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혼이 상처없이 가슴 속에 머물수 있을까 영화는 내내 생각하게 합니다.
의붓 아버지의 성폭행에 넘 힘들어서,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모습을 보고
눈알이 뒤집어 져서,의처증으로 폭행하는 남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그렇
게 그들은 감방에 함께 모였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상처를 만드는 일들은 대부분이 가정의 울타리
에서 가족들간에 일어나고 있음을 영화는 말합니다.
가장 서로를 보듬고 핥아 주어야 하는 가족들이 오히려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팬티 입은 모습을 보여 주어도 될 만큼 너무 가깝게 방어벽을 허물고 자신을
열어 주어서 그런 것일까요?
타인에게 온갖 상처를 입은 너덜너덜한 자신의 마음의 문을 단단한 열쇠로 굳게
닫아 잠가 보지만 감방에서 태어난 어린 아기의 웃음을 타고, 죄수들끼리 만들어
가는 노래의 화음을 타고 그들은 조금씩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조금씩 의지해 갑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그 곳이 죄라는 올무를 뒤집어 쓰고 모여든 어두운
감방이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쳐 놓은 메마른 아파트의 자그마한 공간이든
모두 같은 자리인 것 같습니다.
여기 사회에서 죄인이라고 낙인을 찍은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이 가족과 같은 따스함을 나누고 살아갑니다.
타인의 가슴에 깊게 패인 상처를 우리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본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상처입니다.
내 손가락에 난 자그마한 상처가 저 멀리 이라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더 아픈 것은 그것이 바로 나의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우리의 상처와 너무도 닮아 있고 그 자리에 후시딘을발라 주는 어머니 같은 따스한 이가 없기에 더욱 그러 했는지 모릅니다.
사형수인 감방의 어머니는 사형장으로 가는 스크린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을 향해 뒤로 돌아보고 가만히우리를 쳐다 봅니다.
영화관을 나서면 그저 감방의 어머니가 행했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의 상처에 후신딘을 발라 줄 수 있는이가 되기를, 그것은 그저 그의 굳게 잠긴 마음을 스스로 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보기를, 그래서세상은 혼자 사는게 아니라 서로에게 기대며 사는 거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닿고 나가기를 바래 봅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아주 많이 울어서 가슴에서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빠져나간 느낌입니다.
그것은 덩어리가 빠져나간 그 빈 자리에 새로운 관계의 희망을 심고자 함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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