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시작을 보지 못한 난 영화의 시작이 어떻게 설정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 본다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을 것만 같다. 샤넬이란 여자의 특정 시기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아닌 특정 시대를 꼭 집어서 만든 이 영화는 그래서인지 샤넬 인생의 전체를 담는 주제나 이미지를 담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실망한 것은 아니다. 그녀 인생 전체를 다 봐야 할 것도 아니고 그녀의 인생이 과연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 아님 얼마나 같은지 확인할 것도 아니다. 그냥 그녀는 그녀일 뿐이다. 그녀의 인생 일부분을 보기 위해 사전에 그녀의 성공담이 크게 주목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공을 위한 그녀의 스토리가 중심이 되지도 않았고 그녀의 화려한 의상 디자인에 의해 조성된 세상이 있지도 않았다. 남성스럽게 입은 모습이 설마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흥분시킨 모습은 아니리라. 차라리 어수룩한 여자만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정체다. 좋은 이미지와 모습으로 치장을 했지만 그녀의 성공엔 남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고 그것이 어느 여성의 자유와 자립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자칫 잘못 보거나 나쁘게 보면 그녀는 아내 있는 남자의 정부라고 여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여성성을 이용했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립심 강한 여성보단 성공을 위해선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은 그녀만 있었다. 현대 여성의 핵심인 자립이 있기보단 사랑하다 어떻게 해서 자립했고 그래서 자기 인생 산 여자일 뿐이다. 영화를 통해 과도한 주제의식이나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은 영화를 보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인생을 담은 영화를 갖고 주제의식 찾는 어리석은 방법은 탈피해야겠다. 그녀의 인생에서 부분만 뽑아 놓고 그것을 갖고 그녀 인생을 통째로 이야기하거나 상징한다는 것은 사실 우스운 일일 뿐이다. 2차 대전 이후 그녀에 대한 많은 논쟁들은 이 영화에서 삭제됐다. 아내 있는 자신의 애인에 대한 이야기로만 대충 끝낸 이 영화는 어쩌면 샤넬이란 이름에서 자아낸 환상을 충족시키고자 가장 말 적은 부분만 꼭 빼놓은 상황일 뿐이다. 그녀의 성공이 이 영화에선 위대해 보이지도 않고 일중독에 치인 여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로만 보기엔 너무 부족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아름답게 끝났고 그녀의 평생 사생활에 대해 따라다닌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나왔다. 그러나 그것일 뿐이고 영화와의 서사와는 그다지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마지막 자막에서 여성의 자립을 읽을 수 있겠지만 영화의 서사완 사실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또한 샤넬 이름만 빼면 그냥 어느 여자의 사소한 일들의 결합이다. 하긴 사소한 인생이 본인의 입장에선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아님 화려한 디자인의 세계를 보려는 청담동 여인들의 입장에선 사실 안 봐도 그만일 정도다. 그 영화엔 화려한 것이 많지 않으니까.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주제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영화를 통해 주제를 찾는 것 자체가 이미 진부한 영화읽기일 뿐이다. 주제를 찾는 일이 허망하다고 주장하는 예술가들도 있기 마련이라 사소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지는 Trivialism을 이 영화가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영화 곳곳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깔끔하고 Cool한 인간들의 도시적인 행동들은 눈에 띈다. 그들은 서로간의 관계를 담담하게 대처했으며 조금은 타인인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도시적인 모습이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나올 때 당시 시대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장식성보단 단순한 이미지의 의상 (난 샤넬의 작품은 모르지만 그럴 것 같다)이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Cool하기엔 연약하지만 어쩔 수 없이 Cool하게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좀 있을 것이다. 다만 페미니즘 시각이나 자립에 대한 가치를 읽기 위해, 아님 화려한 패션 아이콘을 보기 위해서라면 좀 더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