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현재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믿을 만한 웃어른이다. 예전에 그가 잘 나가는 액션 배우였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게 만들 만큼 빛나는 필모그래피 속에서, 그는 웃어른으로서 보여줘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연장자의 위치에서 팔짱끼고 '요즘 젊은 것들이란...' 하는 식으로 내려다 보지도 않고, 버거울 만큼 트렌드를 쫓아가려 하지도 않는다. 본인이 지니고 있음직한 바람직한 생각을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설득력을 지닌 목소리에 실어 전달한다. 오랜 연륜과 그만의 철학이 만들어낸 그의 메시지는 품격 있으며, 조용하면서 깊게 가슴을 울리는 전달방식은 그런 메시지를 토씨 하나하나까지 와닿게 전해준다.
특히 근래 몇년 간 내놓은 작품에서는 이러한 웃어른의 시선이 더욱 진하게 드러났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통해 지극히 다른 지점에 서 있는 두 세대가 얼마나 굳건한 결속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랜 토리노>를 통해 떠나는 어른이 남아있는 젊은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본보기 중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들 영화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 얼마나 큰 가치가 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그 영향력을 조금씩 확대해 나갔다. 개인이 개인에게, 개인이 조그만 지역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굳이 연결짓지 않아도 좋지만 이들과 함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소통 3부작'이라 불리는 최근작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이하 <인빅터스>)는 그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개인간의 소통이 이제는 거대 국제사회에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1990년 27년 간의 정치범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는 199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다. 흑인 유권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은 그였지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단지 흑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누구도 우월하지 않은 채 흑인과 백인 모두가 동등하게 어우러지는 사회였다. 여전히 두 진영은 서로를 혐오스럽게 바라보고 있었고 이 갈등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남아공의 인기 스포츠인 럭비였다. 백인들은 열광하지만 흑인들은 규칙조차 모를 만큼 관심도에서 큰 차이를 지니는 럭비. 남아공 럭비 대표팀 '스프링복스'는 마침 부진한 경기성적으로 연일 좌절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만델라는 럭비 안에서 인종갈등 해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프링복스 주장인 프랑수아 피나르(맷 데이먼)와 만남을 갖는다. 곧 다가올 남아공 럭비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둘 게 뻔하다는 여론에 아랑곳없이 만델라는 프랑수아에게 월드컵에서 우승해 줄 것을 부탁하고, 처음엔 의아해 하던 프랑수아 역시 점차 만델라의 마음을 이해해가며 피나는 훈련에 돌입한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만델라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복싱이 중요한 소재였지만 복싱 경기가 중요하지 않았듯이, <인빅터스>에서도 럭비가 주요 소재지만 럭비 경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럭비를 발단으로 개인과 개인이 어떻게 소통의 장벽을 허물며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치는가이다. 그만큼 영화는 럭비 월드컵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이벤트를 배경으로 다양한 소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가까이 조명한다. 때문에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남아공 럭비팀이 기적적인 행보를 보이는 과정이라기보다 그 속에서 이뤄지는 넬슨 만델라와 주변 사람들의 소통이다.
이런 전개 속에서 모건 프리먼은 정말로 중요한 중심이 된다. 넬슨 만델라의 얼굴은 익히 알고 있지만 목소리나 평소 행동을 별로 관찰해 본 적 없는 상황에서, 모건 프리먼이 등장하는 순간 이건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실제 만델라의 모습 그대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실제 만델라가 모건 프리먼의 가면을 쓰고 나왔다고 해도 될 만큼 그의 연기는 꼼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만면에서 떠나지 않는 인자한 표정과 조곤조곤한 말투, 그리고 때때로 풀어놓는 넉살 좋은 유머감각까지. 매우 유명한 실존인물이기에 어설프게 표현했다간 대외적으로 코미디가 되어버릴 수 있는 인물을 모건 프리먼은 실제 그 분을 영접하는 느낌이 들듯 생동감 넘치게 연기했다. 그와 함께 연기한 맷 데이먼 또한 일품이다. 실제 럭비 선수 부럽지 않게 몸을 근육질로 잔뜩 불리고 나온 그는 팀 주장으로서의 대범함과 사려깊은 면모를 골고루 펼쳐놓으면서 영화에 에너지를 더한다. 모건 프리먼의 조용하지만 깊은 힘과 맷 데이먼의 활기는 영화 속에서 보기 좋은 조화를 이룬다.
