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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가 전부다! 마더
hwangtejya 2009-05-31 오전 2:32:35 1257   [0]

영화를 보기 전에, 간간히 흘러나오는 영화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접하면서도 저는 도통 이 '마더'라는 영화가 어떤 영화일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봉준호가 누굽니까.

전설적인 단편 <지리멸렬>에서, 명랑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했던 사랑스런 <플란다스의 개>를 거쳐, 이후 한국 스릴러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수작 <살인의 추억>을 지나, 괴수영화라는 불가능해 보이던 장르로 대한민국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운 <괴물>에 도달한 감독아닙니까.

그런 감독의 차기작이라면 뭔가.... 좀 더 삐까뻔쩍하고, 기가 막히는 소재의 영화여야하는 것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런데 일단 제목부터 '마더'라니.

엄마.
엄마라는 소재로 할 수 있는 얘기는 몇 개 안되는데. 괜찮을까.

주연은 김혜자에 원빈. 닳고 닳은 두사람의 얼굴. 영화 출연이 흔치 않은 두 사람의 조합.

게다가 두 사람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는 새로운 역할도 아니고. 뭐지 이 캐스팅은. 

저능아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엄마가 고군분투하는 내용. 그게 뭐가 새로워?

저는 봉준호를 믿는 만큼 어리둥절했습니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요소들의 조합. 왜 이러지 이 사람이. 

 

그렇게 넋 놓고 영화를 보다가 그만 당해버린 겁니다. 뭔가 엄청난 것에.

이 영화에 단순히 정보 전달만을 위한 장면은 없습니다.

복선이니 상징이니 그런 것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서스펜스입니다.
(복선, 상징은 당연히 갖추고 있습니다ㅋ)

 

내용면으로 봤을때는 굉장히 평범하고 익히 보아온 듯 상투적이며 뻔한 시퀀스들인데

감독의 연출은 뭔가 굉장한 것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교묘하게 관객을 긴장시킵니다.

따지고 보면 단지 다음 단계로 이동하게 해주는 평범하고 뻔한 장면들이어서 어찌보면 영화에서 가장 재미없는 부분이기까지 한데도, 우리는 다 알면서 꼼짝없이 당하는 거죠.

(예고편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상당부분 영화 초반 장면이라는 것도 이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영화의 중요 부분이 아닌 초반의 몇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 넘치는 예고편을 만들 수 있다는 것)

 

헐리우드가 자랑하는 서스펜스의 제왕들, 이를테면 J.J. 에이브람스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보통 '낚시'라는 표현으로 이런 서스펜스를 폄하하기도 하지만, 사실 오락영화에서 서스펜스를 빼면 남는게 없지 않습니까.  서스펜스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습니다. 정말 고리타분한 얘기지만, '무엇을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관건인 거였습니다.

 

관객은 더 이상 영화를 보면서 떨지 않습니다. 긴장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보며 단련해왔는지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얼마나 기발한 반전들에 익숙해져 있었던가를 말입니다.

결국 재료로서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새로울 것 없는 반전아닌 반전, 얼핏 밋밋한 소재, 심지어 감독의 이전 영화에서 익숙히 보아온 패턴과 전개방식. (이를 테면 저능아의 취조와 현장검증, 과거에 자식을 살해하려했던 부모, 비오는 밤, 사건의 키워드를 제공하는 여고생, 죽었거나 납치된 자식의 환각을 보는 부모,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섹스씬, 느닷없는 유머)

 

감독이 노린 승부수는 소재나 시나리오의 기발함이 아니었습니다. 서스펜스였습니다.

이 서스펜스는 감독만이 할 수 있는 감독의 영역입니다. 연출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서스펜스인 거죠.

 

김혜자와 원빈의 훌륭한 연기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영화전체가 감독의 서스펜스에 꼼짝없이 휘둘려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요소'들은 감독이 만들어낸 서스펜스만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모든 작품을 뛰어넘는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모두가 <괴물> 이후의 또 다른 '기발함'을 기대하고 있을 때 감독은 유유자적하게 연출이라는 감독이 내밀수 있는 최고의 카드를 꺼내든 겁니다. 그 만큼 자신감에 차있었다는 말이겠죠.

 

헌데 한가지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 서스펜스라는 재미로 가득차있는 오락물을 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유쾌한 마음으로 자리를 뜨는게 아니라 앉은 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힘. 저는 그것이 캐릭터에서 왔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네러티브나 서스펜스를 진행시키기 위해 캐릭터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혜자와 도준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드는거죠.

우리는 이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게다가 완전범죄 영화!)를 통해서 그저 서스펜스의 쾌감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내면과 상처를 보고,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겁니다. 우리는 오락물을 본게 아니라 한 인간의 진솔한 드라마를 본 것이 되지요.

 

감독의 서스펜스는, 끝까지 파고 들어간 캐릭터에 더해져 그 힘이 증폭되고 진정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서스펜스가 서스펜스인지도 모르게 만드는 것. 가장 똑똑한 서스펜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봉준호는 야심만만하게도 자신의 연출력만으로 <마더>를 한국영화 최고의 서스펜스물로 등극시키려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그 시도가 유효합니다.

이런 멋진 감독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게 참 고맙네요.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2-01 12:49
ekduds92
잘읽었어요   
2009-07-19 20:37
kimshbb
혹시..   
2009-06-26 17:56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6-19 10:3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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