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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i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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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오후 9:3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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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은 지역과 시대를 넘어 언제나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자고 있다. 다만 그것이 발현되는 형태는 시간과 공간에 기인해 만들어진 매체의 독특성으로 인해 좀 더 다르고 개성 있게 변할 뿐이다. 그런 매체에 종교가 포함된다. 신은 언제나 나를 위한 것이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존재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나를 위한 것이다. 이런 자기애를 이루어 줄 수 있는 신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존경 받을 존재이다. 그래서 신에 대한 해석은 나를 위한 것이고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기적 역시 자기만을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여야만 한다. 무당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기복종교가 여기에 예외는 아니다. 이런 인식은 오늘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류 보편적인 사실이다. [불신지옥]은 그래서 무서운 영화다. 신들린 여자 중학생 한 명을 두고 무당이 나서고 기독교에 함몰된 어머니가 나섰다. 다들 자신의 기준에 맞는 신을 원했을 뿐, 신들려서 행복이 빼앗긴 어린 여자 아이에겐 관심도 없었다. 어린 소녀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할지언정 다른 것에 관심도 없었다. 도리어 신통력이 사라진 그녀를 닥달하거나 당장의 효과를 위해 위험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신에게 원한 것은 신에 대한 경배가 아닌 신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기 만족이었던 것이다. 나만의, 아니 나만을 위해야 하는 신의 존재, 그것이 바로 [불신지옥]의 진정한 공포다. 영화는 어두운 곳을 배경으로 했다. 추운 겨울, 인간적 관계가 파괴된 어느 도시의 아파트,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듯한 아파트 실내, 그리고 콜록콜록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는 언니, 희진(남상미), 뒷목의 깊은 상처를 갖고 있는 신들린 여중생 동생 소진(심은경), 그리고 기독교에 맹신만 하는 엄마(김보연), 이들이 사는 공간은 우울과 불안의 공간, 그곳이다. 이웃이라고 불리는 인간관계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다. 싱글들로만 구성된, 따뜻한 인정이 사라진, 탐욕과 열망만 있는 전형적인 도시인의 그들. 우울한 겨울은 단순히 계절만을 의미하지 않고 그들 주변의 모든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자신들 주변에서 줄 수 없는 불행한 기적이다. 위로 받기엔 더 없이 외롭고 가련한 그들이기에, 열심히 살지만 그 어떤 행복도 마련할 수 없기에, 그들은 탐욕스런 갈망만을 잉태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에 상대의 가치는 무의미해진다. 나 자신의 가치가 상대의 가치보다 우월하고 우월해야 한다고 느낄 때, 그것은 상대에 대한 폭력도 합리화시킨다. 그것이 영화에선 난 힘들고 외롭다는 기본적 피해의식으로 인해 더욱 파괴적으로 양산된다. 신들린 소녀는 죽는다. 아니 자신들을 위해 존재해야 할 신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녀는 부활한다. 분노한 채.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선 가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지만 인간의 허약함과 본능은 그것들 모두를 부정한다. 그래서 영화에서의 분노한 신의 보복에 따른 비극은 솔직히 비극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동생을 찾기 위해 찾아온 언니는 주변의 참상을 보면서 더욱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공포 속에서 그 주변을 둘러다 보는 또 다른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주변인물들의 탐욕에 눈 먼 자들을 보고 또한 공포스러워한다. 영화는 정말 무섭다. 저주 받은 신들린 귀신이 무서워서가 아닌 그런 것들에 얽힌 탐욕과 피해, 그리고 파국이 무섭다. 이런 공포의 본질은 바로 우리 자신이 극 중의 이웃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솔직한 마음의 독백을 들어서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본능과 갈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한 번 영화에서 독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범주에 나 역시 포함될 수밖에 없음을 솔직히 자인하도록 만든 이 영화는 그래서 더욱 공포스럽고 슬프다. 영화의 밖으로 조금 벗어나면 우린 그것들을 너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차라리 신들린 여자의 심판이 공정한 재판이 될 수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너무 슬픈 영화다. 영화는 매우 뛰어난 영화다. 남상미의 재발견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원래 그녀는 뛰어난 배우다. 형사 태환의 류승룡, 엄마 김보연과 괴이한 공포를 자극시킨 심은경 등 역시 원래 뛰어난 배우다. 주변 이웃들 역시 뛰어난 연기파들이다. 우린 그들의 푸닥거리를 즐겁게 볼 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불신지옥]이란 영화가 뛰어난 공포영화란 점이다. 무서운 모습의 피 흘리는 귀신보다 인간의 탐욕을 더욱 공포스런 소재로 발굴한, 작가이자 감독인, 이용주 감독의 발견이야말로 이 영화에서의 가장 큰 수확이다. 또한 [불신지옥]이란 영화가 아마도 한국 공포영화의 하나의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아마도 공포 영화를 만들 다음 감독들은 [불신지옥]을 넘어야 할 숙제에 직면하게 될 것만 같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음 감독들에겐 정말 공포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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