미식축구나 럭비는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비인기종목으로 알려진 스포츠다.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숱하게 나오는 미식축구 소재 영화들이 아무리 미국에서 대박을 쳐도 우리나라에는 DVD로만 출시되는 경우가 허다한데(심지어 올 아카데미에서 강력한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작이자 미국에선 2억달러 수입을 돌파한 산드라 블록 주연의 <블라인드 사이드>도 개봉 소식이 전혀 없다. 역시 미식축구 소재 영화), <인빅터스>는 정식으로 극장에서 개봉되니 특이한 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마 영화가 럭비를 소재로 갖다 쓰긴 하지만 이것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럭비 경기 장면들이 상당 부분 등장하지만 영화는 그 장면들을 중계하듯이 보여주지도 않고, 관객 역시 경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굳이 신경 써서 볼 필요가 없다. 럭비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목적은 가망이 없어 보이던 두 집단이 소통의 문을 열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빅터스>가 가장 중요하게 신경쓰는 것은 분열된 국가 속에서의 만델라의 고민과 그 고충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물론 그 시작은 만델라와 프랑수아다. 영화는 아파르트헤이트(백인우월주의) 정책이 무너진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만델라의 배경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굳이 붙이지 않는다. 27년동안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있던 사람이 불과 4년만에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는 이야기는 누가 봐도 드라마틱한 이야기지만, 워낙에 잘 알려져 있고 그래서 영상으로도 여러 차례 재현되었기에 영화는 여기에 굳이 힘을 싣지 않는다. 그러나 만델라가 짓는 순간순간의 표정과 담백하면서도 맺고 끊음이 확실한 말들을 통해 그가 얼마나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시중을 드는 아주머니에게까지도 '당신은 나에게 빛과 같은 존재예요'라는 말을 건네고, 경호원의 뜬금없는 가족 안부 질문에 '나에겐 국민 모두가 가족'이라며 표정이 급변하는 모습은 매우 짧은 순간들이지만 그가 얼마나 깊은 마음을 가졌고 그만큼 얼마나 복잡한 심경 속에 놓여 있는지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당한 핍박에 대한 보상으로 그만큼의 핍박을 돌려주길 원하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잘 알고 있는 만델라는 그 길을 거부한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길, 서로가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를 누군가로부터 제공받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열어가려 한다. 이를 위해 스포츠가 매우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만델라는 일찌감치 간파한다. (만델라가 럭비 경기를 관전하는 장면이 처음 나오면서 경기 장면보다 경기를 지켜보는 만델라의 주변 상황을 더 많이 비추는 것은 이러한 스포츠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의 진심은 승리에 목말라 있던 프랑수아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자신들이 경기를 벌이고 승리하는 것이 단순히 자존심 이상의 거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 역시 서서히 깨달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이전의 영화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정치적, 사회적인 규모의 소통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만델라의 이야기라고 해서 단지 만델라의 시선만 따라갈 순 없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감독은 시종일관 그 외 다양한 인물들에게 시선을 분배한다. 오프닝에서 만델라의 귀환을 두고 전혀 다른 시각을 지닌 흑인들과 백인들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대통령 측근에 있는 많은 사람들, 프랑수아 가족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비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대통령 경호원들의 모습인데, 처음 백인 경호원들이 새로 들어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경기가 진행되면서 경호 중 관전하는 그들의 모습까지 영화는 은근히 꾸준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듬직한 덩치답지 않게 은근히 아기자기하게 갈등을 일으키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예상치 못하게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하면서 자칫 교훈적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영화를 더욱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프랑수아네 집에서 하녀로 일하지만 럭비 경기만은 누구 못지 않게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흑인 여자 유니스의 함박웃음도 잠깐이지만 관객들에게 엄마미소를 안기기에 충분하다.
<인빅터스>에는 나쁜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서로를 노려보던 사람들도 훈훈하게 퍼져나가는 스포츠를 통한 소통의 힘 속에서 얼어붙은 시선을 서서히 녹여나간다. 진심은 전해진다고 했던가, 누군가 마음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 더 행복해지는 길임을 강조하는 만델라의 생각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27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마저도 용서한 만델라의 용기는 그 정도의 저력을 지니고 있었다. 수년 간 묵었던 감정이 어떻게 저렇게 순식간에 풀어질 수 있겠느냐 싶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대결이라 할 수 있는 스포츠의 힘은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미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경험한 입장에서 그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라와 나라가 웬만해선 세상 그 어느 것보다 공정하게 치뤄지는 경기 속에서 적어도 같은 나라 안에 있는 국민들은 하나의 마음으로 뭉치게 된다.
이렇게 소통의 힘이 국가 단위로 확장되면서 그것의 출발점이 된 만델라의 노력과 용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는 역시 만델라가 겪어 온 고초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지만 그가 즐겨 읊었던 시만으로도 그의 위대한 정신력을 실감케 한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요, 내 영혼의 선장이다'라고 나지막히 읊조리는 그 속에서 영화는 더도 덜도 말고 단지 무언가 확실한 믿음을 지닌 듯 의연한 교도소 속 만델라의 표정만을 담는다. 스포츠를 통한 국론 통합의 방법을 많은 사람들은 정치적인 계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계산보다 신념의 문제인 듯 싶다. 만델라가 이 길을 나아가는 동안 한 순간이라도 이 길을 의심했다면, 계산이 아무리 잘 되도 실패했을 것이다. 결국 그가 일으킨 기적은 '수지가 맞아서 된 일'이라기 보다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는 이렇게 고요하지만 굳건했던 만델라의 믿음을 중심으로, 그 믿음의 힘이 소통의 힘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인빅터스>는 근래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중에 가장 밝은 영화다. 이전에는 감동의 와중에도 가슴 아픈 순간이 분명 존재했지만, 이 영화는 갈수록 행복감이 커져만 간다. 그것은 아마도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이들 모두가 참 바람직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자는 고통마저도 승화하여 자신의 신념을 한시도 흔들지 않고, 그를 따르는 이들은 비록 처음엔 어리석더라도 얼마든지 바꿔나갈 수 있는 유연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실화라는 울타리 속에서, 감독은 역시 이런 이상적인 이야기 또한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기적같은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게 만들고야 만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매 작품마다 보여주는 '조용한 설득의 힘'은 이 영화에서도 예외없이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