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나이차에도 진중함에 끌려 결혼한 데이코와 겐이치. 1주일 뒤 업무 인계를 위해 떠난 남편은 행방 불명되고 남편의 짐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두 장의 사진을 갖고 남편의 근무지로 떠납니다. 사라진 남편의 행적을 쫒으며 미처 몰랐던 과거가 조금씩 밝혀 지고 연이어 의문의 연쇄 살인이 발생합니다. 남편은 어디로 사라졌고 두 사진은 남편의 실종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그리고 연쇄 살인을 저지를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제로포커스>가 관객과 비평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스테리한 이야기 구조에 뿌리를 둔 탄탄한 스토리에 있습니다.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의 원작자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신의 정신적 스승으로 미련없이 지목하는 일본 추리 문학의 대가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의 동명 소설 '제로의 초점 (Zero Focus)'를 영화화 한 작품으로 '점과 선', '모래 그릇'에서 느낄 수 있는 기발한 반전과 놀라운 이야기 전개가 압권입니다. 특히 이번 작품은 단순한 범인의 추리라는 점에 더해 일본 근대사에 패전 후 시대의 아픈 과거가 만들어 낸 부끄러운 사회의 단면을 들춰내어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듯한 시각 또한 돋보입니다.
그런 시대의 아픔이 3명의 여배우에 절정의 소롬돋는 연기를 통해 화면에 고스란이 담겨지고 있습니다. 약간의 공백을 갖고 복귀한 일본의 대표적인 여배우 히로스에 료코는 착하고 순종적인 겉모습 안에 내제된 강인함이 절제의 미학으로 표현 될 연기를 보여 줍니다. 실종과 연쇄 살인에 중요한 단서와 비밀을 간직한 두명의 여인 사치코와 히사코를 연기한 나카타니 미키와 기무라 타에 역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떤 일도 서슴치 않은 무서운 악녀와 오래가지 않을 사랑임을 알면서도 착한 성품으로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 들이는 착한 여인을 각각 연기합니다. 특히 나카타니 미키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통해 보여준 연기력을 바탕으로 섬뜩하고 광기어린 여인의 전형을 보여 주며 이번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연기력을 보여주는데요... 큰 화면에서 그녀의 클로즈업 된 장면은 지금도 온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조제 호롱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드 히미코>와 같은 따듯한 감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이누도 잇신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시도하는 미스테리 장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연출을 선보입니다. 인물에 성격을 극한으로 표출시키는 영상이나 그녀들의 인물 성격을 복장 (특히 광기어린 살인때는 붉은 색을, 악마적인 행동을 할 때는 검은 색을, 모든 것을 잊고 새출발을 하려할 때는 천사처럼 흰색의 옷) 으로 엿볼 수 있는 장면은 이야기 흐름을 날씨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방식과 연장선상에 위치합니다. 조용하고 잔잔하게 전개되는 스토리는 점점 큰 파동이 되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며 빠르게 전개되고 모든 것이 끝난 뒤엔 다시 잔잔하게 마무리되는 그의 연출은 130분이나 되는 상영시간은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집니다.
패전 후 미군이 점령시기에 '팡팡걸'이라며 손가작질 받고 경찰에 잡혀 갔던 그녀들의 모습은 우리 역사 속에서도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전쟁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며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한 비극의 시대... '더 플래터스'의 <Only You> 노래 가사처럼 '당신만이 어둠을 밝혀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며 나를 바꿀 수 있는 내 운명...'을 꿈꾸던 여인의 소박한 사랑은 생존을 위해 희생된 채 잊고 싶은 과거로 남았습니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지금의 현대화 된 도시를 보여 주다 한장의 그림을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꿈과 희망이 담긴 미래를 그녀에게 보여 주면서 우리도 그녀를 잊지 말자는 의미는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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