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애시당초 우리 동네 영화관들(3개관 모두)에서 필름을 구입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셔터 아일랜드를 보기 위해서는 광고를 10분씩이나 하는 시내의 영화관을 찾아야만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임에도 이 영화를 사들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점점 의문이 풀리기 시작했다.
영화가 막 끝났을 무렵에는 머리가 복잡해서 도무지 영화 내용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어렵다....' 라고 머릿속으로 되뇌이게 한 영화는 오랜만인 것 같다.
그러나, 집으로 오면서 조금씩 생각하면서 대략의 윤곽이 드러났고,
애매했던 부분(마지막 장면)은 많은 리뷰를 읽고 고민하면서 정리가 되었다.
물론, 내가 이 영화를 100% 이해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름의 해석적 결론을 내렸으니, 짧게나마 풀어보겠다.
<영화 안보신 분을 위해: 이 영화는 결코 쉬운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결코 가치없는 영화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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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이 영화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어떤 사고로 살아가는지 리얼하게 그려낸 영화다. 예전에 '뷰리풀 마인드'라는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정신분열증을 앓았는데, 셔터 아일랜드에서 디카프리오도 그런 증세를 보인다. 그런데 아주 독특한 점은 관객으로 하여금 디카프리오가 정상인처럼 느껴지게끔 디카프리오의 환각속에 동참하게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많은 관객들은 디카프리오가 정말 환자인지, 아니면 병원측의 음모에 당하고 있는지 헷갈려 했을 것이다.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가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처럼 관객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갈팡질팡 한다. 한번더 설명하자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디카프리오의 환상의 시각으로 셔터 아일랜드를 해석하다가 끝에가서 의사로 하여금 당신은 2년전부터 우리 병원의 환자였다라는 말을 듣고는 이것을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감독은 여러가지 정황을 보여주면서 관객을 설득시킨다. '미안하다, 그때는 밝히기 곤란했다.'라는 식으로.
디카프리오의 증세를 치료하는 스타일은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처럼 환자를 속이는 연극을 꾸미는 것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베로니카 소설에서는 삶에 대한 의욕이 없는 베로니카에게 곧 죽을 것이라 거짓말 함으로써, 생에 대한 욕구를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면, 셔터 아일랜드에서는 정신분열증환자의 환각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여 맞장구쳐주는 연극을 펼치고, 다카프리오의 그간의 환상 스토리의 뇌관의 장소인 '등대'로 불러들여 그곳에는 사실 아무것도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게끔하고 동시에 2년간의 진실을 밝혀 자신이 허구속에 빠져있음을 자각하게끔 하는 치료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환자로 하여금 환각의 끝으로 불러들인다는 치료 자체가 놀랍다.. 마치 무지개 끝에 보물이 있다고 믿는 자에게 무지개 끝에 데려가줌으로써,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인지행동치료의 일종으로 이해하면 될까.
아무튼 치료는 베로니카 때처럼, 치료는 성공적이다.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지난 과오와 스스로 허구의 인물들을 만들어냈음을 자각한다. 의사는 정신병환자를 치료하는 세가지 방법을 소개하는데, 첫째는 뇌수술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고 셋째는 대화로써 인지적 치료에 접근하는 것인데 의자사신이 추구하는 세번째 방식으로 치료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디카프리오는 예전에도 정신이 돌아왔던 때가 있었고, 다시금 병이 재발하곤 했다. 의사는 이번에도 재발하게 된다면, 뇌의 부분을 잘라내서 기억을 없애버리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린다. 디카프리오의 선택은? 척에게 '우리는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거야'라며, 다시금 허상에 빠졌음을 알린다. 처음에 나는 이 부분이 실제로 병이 도진 것이라 여겼지만, 마지막 대사와 그것을 들은 척의 반응을 연관지어 볼 때, 디카프리오는 일부러 미친척 한 것이라는 다른 분들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디카프리오는 '괴물로 살것인가, 선량하게 죽을 것인가'라고 말하는데, 정신분열증 환자가 괴물이라는 개념을 떠올릴리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괴물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괴물은 과거의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에 빠져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폭력적인 상태로써, 뇌 수술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함께 이 괴물적 자신을 지워버리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것은 불완전한 해석임을 인정한다. 정신불열증 환자로서의 디카프리오도 다분히 폭력적이지만, 정신분열을 앓기 이전의 삶에서도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나 저래나 괴물이며, 죽음 외에는 벗어날 길이 없다.
이 영화가 단순히 한 정신병환자의 삶을 그려낸 것은 아닐 것이다. 디카프리오는 인간성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감독은 그를 통해 괴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인간성을 고발하고 있다. 게다가 디카프리오를 통해 정신분열증의 혼란스러움을 간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관객을 환자의 자리에 앉게 한다. 디카프리오의 아내는 자신의 자녀를 죽인다.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아내를 죽인다. 살인의 대상이 모두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미워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상대들은 모두가 소중한 존재임을 알린다. 소중한 사람을 죽이고야 마는 미친 세상을 닫힌 섬으로 그려낸다. 감독의 눈에는 이 세상이 하나의 정신병원인 것이다. 세상의 어떤 단면은 정신병적 미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오히려 옳다고 말한다.
둘러보면, 그러한 모습들을 우리 자신에게서조차 찾을 수 있으리라. 우리 자신을 조용히 등대로 옮겨보자. 등대는 빛을 비추는 곳이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실체를 드러나게 한다. 우리는 벌거벗듯이 까발려질 것이다. 냄새나고 흉한 모습이 우리 자신은 아닐까.. 아니라고, 나는 그런 병자가 아니라고 거부한다면 아직 자신의 셔터 아일랜드를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괴물적 자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로지.. 그러한 삶에서 죽는 길 뿐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애벌레가 누에고치가 되어 이전의 자신이 죽듯이, 죽어야만 선량한 다음 세상을 기대할 수 있다. 디카프리오는 그렇게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영화 속에 숨어 있는 상징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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