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영화가 재밌을 줄은 몰랐다.
되게 심각하거나 어둡거나 그럴줄만 알았다.
초상화로만 보던 베토벤은 심각한 얼굴의 광적인 악성일 뿐이었는데,
영화 속의 베토벤은 아래층 이웃에게 욕 먹고, 귀가 멀어 나팔관을 껴야 겨우 들을 수 있고,
성격 드럽고, 자신의 음악을 지휘하며 천국을 오가는 그 자체이고,
가상의 뮤즈 안나의 도움을 받고 용서를 구하며 사랑하는 천재의 능력을 가진 한 '인간'이었다.
100분여의 시간이 한 10분밖에 흐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보통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를 봐도 1시간만 가만히 앉아있으면
엉덩이 아프다고 잡생각이 드는데
카핑베토벤은 그런 것 따위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9번 교향곡 <합창>의 초연장면은 진짜
안나와 베토벤의 눈빛으로 소통을 해가며 연주에 빠져드는 절정은
영화를 보는 것 뿐인데도 베토벤을 연기한 배우의 표정을 보는 이가 따라가게 하고,
연주가 끝나면 저절로 박수를 치게 한다.
음악과 영화가 만나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이런 거대한 수작을 볼 수 있다니
보는이로서는 매우 감동적이고 기쁠 수가 없다.
카핑베토벤은 음악만으로도, 대사만으로도,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잠시 눈물이 그렁그렁 매칠 정도의 감동을 주는 수작이다.
동시에 잔잔한 것 같으면서도 베토벤의 음악만큼이나 흐름이 당차면서 빠르다.
그렇기 때문에 오락성의 영화가 아닌데도 불구 전혀 지루함은 느낄 수가 없다.
어떤 영화들을 보면 다 본 후,
답답하고 복잡하며 긴 여운을 주눈 영화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감독이 많은 것에 대한 부분을 보는 이에게 여백을 남겨
생각하도록 또는 다르게 느낄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거나,
감독 본인이 그 상황에 결론 또는 정답을 내리지 못해 또는 내릴 수가 없어서
그 상태 그대로를 관객에게 느끼게 해 주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핑베토벤은 위에서 말한 그런 영화들과 느낌이 비슷한 것 같지만
영화를 다 본 후,
여운을 주기 보단 깔끔하고, 선명하고, 그대로 정돈된 말끔함을 준다.
그리고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본 영화가 끝난 후 베토벤의 음악으로
아웃트로까지 감상하게 만든다.
다른 영화들은 아무리 재밌고 아무리 여운이 남더라도
영화가 끝난 후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시선을 돌리게 되는데
인간적인 천재 베토벤을 기리고 싶은 마음에서일까
그의 음악이 나오는 도중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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