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무술장면은 볼만하다.. ★★☆
때는 1930년대, 불산의 영춘권 고수 엽문(견자단)은 가족과 조용히 지내려는 염원과는 달리 명성에 이끌려 도전해오는 무술 고수들로 인해 시시때때로 어쩔 수 없는 대결을 펼쳐야 한다.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불산이 일본에 점령되면서, 일본은 불산의 무술가들을 비열한 방법으로 격파해 나간다. 일본군에 의해 동료 무술가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되자, 엽문은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던 신념을 버리고 국민들이 무술을 통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영춘권을 대중화하고, 자신의 무술로 일본에 저항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한다.
중국인이 아니라면 <엽문>에서 기대하는 건 오로지 하나로 집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이소룡의 무술 스승이라고 하는 엽문의 무술을 보는 것. 소위 ‘액션기계’라고까지 불리우는 견자단은 이런 바람을 충분히 만끽하게 해 준다. 다른 무술가들, 또는 일본군 장교와의 대결 장면만이 아니라 혼자서 수련을 쌓는 장면에서조차 고수로서의 무술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보는 것만으로 일정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일본 유도 선수들과 1대 10으로 대결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할 정도로 유연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보이는 과도한 애국주의는 중국인이 아니라면 영화 관람에 어느 정도 부담을 느낄지도 모른다. 물론 중국 애국주의의 대상이 일본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애국주의자(!)들도 신나게 볼 수 있는 여지는 있겠지만 말이다. 침탈당한 과거를 뒤집어보며 침략군의 광포함과 자신들의 저항운동을 보여주는 것 자체를 문제로 삼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엽문>의 대립구도는 중국인 100% 대 일본 침략군 100%의 구도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중국인 내부의 대립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이건 일본군과는 상관없는 순수하게 중국 내부의 문제일 뿐이다. 영화 속 중국인은 예외 없이 일본군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며, 심지어 일본군 앞잡이조차 통역을 통해 끊임없이 중국 인민을 위해 일하는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마치 중국인이라면 조금의 이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로도 읽힌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때나, 티벳 문제와 관련해서 거의 광기에 사로잡히듯 흥분하는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어쨌거나 애국주의의 광풍이 불어대는 거대한 국가가 바로 이웃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불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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