런 게 왠지 우월한 개판스러운 스토리이다, 이렇게 말하는 듯하고 결국 영화를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안드로메다 행으로 보내버리지 않았던가. 확실히 코엔 형제는 그런 이야기에 능통한 감독이다.
코엔 형제는 영화를 만드는데 밸런스를 정말 잘 맞추는 감독이다. 그 말은, 정말 진지한 분위기를 지닌 걸작을 만들어내고, 그 후에 2~3편정도 기괴하고 가볍고, 상당히 웃기는 코미디 영화를 만든 후, 다시 진지한 분위기를 지닌 우월한 걸작을 만들어낸다는 소리다. 첫 작품으로 <분노의 저격자>를 만들고, 그 이후에 가볍고 뭔가 기괴한 느낌을 풍겼던 코미디 영화 <아리조나 유괴 사건>을 만든 후에 다시 우월한 걸작인 <밀러스 크로싱>을 만드는 식으로... 저 점을 고려했을 때, 난 이 영화가 그냥 웃으면서 가볍게 볼 영화겠구나 이랬다. 게다가 장르가 코미디 영화라니까... 이랬다가 영화를 만났을 때, 나는 그것은 명백한 내 착각이었다. 이 영화는 코엔 형제의 진중한 걸작과 가볍고 기괴한 코미디의 중간 단계에 있는 걸작이다. 비록 그의 최고작은 아니더라도, 그의 영화 중 가장 기괴한 코미디이거나 가장 성숙한 듯 한 영화, 둘 중 하나에는 해당 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질적이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그 정도는 아니어도 가볍게 볼 수 없는 <파고>를 빼 놓고 그의 영화는 항상 당황스럽고 예측 불허이며, 기괴하고, 미개척지 같은 곳을 코미디라는 장르 안에서 개척해나간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정말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한 가장이 위치해있다. 세상에... 코미디 영화라면서 이 영화의 주인공만큼이나 비참한 상황 속에 있는 캐릭터가 과연 있었던가 할 정도이다. 우리의 주인공인 래리 고프닉은 물리학 교수이다. 그의 가족 상태는 처참하게 보인다. 딸은 외모에만 신경을 쓰고, 코 수술을 한답시고 주인공 몰래 그에게서 돈을 훔친다. 그의 아들은 그 돈을 또 훔쳐내어 마리화나를 샀다가, 돈이 없어지자 마리화나를 팔았던 사람한테 맨날 쫓긴다.(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그는 집에까지 냅다 뛰어간다. 맨날.) 그의 형은, 집에서 민폐만 끼친다. 계속 화장실에만 있더니(나올 생각을 안 한다. 화장실 사용을 두고 맨날 집의 가족원들과 대립한다.) 화장실에 나오고 나서는 계속 이상한 짓만 저지른다. 여기에서 래리가 집에 필요한 이유는, 맨날 고장 나는 안테나를 고치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는 그에게 갑자기 아내가 이혼을 하자고 한다. 그가 알고 있던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이 난 것이다. 그는 이혼 할 때 무슨 의식을 치뤄야 한다고 말하고 아내는 그와 그의 형을 모텔로 내쫒는다. 게다가 그 친구는 다 괜찮을 거야. 서로 비난할 자격은 없자나. 이러면서 그를 포옹하고 위로해주고 살살 꼬드긴다. 학교에서는, 자신이 가르치던 유학생이 처음에 낙제된 자기 성적을 합격선으로 올려달라고 사정을 하다가 돈 봉투를 두고 가더니, 나중에는 그의 아버지가 와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는 등 협박을 일삼는다. 자신의 재직권 심사 과정 동안에 어디선가 그를 깎아내리는 이상한 편지가 자꾸만 날아온다. 자신은 주문조차하지 않은 음반을 보내 줄테니 돈을 달라고 주장하는 음반사 사람도 있다.(알고 보니 아들이 주문한 것이었는데...) 자신의 형은 자꾸만 사고뭉치 같은 행동만 하고, 옆에 살고 있는 이웃은 그를 사납게 대한다.
