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드라마, 스릴러 | 한국 | 128 분 | 개봉 2009.05.28 감독 봉준호 출연 김혜자(마더〔도준 모〕), 원빈(윤도준), 진구(진태) 등급 국내 18세 관람가
5월의 마지막날,기다리고 기다렸던 영화 <마더>와의 만남.
5월에도 몇 편의 영화를 봤지만 특별히 기록해두고 싶기에 이 공간에 흔적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감독 봉준호, 음악 이병우, 게다가 소름끼쳤던 김혜자 선생님의 연기. 김혜자의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를 위한 영화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두시간내내 수만가지 표정과 목소리로 나를 압도시켰던 연기에
혀를 내두르면서, 이 역을 할 사람이 이분 말고 또 누가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성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슴눈망울을 가진 원빈(영화 속에서도 도준의 눈을 사슴같다고 표현했었다.)이 모자란 미남아들로 나와
(바보라고 말하면 금방이라도 도준이 내게 눈에 불을켜고(?) 달려올 것만 같아 '모자란'이라고 적어본다ㅋㅋ)순진함, 순수함, 나약함,
그리고 도발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도준'이라는 캐릭터에 잘 들어맞았던 것 같다. 악 원빈♡ 그리고 또 한사람, 빠져서는 안될 '진태'역의 진구는 그 역할에 꼭 맞는 옷을 입고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고보니 실제의 이름과 주인공들의 이름이 비슷하다. 도진 도준/ 진구 진태, 찾아보니 김혜자도 '혜자' 라는 이름이라고 한다.
김혜자의 춤이 각각 다른 느낌으로 오프닝과 엔딩에 배치되어 깊은 여운을 주면서 수미상관을 이루고 곳곳에 배치한 요소들은 나중에 버릴 것 없이 돌아와 앞뒤가 딱딱 들어맞았고,<살인의 추억> <괴물>에 비하면 잔잔한 분위기였지만
그 잔잔함속에 은근하게 조여오는 스토리가 역시 봉테일! 이라는 감탄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어쩜 이런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영화에 잘 어울리는 곳이 아닌가 싶다.
저 곳에서 엄마 '혜자'는 작두로 약재를 써걱써걱 자르는데 그 작두소리가 내게 얼마나 공포스러웠던지...
왜 영화제목이 <엄마>가 아니라 'Mother'인가. Mother는 발음상 살인을 뜻하는 Murder와 비슷하다.
게다가 <엄마>라는 제목의 영화는 이미 있고,그리하여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제목의 <마더>가 되었다는 말.
끼워맞춰졌다고해도 그 언어유희에 나는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처음에 나는, 제목에서 풍겨오는 느낌과 이미 공개된 내용으로, 살인죄를 뒤집어쓴 아들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영화관을 찾았다.
다들 비슷한 생각에서일까, 극장엔 어머니와 함께 온 아들딸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많은 것들이 예상을 뒤엎어서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 지금, 봉준호 감독의 손바닥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한 것 같은 느낌, 머리 꼭대기에서 헛다리 짚는 나를 지켜보고 계셨던 것 같은 느낌.
광기어린 집착의 모성애.
영화의 시작은 김혜자의 알 수 없는 그러나 어딘가 슬픈 춤사위로부터 시작된다. 같이 보던 몇몇 관객들이 부분에서 웃음을 터트리지만 어딘가 당황스럽고 알 수 없는 오프닝의 이 춤사위는
엔딩에서 먹먹함 그리고 격렬함으로 다가왔다. 첫 씬의 춤은 동적이지만 정적인 듯한 느낌이 슬픈, 마지막 씬의 춤은 먹먹하면서도 후련한 슬픔이 노을빛에 버무려져 역동적인 느낌이었다. 엔딩의 춤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딱 떠오르는 게 모순된 표현이지만, 슬픔은 슬픔인데 먹먹하지만 후련한 슬픔.
모든 것을 떨쳐내려고 애쓰는 듯한 김혜자의 춤사위가 슬펐다. 게다가 이병우의 '춤'이 라는 음악과 너무도 잘 어울렸기에 엔딩의 여운이 깊다. 게다가 봉준호감독 최초의 2.35:1 비율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배경이며 인물들이 이 비율 때문에 영화가 한층 더 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비율에 대해 아는 게 있겠느냐만; 내 느낌을 좀 끼워맞추자면 그 와이드함 때문에 엄마의 고독함이나 아들을 위한 사투가 더 잘 다뤄진 듯한 느낌이 든다.
