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디즈니/픽사의 천재적인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요? 처음에 장난감을 가지고 보는 이들을 동심 속으로 완전히 빠뜨리게 한 토이 스토리부터 아들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아빠 물고기의 이야기(니모를 찾아서), 슈퍼 영웅 가족의 이야기(인크레더블), 자동차 이야기(카), 뛰어난 후각을 지닌 쥐의 프랑스에서의 성공 이야기(라따뚜이), 귀여운 로봇들이 벌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로맨스(월-E) 등등까지 이들의 영화는 항상 새로운 캐릭터와 완벽한 스토리, 환상적인 기술력으로 항상 만들 때마다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업이 나온다고 할 때, 주인공이 노인과 소년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약간은 걱정이 됐습니다. 지금까지의 주인공 격인 캐릭터들이 항상 독창적이고 새로웠었는데, 노인과 소년이라면 상당히 평범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예고편을 보고, 극찬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나서 극장가서 본 업은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작품입니다. 라따뚜이를 보면서 디즈니/픽사가 많이 성숙해졌음을 느끼고 월-E라는 애니메이션 분야의 최고 걸작을 내놓은 디즈니/픽사의 이번 10번째 모험이야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면서도 어린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묵직한 삶에 대한 이야기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디즈니/픽사의 최고 수준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이야기는 정말 간단합니다. 어렸을 때 한 모험가에 빠지게 된 칼 프레드릭슨은 모험이라는 것에 빠지게 되고,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엘리라는 여자와 결혼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엘리를 먼저 떠나보내게 되고 칼은 그녀의 꿈이었던 남아메리카의 폭포 옆에서 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집에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우연히 그 여행에 러셀이라는 아이가 끼어들고 큰 새와 말하는 개까지 가미하게 됩니다.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보는 이들을 쥐락펴락합니다. 특히 초반부는 완전히 최고 그 자체입니다. 칼과 엘리의 과거에 대한 플레시백 장면이 나오는데 자기 자신에게 심장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장면을 쉽게 넘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어버립니다. 그야말로 가슴이 뭉클해지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수준을 넘어서 버립니다. 이 장면이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감성적인 오프닝 장면으로 남을 가능성이 거의 99%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플레시백 장면이 끝나고 나서 칼이 노년기 삶을 보여줍니다. 공사 터에 있는 집은 팔리기 직전이고 집을 지키려다가 우연잖게 폭행을 저질러 결국 요양원 신세가 되어버리는데 이 모습에서는 그야말로 쓸쓸함이 강하게 느껴집니다.(이 장면을 재밌게 만들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모험이 시작되고 나서는 시종일관 웃음의 힘을 잃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끝까지 거의 미칠 정도로 웃음을 유발합니다. 전반부가 픽사의 영화 중에서 가장 감성적이었다면 중반부부터는 픽사의 영화 중에서 가장 웃음을 많이 유발하는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풍선에 의해 집이 붕 뜨기 시작하면서, 이 영화는 픽사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인 기술력을 맘껏 뽐냅니다. 집이 하늘을 나는 그 장면은 그야말로 극장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장면이 근래에 나온 영화중에 있었던가요. 남아메리카의 폭포를 묘사한 장면이라던지, 심지어 하늘의 구름마저도 너무나도 아름답고 환상적이었습니다.
기술력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창의적인 캐릭터입니다. 심지어 칼이나 러셀의 캐릭터에서도 전형성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거기에 커다란 새 케빈, 말하는 개(이름을 까먹었네요...) 모두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상상력을 자극하게 합니다. 내키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악당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 찰스 먼츠의 캐릭터도 나쁘진 않아요. 다만 전 찰스를 당으로 만든 거에 대해선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기는 해요. 칼과 엘리의 우상과도 같았던 찰스는 그야말로 현실에 의해 거의 악당과 같은 인물이 되어버렸는데 솔직히 그렇게까지 그릴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러지 않았다면 악당도 없이 이야기가 개판으로 되었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이야기와 무게감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들과 시각적인 화려함과 거의 맞먹는다는 점이 이 애니메이션의 그야말로 걸작의 수준으로 끌어올립니다. 무엇보다도 디즈니/픽사가 만든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느껴지는데 본격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거든요. 초반부의 노인으로서 느끼는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어린 아이인 러셀과 함께 벌이는 환상적인 모험, 그리고 모험을 통해 삶에 대한 희망과 꿈을 찾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에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 모험 그 자체고 삶이 끝나지 않는 이상 결코 모험도 끝나지 않는다는,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모험의 정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라는 이 영화의 주제 역시 애니메이션 임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묵직하게, 그리고 정말이지 강하게 다가왔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질없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은 거의 모든 관람층에게 먹힐 수 있는 대단한 영화입니다. 어린이들은 환상적인 모험담을 즐겁게 보고 시종일관 웃을 것이며, 어른들은 보면서 희망을 느낄 겁니다. 게다가 노인들은 보면서 눈물을 흘릴 지도 모릅니다. 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이 언제나 대단하고 천재적이라는 것은 익히 알아왔지만, 이렇게 대단한 애니메이션을 거의 1년 단위로 만들어낸다니... 이제는 뭐 거의 두려운 수준입니다. 루즈하게 느껴지더라도 재미와 상상력, 기술력, 그리고 깊이감까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가는 픽사의 이번 영화는 그야말로 정말이지 제대로 우리의 마음을 업 시키는 어마어마한 작품이었습니다. 아마 올해 지금까지 나온 영화 중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올 해 나올 모든 영화 중에서 최고일 수도 있겠구요.
P.S 언젠가부터인가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을 극장가서 관람하는 것이 하나의 연례행사가 되버렸네요. 라따뚜이서부터 월-E, 업까지 계속해서 발전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내년에 나올 토이 스토리 3 역시 엄청난 수준일 거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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