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확장... ★★★
어떤 차원에서 보면 인간은 온갖 편견의 집합체인지도 모른다. 특히 처음 접하거나 익숙지 않은 것들에 대한 편견은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놀랄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다. 인권의 문제는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의 문제이고, 이것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면 결국 낯설음의 문제에 가깝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해피 고 럭키>의 백인 운전기사는 거리에서 흑인이 나타나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며 차 유리창을 올리고, 문을 잠근다. 객석에선 쓴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건 바로 우리 사회, 또는 나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로니를 찾아서>의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완장을 두른 뒤 거리의 외국 이주민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퍼부으며 손찌검을 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상당히 충격적이다.
안산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사범 인호(유준상)는 고객 유치를 위한 국가대표 초청 이벤트를 열었다가 그곳에서 로니(마붑 알엄)에게 불의의 완패를 당하게 된다. 사실 로니는 며칠 전 전철역 앞에서 악세서리를 팔다가 인호가 주도하는 방범대에 의해 두들겨 맞은 것을 복수하기 위해 일부러 인호네 태권도장을 찾은 것이다. 며칠 동안 분에 겨워 끙끙 앓던 인호는 로니와 함께 있던 뚜힌(로빈 쉐이크)을 윽박질러 로니를 찾아 나선다. 로니를 찾아다니며 이러저러한 일을 겪는 와중에 12살 차이가 나는 둘은 조금씩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게 된다. 결국 제목에도 나와 있는 <로니를 찾아서>의 로니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맥거핀이고, 관계의 확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 장기 합법 이주민들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이 주어져 있고, 안산 같은 경우엔 이들의 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사실 주민의 대다수가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이주민 내지는 불법 체류자인 동네의 공기가 어떤지, 분위기가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외국인에 의한 범죄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인구 증가에 따라 범죄가 증가하는 것은 도시의 일반적 현상이고, 또 이들의 대다수가 극빈한 처지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생계형 범죄가 높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가능할 것이다.
이와이 순지 감독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는 한 때 세계 경제를 장악할 듯 보였던 발전한 일본 경제의 그늘로 몰려든 수많은 이주민들의 비루한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벗어나고픈 그들의 꿈과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이런 영화는 아직 시기상조일까? 이제야 겨우 <로니를 찾아서>라든가 <반두비>와 같은 개인적 차원의 관계 확장에 관한 영화들이 한 두 편씩 제작되고 있는 형편이고, 그나마도 이러저러한 태클로 인해 여러 차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개인의 관계 확장에 관한 영화라 하는 점은 인호는 이주민 전체에 대한 시각, 최소한 방글라데시 이주민 전체에 대한 시선으로는 확장되지 못한 채 자신과 관계를 맺은 뚜힌이라는 개인에 대한 시각만을 교정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이는 대단히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뚜힌 옆에는 그의 친구들이 있고, 가족들이 있으며, 그것은 결국 방글라데시 전체로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니를 찾아서>가 진정성 차원에서 대단히 긍정 평가를 받을 영화라는 건 명백하지만, 전반적인 연출이라든가 흐름에선 좀 심심한 것도 사실이다. 인호와 뚜힌이 관계를 맺어가는 에피소드들도 역동적이지 않고 드라마틱하지 않으며 그 과정도 거칠고 좀 성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인호가 복수를 위해 일부 불법 체류자를 신고한 것이 결국 뚜힌의 강제 추방으로 연결되고 그 과정을 인호가 성장하는 모티브로 삼은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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