이런 비극 같은 상황에서 그는 왜 자신만 이런 수난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이에 대해 신의 뜻을 구하기로 하고, 3명의 랍비를 찾아간다. 그러나 실질적인 답은 얻질 못한다. 첫 번째 랍비는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면서 주차장을 바라봐요 이 이야기만 하고, 모든 게 신의 섭리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 두 번째 랍비를 찾아갔을 때에는, 그 랍비는 신은 우리에게 답을 주실 의무가 없다. 그리고 애시당초에 의문을 준 적도 없다는 말만 한다. 절실한 마음으로 3번째 랍비를 찾아갔을 때, 그는 생각중이라고 하면서 래리를 만나주지도 않는다. 이렇게 상황이 진행되어가면서, 그의 상황은 점점 점입가경이 되어 간다. 고난 중 하나가 해결되는 성 싶으면 어디선가 또 하나의 고난이 던져진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총체적 난국은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다.
이 영화는 자신이 기괴하고 불친절 하다는 것을 시작부터 대놓고 드러낸다. 이 영화의 프롤로그격 장면에서, 눈이 오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부인한테 오면서 겪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은혜를 입은 남자 이야기를 하는데 불현듯이 당신이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내 왈, 그 사람 3년 전에 죽었어. 이러다가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그 사람 집에 와서 수프나 마시라고 초대했는데...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그 손님을 집으로 들인 후, 그 부부는 그 손님이 귀신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여자가 그 손님을 찌른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서 이런 의문이 생겨야만 한다. 그 손님은 귀신일까 아닐까. 정말 불친절하게도 영화는 그 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결말처럼,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말해주고나서 당연스럽게 생길 의문에 대해서 애시당초 답 따위를 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개인적으로 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보다 이 영화가 더 가차없는 것 같다. 그래도 <노인~>에서는 마지막에 일말의 희망이라든지, 빛 같은 걸 보여줬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걸 찾아보긴 힘들다. 주인공에게는 계속해서 고난을 던져주면서 말이다.)
영화 전체적으로도 그렇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두 번째 랍비가 해 주는 치과 의사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 치과 의사는 한 환자의 이빨을 치료하다가 히브리 어로 씌여진, 구해주세요 라는 메시지가 이빨 안쪽에 새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그걸 발견한 순간부터, 그는 두려워지고 이 상황에 대한 답을 찾기 못한다면 자신의 삶은 결코 편안해지지 못할 것임을 느낀다.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는 정말 별짓을 다한다. 그는 결국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 그럼 그 의사는 어떻게 되었을 것이며, 그 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증이 생기는 게 당연한데, 랍비가 이렇게 말한다. 그걸 아는게 뭐 그리 대수냐고...
이러한 불친절성은 마지막에 가면 절정을 이룬다. 마지막은 마을을 덮치는 토네이도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결말에는 주인공이 토네이도에 의해 죽을 것이라는 걸 암시라도 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됬는지 알 수는 없다. 혹시 또 아나? 그 토네이도가 그가 처한 고난 중 하나를 해결해주고 더 큰 고난을 선사(?)할지도... 아니면, 인생은 어찌 될 지 알 수 없는 요지경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인가?
