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에어.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던 남자의 끝없는 비행기
굳이 평가하자면 라이언 빙햄은 미국 사회의 성공한 부류에 속한다. 해고전문가라는 조금은 비도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돈을 잘 버는 도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라이언 빙햄은 자신의 일에 대해 전혀 망설이지 않으며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고 오히려 자신의 일을 정당화시키는 자신만의 미학까지 가지고 있는 예술가적 기질의 인물.
그런 감성은 그의 ‘배낭 이론’에도 잘 나타나 있다. 집, 가족, 친구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무거운 짐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얽매이게 된다는 이론이다. 어린 신입사원 나탈리가 듣기에는 충분히 반감을 가질만 하지만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는 꽤 설득력 있고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골치 아픈 인간관계를 모두 집어던져 버리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그는 자신의 배낭을 비우기 시작했다. 집, 정든 탁자, 가족, 직장동료, 친구들, 연인까지. 일년 중 322일 비행기에 몸을 싣고는 창밖을 바라본다. 자신이 떠나보낸 모든 것들 위에서 조금은 냉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마일리지 천만마일을 목표로,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멤버십 카드를 소소한 친구삼아 사는 인생이다.
중년의 남자 라이언 빙햄의 비행(?)아닌 비행의 기록은 어느 날 당돌한 신입사원 나탈리의 등장으로 산산조각 날 위험에 처한다. 메일로 해고통보를 하는 세상이라지만 안면식도 없는 젊은 여성이 PC화면에서 나타나 ‘당신 해고야’를 외친다고? 라이언은 모든 걸 버렸던 자신의 삶을 잃지 않기 위해 나탈리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한다. 모든 일에 열정적인 나탈리와 뼈속까지 냉소적인 라이언의 충돌은 계속된다.
어떤 인간이 남을 비난할 수 있겠냐 만은 라이언 빙햄의 삶을 구석까지 알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가 약간의 장애를 겪고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을 가지게 된다. 일종의 성장과정에서의 아동폭력이나 애정결핍 같은 거 말이다. 그가 사람을 밀어내고 허공을 끌어안은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러지 않고서는 라이언 빙햄은 너무나 인간미가 없는 인물일 테니까.
‘인 디 에어’에서 느껴진 일말의 공허함은 이곳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 초반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던 라이언 빙햄은 보여주는 그대로의 일차적인 인물일 뿐이고, 흥미진진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해고전문가의 일상은 너무나 단편적이다. 또한 에피소드끼리도 잘 맞물려 있지만 하나하나 놓고 따지면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도 내가 느낀 공허함의 일부.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 주제는 루즈하다는 것이 극의 재미가 꾸준한데도 실망감으로 이어졌을지 모르는 부분이었다. 의외로 알렉스와 라이언의 기묘한 관계나 나탈리라는 인물의 변화가 더욱 흥미진진했다. 아! 알렉스에게 실연당하고 돌아가는 비행기 편에서 꿈에 그리던 천만마일을 달성하는 장면도 놓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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