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셜록 홈즈여야 할 이유가 없는 영화... ★★★
빅토리아 시절 런던의 명탐정인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친구 왓슨 박사(쥬드 로)와 함께 흑마술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여성을 연쇄 살인한 블랙우드 경(마크 스트롱)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사형을 선고 받은 블랙우드 경은 자신이 부활할 것이며, 그 이후에 더욱 무시무시한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 예언한다. 사형 후 블랙우드 경의 예언이 현실화되자 런던은 공포에 빠져들고, 수사에 나선 홈즈 앞에 옛 연인이자 능수능란한 범죄자인 애들러(레이첼 맥아담스)가 등장한다.
아서 코난 도일 원작의 셜록 홈즈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책을 직접 읽어 보진 않았더라도 세계 최고의 명탐정이라는 셜록 홈즈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셜록 홈즈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코난 도일은 영국 국회의원을 상대로 가벼운(!) 장난을 친다. 그 장난이란 “모든 게 들통 났다. 빨리 런던을 떠나라. 셜록 홈즈”라고 쓰여 있는 서신을 국회의원들에게 발송한 것. 그러자 놀랍게도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실제 런던을 떠났다고 한다. 이러한 에피소드로 우리는 당시 영국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는 것과 소설 속 인물인 셜록 홈즈가 소설을 벗어나 실제적 이미지와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소설 속 셜록 홈즈의 이미지는 대체로 어떤 것일까?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등 예술적 재능이 있었으며, 상당히 깡마르고 키가 큰 것으로 묘사된다. 성격적으로 대단히 민감하고 예민하며 사실상 정신병에 가까울 정도의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는 다른 것이 사람들에겐 좀 더 각인된다. 그건 바로 사냥용 모자와 파이프로 대표되는 그의 패션(!)이다. 그래서 많은 영화, 드라마 또는 만화에서 묘사되는 셜록 홈즈는 무수히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동일한 건 모자와 파이프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걸치고 다니는 망토.
영화 <셜록 홈즈>의 스틸컷에서 알 수 있듯 일단 가이 리치는 기존 홈즈의 이미지를 무시한 채 백지에서 출발하고 있다. 물론 소설 속 셜록 홈즈가 병약한 존재는 아니었으며, 여러 장면에서 범죄자와 직접 몸싸움을 벌여 제압하기도 하는 등 육체적으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셜록 홈즈는 기본적으로 몸싸움에 능한 액션영웅이라기보다 사냥개 같은 뛰어난 감각을 소유한 두뇌 플레이어에 좀 더 가깝다.
사실, 영화는 오락적으로 꽤나 괜찮은 편이다. 우선 산업 혁명 시대를 묘사한 화면만으로도 볼거리는 충분하다. 증기선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템즈강의 풍경과 산업혁명의 현실을 통과하듯 시끌벅적한 거리와 노동자의 모습, 특히 건설 중인 타워 브리지는 묘한 감상에 젖게 한다. 추리 과정이나 내용이 대단히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액션을 받쳐주는 정도의 역할로선 적당했다고 할 수 있다. 홈즈와 왓슨 박사, 그리고 홈즈와 애들러의 관계에서 표출되는 유머와 액션 장면도 그 정도면 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가이 리치 특유의 화면 구성도 여전하다. 문제는 영화 속 인물들에 왜 홈즈, 왓슨의 이름을 붙였는가 이다.
왜 가이 리치는 권투 시합을 벌여 거구의 상대를 쓰러 눕히게 하는 등 액션 영웅으로서의 홈즈를 강조했을까? 아니 반대로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액션 영웅에게 셜록 홈즈란 이름을 붙여줬을까? 어쩌면 가이 리치는 셜록 홈즈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거나 창조한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셜록 홈즈라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름을 사용한 건 아니었을까? 이 부분이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가이 리치가 창조한 <셜록 홈즈>는 굳이 셜록 홈즈가 아니었어도 괜찮은 영화 또는 셜록 홈즈여야 할 이유가 없는 영화이다.
※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애들러를 고용한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모리어티 교수 아닌가 했고, 내 예측은 맞았다. 코난 도일 원작에서 홈즈의 가장 강력한 상대였던 모리어티 교수. 홈즈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대결해야 했던 희대의 범죄자 모리어티 교수. 결국 가이 리치는 <셜록 홈즈>에서 모리어티 교수를 언급함으로서 이 영화가 시리즈로 발전했으면 하는 자신의 희망을 극적으로 드러낸 셈이 되었다. 문제는 모리어티 교수가 다음 편에 정면 등장하느냐, 아니면 이번과 비슷하게 범죄의 배후 인물로서 존재하느냐 일 것이다. 이 부분이 가이 리치의 가장 큰 고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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