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평은 극과 극이다. 재미없다와 이 영화를 보고 횡재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사실 재미있는 대중오락영화라고 하긴 힘들겠다.
판타지적인 영상과 내용이 나오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있으면 애매모호, 오락가락하는 듯한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근데 그 점이 오히려 이 영화의 매력을 더욱 살려주었다고 생각되었다.
우선, 이 영화를 보기시작하고 얼마 안되어서 故 히스 레저의 모습이 영화에 등장하자
눈시울이 조금 뜨거워졌다. 히스 레저의 열광팬이라곤 할 수 없지만, 왠지 죽은 사람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하자 괜히 더 이상은 대형스크린에서 그의 얼굴과 연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더군다나 명작 '다크 나이트'에서는 명연기를 펼쳤지만, 조커 분장에 의해
제대로 된 그의 맨얼굴을 보기 힘들었으니, 이번 '파르나서스 상상극장'에서 그의 온전한 모습과
그의 본모습의 얼굴로써의 연기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를 가장 뜻깊게 하는 첫번째 이유였다.
그 다음부터는 테리 길리엄 영화 특유의 판타지적인 상상력과 영상을 맘껏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히스 레저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이 영화의 완성을 어떻게 할까가 관건이었는데,
다행히도 그의 프렌드쉽 덕분에 우리는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패럴이라는 4인1역의 배우들의 연기까지
즐길 수 있었다. 물론, 히스 레저의 온전한 연기로 끝까지 영화를 다 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의 죽음이 색다른 식으로의 영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 그것 또한 이 영화의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내용이 내게는 매우 매혹적이었다. 악마와의 내기, 도박. 인간이라면 그러한 유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파르나서스 박사도 그랬다. 내기, 그것도 악마와의 도박은 불 보듯 뻔한 끝을 가지고 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딸까지 걸고, 게다가 딸까지 잃고나서야 정신차리는 파르나서스 박사.
그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팔면서 때로는 행복을 때로는 파멸을 안겨주지만, 정작 자신은 거렁뱅이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딸과 그의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식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그것이 온전한
삶이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테리 길리엄 감독은 전작인 '그림 형제'에서도 그랬듯이, 판타지적인 영상과 상상력을 항상 구현하려고 한
감독이었다. 물론 그것이 아주 예술적이라고 보기에도 조금 모자르고, 아주 대중적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모자라서 관객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그의 그러한 작가주의는 꽤 맘에 드는
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버리면 안되는 것, 그것은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감독은 '파르나서스 박사'의 모습에 본인의 모습이 어느 정도 투영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상상력'은
어느새 너무 현실적으로만 되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사라져버린 요소일지도 모른다. '상상력'은 '희망'을
만들어주고, '미래'를 만들어준다. 현대사회에서는 그러한 것이 헛된 희망이고 살아가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되는 것이라고 말들 하지만, '상상력'은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마디로 '꿈을 꾸라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은 팍팍해지고 미래는 잿빛색깔로 변할지도 모른다.
삶을 살아가면서 잃어가고 있는 상상력과 꿈을 만들어보기 위해, 본인은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
한발 들여놓아보고싶어졌다. 테리 길리엄 감독이 관객들에게 이 영화를 통해 바랬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
까? 故 히스 레저의 모습을 통해 구현된 그러한 모습들이 이 영화에 온전히 남아있다. 비록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흥미롭고 빠져들고 싶은 그러한 영화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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