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전 부터 평론가들과 윤제균 감독이 해운대를 놓고 강조한 부분은
바로 영웅없는 재난 드라마 그리고 재난 자체보다 '사람사는 이야기' 에 중심을 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해운대는 두시간 가량의 상영시간 중 대부분을 다양한 인물들이 엮어내는 이야기와 일상에 할애한다.
덕분에 자잘한 에피소드에서 크고 작은 갈등에 이르기 까지 드라마는 큰무리 없이
한시간 반가량 잘 굴러간다.
문제는 본격적인 재난이 시작되면서 부터이다.
여타 재난영화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던 감독이지만 재난 와중에 벌어지는
갈등의 해소나 감동의 요소들은 앞서 보여진 감칠맛 나는 드라마들을
깔아뭉게고 남을 만큼 작위적이고 구태의연하다.
마치 관객들을 향해 '감동해! 어서 감동하란 말야!' 라고 외치는 듯한
장면들이 반복을 이루면서 감동보다는 심적인 부담과 약간의 거부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감독이 공들여 연출했을 법한 장면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다.
필요이상으로 길게 묘사되는 희생과 용서의 진혼곡에
연출된 상황이란 티가 심하게 나는 감정과잉의 대사와 연기들 때문이다.
오히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장면은 상대적으로 짧게 처리되었지만
백수인 오동춘이 어머니를 잃고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구구 절절한 사연을 늘어놓지도 이런 저런 아쉬운 대사를 남발하지도 않지만
물위에 떠내려가는 구두한짝, 소주한병과 영정사진이란 간단한 소품만 가지고도
캐릭터의 아픔은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러니까.... 해운대에서 부족했던 점은 스펙타클이 아니라
절제되고 자연스런 연출과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드라마였다.
'감동'에 대한 강박관념은 영화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떨떠름한 느낌을 떨쳐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가 보여주는 지진해일의 위압감은 분명 평가받을만 하다.
뉴욕이 물에 잠기는 것과 눈에 익숙한 해운대가 쓸려나가는 장면이 주는 충격효과는
분명 격이 다르다. 할리우드 기술진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한국영화의 기술이 나날이 진보한다는 사실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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