이러한 비극 속에서 뭐 같은 상황이 계속 나열되지만, 영화는 절정의 유머 감각을 발휘하는 코미디 영화다. 이에 대해서 모두가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확실히 이 영화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그의 가장 이질적이고 난해했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보다 덜 대중적이다.) 처음 봤기 때문에 캐치 못 한 것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영화는 분명하게 코미디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코엔 형제의 유머는 정말 고품격이고 수준이 높다. 한 번 보고 완전히 받아들이는 거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이 장면이 왜 웃길까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장면에서, 영화는 의외의 웃음을 선사한다. 그렇게 보면 이 영화에서 감독은 정말 짖궃은 장난을 친다고 해도 될 것이다.) 수다스럽고, 황당한 상황의 연속(어떨 때에는 정말 허무하기까지 하다.)은 그의 전작인 작심하고 만든 상황극 코미디 <번 애프터 리딩>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는 않다. 그의 유머는 정말 당황스럽고, 네이버에 있는 리뷰에 있는 말처럼 정말 초현실적이다. 분명히 영화는 희극적이고 풍자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면 이건 코미디라기 보다는 하나의 비극적인 드라마에 더욱 더 가까운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영화의 유머 역시 처음에는 쉽게 웃을 수 있지만, 갈수록 정말 웃기 힘든 상황이 이어진다.(근데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머는 여전하다.) 그의 진지한 걸작들 - <분노의 저격자>, <밀러스 크로싱>, <파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 의 공통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그야말로 가차없는 상황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이야기가 이 영화에도 있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정말 뭐 같은 상황 몇 개가 겹쳐있는, 그냥 답이 안 나오는 비참한 상황 속에 있고, 왜 이럴까라는 고민을 가지지만 그 고민에 대한 답도 얻지 못하고, 상황을 갈수록 더 개판이고... 왠지 연극의 이야기 같기도한 이 상황이, 분명히 암울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이 비극적 드라마에서 비극과 희극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냉정한 연극 같은 영화의 코미디적 요소나 웃음이, 온갖 아이러니(정말 많은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에 3번째 랍비가 래리의 아들에게 그가 히브리 인인 선생님한테 빼았겼던 라디오와 20달러를 돌려주는 장면이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로 가득한, 정말 진지한 웃음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낄낄 웃게 하는 한 방은 없다. 대신에 공들여서 쌓아놓고나서 하나 하나씩 까발리면서 고통스러운 웃음을 선사하는, 그런 류의 영화다. 주인공이 이러한 비참한 상황 속에서 왜 나만 이럴까 하면서 벗어나려고 하는 과정 자체가 코미디로 다가오지만, 그와 동시에 이건 우리의 모습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얼마나 안쓰럽고 비참한 상황이란 말인가.
성경의 욥기를 연상시키는 이 별난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왜 수난을 당하게 되는 걸까? 영화를 보다가 생기는 의문 중 하나가, 왜 랍비는 주인공의 질문에 대해 이상한 답변을 하는 걸까? 그건 주인공은 항상 그걸 궁금해 하고 랍비한테 물어보지만, 랍비들도 신께서 주관하는 인생에서 그런 고난이 왜 일어 나냐고 물으면, 그건 신의 뜻입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이 난장판에 대해서 답을 내릴 수 있는 건 과연 누구란 말인가? 왜 이런 고난을 주어졌냐는 질문에 대해, 누구도 합당한 답을 줄 수 없고, 또 그러한 질문에 대해 합당한 답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신의 뜻 아니면 세상의 이치와 법칙에 의거한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의 암시나 이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는 아마도 첫 대사에 다 들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게 받아 들여라... - 왜 나만 그런 거냐고 생각하지 말라. 인생은 어자피 고난의 연속이니까. 이런 거 아닐까. 그러면서 영화는 또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연민으로 받아들여라. 라고 말이다.
주인공이 꾸는 꿈 장면 중 하나에서, 물리학 교수인 주인공이 큼지막한 칠판에 제일 위의 왼쪽부터 제일 아래의 오른쪽까지 한 가득히 온갖 공식들을 늘어놓고, 이건 불확실성의 원리이다. 이 원칙은 우리가 세상 만사를 알 수 없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 라고 말한다. 세상 속 고난, 삶의 방향이라는 것은 수학 공식처럼 일정한 답이 딱 주어지는 그런게 아니다. 이러한 고난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고난의 정도의 차이지 결국 모든 삶이 고난으로 가득한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원치 않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더욱 더 뛰어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안 말하고 넘어 갈 수가 없다. 이 영화에서 래리 역을 맡았던 마이클 스터버그의 캐스팅은 정말 탁월했다는 말 밖에는 나오질 않는다. 그 밖에도 감독은 주요 캐스팅을 죄다 무명인 배우들로 기용했는데, 결론적으로 최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게다가 로저 디킨스의 촬영은, 뭐 영상적으로 대단하고 세심하다고 말 할 것도 없이 그냥 보면 안다. 정말 명불허전이다. 각 장면 하나하나가 정말 세심한 촬영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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