이미 공개된 스토리에 나는 '누가 범인일까?' '왜 그랬을까?' '엄마는 도준을 구할 수 있을까?' '도준은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며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지만 이런 나의 질문들은 전부 다 '소용없는' 질문들이 되었다. 범인에 대한 추측의 설레발이 빗나가고 어긋나면서 영화는 나를 계속 조이고 또 조였다. '누명'이라고만 철썩같이 생각해버리고 처음부터 진태가 범인일 것이다 라는 것에 대한 빗나감― 그도 그럴것이 불안정한 도준의 기억력을 진태가
알고 덮어씌웠을 것이다, 그래서 도준이 골프장에서 주워온 골프공을 일부러 진태가 남겼을것이다 하는 추측을 함과 함께,
영화를 보다보면 '아무도 믿지 마라 , 나도 믿지 마라.' 라는 진태의 말이 있었기에 역시 진태가 범인이구나 했었다 그러나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 뒤의 범인으로 내가 지목했던 할머니에 대한 빗나감,
그럼 당연히 그 뒤에 나왔던 할아버지가 범인이구나 하는 순간에 등장한 진실, 그리고 그 반전에 어안이 벙벙하기에 충분했다.
한편, 도준을 잠시 살펴보겠다. 영화의 중간쯤부터는 '도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혼란이 와 계속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그는 정말 바보인가, 아닌가.
엄마의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어디까지 기억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하는 것들이 그랬다.
영화 중간에 어린소년이 박카스 병을 들고 있는 장면은 도준이 교도소에서 면회 온 엄마에게
다섯살 때 엄마가 박카스에 농약을 타 동반자살하려 했다는 기억을 말하는 장면과 만나게 된다.
교도소에서 '바보'라는 말을 듣고 싸움에 휘말린 도준.
상처투성이 얼굴, 한쪽 눈이 반쯤 감긴 상태의 섬뜩한 얼굴로 갑자기 엄마에게 왜 농약을 먹여서 죽이려고 했느냐고 묻는다. 그동안 불안정했던 도준의 기억이 교도소에서 돌아오는데 이 장면 또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기억하지 말았어야 할 기억. 아마도 이 일 때문에 도준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여 지금의 모자란 상태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 장면을 기점으로 모자관계가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교도소에 가기 전 - 교도소 안 - 나온 후의 행동이 다르다. 도준은 교도소에 가기 전과 후가 조금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교도소에 가기 전에는 닭고기도 발라주고 약도 먹여주는 엄마에게 의존했지만 교도소에서 나온 후로는 혼자의 힘으로 밥을 먹는다.
손가락으로 닭고기를 뜯었던 도준은 이제 젓가락질도 잘한다.
게다가 전에는 엄마와 마주보고 잠을 잤지만 교도소에서 나온 후에는 엄마에게 등을 돌리고 잔다. 엄마는 한결같이 도준을 향한 쪽으로 잠을 잔다.
진범이 잡혔다는 말에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짓진실을 따라가는 엄마. 아들 대신 진범으로 잡힌 종팔이의 얼굴을 확인하러 간다. 그리고 역시나 종팔이는 장애가 있었고 그에게 엄마는 투명한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엄마는 있니?' 하고 묻는다. 그 물음에 고개를 도리질. '엄마 없어?' 말하면서 엄마는 눈물을 왈칵 터트린다. 엄마가 있는 도준대신 엄마가 없는 종팔이가 그곳에 있게 될테지만 엄마는 아무말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한다.
내 아들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던 종팔이를 그곳에 보내고, 종팔이의 '울지마라' 한 마디에 미어지는 가슴.
그리고 '마더'는 아들을 위해 고물상에서 '머더'를 한다. 이 장면이 광기어린 모성애가 극에 달하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피가 범벅된 엄마의 얼굴, 게다가 타닥타닥 타는 고물상, 활활 타오르던 불까지 더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 도준은 관광가는 엄마에게 고물상의 잿더미에서 발견한 엄마의 침통을 건넨다.
이 장면을 두고 같이 보러간 친구와 혼란스러워했었다. 완벽한 범죄를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잿더미를 뒤졌더니 거기에 엄마의 물건이 있었기에 주워서 건넨것일까...하는 것으로 말이다. 원래 도준의 대사에 결정적인 한마디가 더 있었는데 편집과정에서 그 장면을 제외시켰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지금의 나처럼 이런 생각도 해보고, 저런 생각도 하면서 그 답을 관객이 찾아보라는 것일 듯.
관광버스 안에서 엄마는 엄마 스스로 발견했다는 침을 놓는 부위,
나쁜 걱정과 꽉 막혀있던 모든 근심들이 쑥- 내려같다는 그 부분에 침을 스스로 놓는다. 이 장면에서 엄마 스스로 목숨을 끊는 줄 알고 덜컹했으나,
잠시 멈춰있던 엄마는 흔들흔들 관광버스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로 석양과 함께 격렬하게 섞여 들어간다. 마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과 기억을 배출시키고 석양과 춤사위에 몸을 던지듯...
뭐라고 정신없이 써댔는데 앞뒤도 안맞고, 여전히 어렵다. 느낌이 참 묘했다, 곱씹을수록 섬뜩하고 묘하고 아릿하기도하다.
뭐라고 표현해야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보고픈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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