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논란을 일으킬만한 소재를 쓴 영화였다.
보고 나서 드는생각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랬기 때문인지 이 영화를 비판하는 여러 네티즌 리뷰를 보고
제목에 감히 "오해" 라는 단어를써가면서까지 내 생각을 쓰고 싶었다.
전체적인 영화 평을 쓰기보다는 이 영화에서 이슈가 되고있는 주제와 내용 측면에서 접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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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현실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론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논란을 일으킨만한 소재가 쓰인만큼 네티즌들의 반응도 꽤 거세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완벽한 현실적 배경을 가정한 영화인만큼, 우리가 이 영화를 보았을때 처음 접근하는 측면은 현실적 측면이다.
"현실적으로 저게 가능할까?" 즉, "저게 말이 돼??" 이런 생각들이 먼저 들 것이다.
그 생각이 들 떄, 정상적인 도덕교육을 받은 우리로서는 영화에서 가정한 상황이 어이없고, 욕도 나올만 하다.
가장 중요한 금기를 깬 내용을 가정한 영화니까.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자.
과연 이 영화가, 이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내용을,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도덕적, 사회적 금기를 깬 내용을
현실적 측면에서 "제안하려고" 또는 적어도 "그냥 이런것도 있다는걸 보여주려고"
만든 영화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현실'과 관련된 측면에서 상황을 가정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사랑' 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통해
'인간 본연의 자아 실현' 이라는 이상과 '도덕과 금기가 존재하는 사회' 라는 현실의 괴리에 대한
다소 심오한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이다.
(그게 도대체 왜 '자아실현' 이냐고 묻기 전에 끝까지 읽어보자.)
현실보다는 이론에 가까운 영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어디에 도대체 그런 문제 제기가 있냐고?
먼저 캐릭터를 보자.
노덕훈의 캐릭터는, 정상적으로 사회화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여러명을 사랑할 수도 있다는 욕구를 억압하는
전형적인 현실적 남성상이다.
다만 특이한 것이 있다면 현실적 남성상 치고는 거의 주인아 한 여자만을 바라본다는 것.
(물론 이 설정도 주인아라는 캐릭터가 워낙 완벽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그는 사회의 일부일처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주인아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 질투를 느끼며 분노한다.
뭐 우리 사회에서 당연한 연애관을 지닌 남성이다.
그렇다면 주인아의 캐릭터는 어떨까.
우리가 결혼을 할 때, 한 사람만을 평생 사랑한다고 약속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
(물론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고 그게 당연하다)
살아가면서 적어도 마음 속으로는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면, 주인아는 그것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방법으로 그 본연의 모습을 실현하는 캐릭터이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살림과 직장 모두에 충실한 완벽한 여자라는
(실제로는 불가능할 정도의 완벽녀인 주인아의 캐릭터 설정만 보아도 이 영화가
현실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징을 가졌기 때문에 주인아는 여러 남자를 사랑한다는 본연의 욕구를 충족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이 본연의 욕구 충족을 나는 자아실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의 욕구는 사랑인데, 그 사랑이 쾌락적인 사랑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랑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주인아는 '완벽녀'라는 설정을 통해 사회적 금기를 넘어선 자아실현을 시도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영화속에서 둘은 사랑하지만 노덕훈은 사회화를 통해 본연의 욕구를 억압하는 반면
주인아는 그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점에서 둘은 갈등을 겪는다.
현실적으로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는 사람과
자신의 매력과 능력을 통해 사회보다는 자신의 본질에 순응하는 사람의 갈등인 것이다.
단순히 "아내가 남편을 두명 가지면 어떨까" 라는 질문으로 보기는 힘든 영화라는 생각이다.
물론 현실에 적용시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만 적용시켜보려고 하면
이 영화의 내용은 정말 허무맹랑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캐릭터 설정부터, 갈등 해결방식까지.
2. 이 영화는 금기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이 갈등에서 맞추어진 초점은 '금기' 가 아니라는 것이다.
금기는 어겼을 때에 사회적인 제제가 따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회적 제제를 전제하긴 하지만 어느 대목에서도 드러내지 않는다.
한재경과 주인아의 돌잔치에서 하객들이 진실을 알고 충격을 받는 대목이 나오지만,
영화는 그에 따른 제제를 보여주지 않고 바로 주인아가 미국으로 떠나버린 장면으로 이동한다.
전체적으로 보아도 불륜의 상황을 가정한 영화 치곤 그에 따른 사회의 반응보다는 개인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즉 이 영화의 관건은 개인이 사회적 금기를 깰 것이냐, 아니냐 라기보다는
개인 안에 내면화된 사회의 관습을 이겨내고 본연의 자아 실현을 할 수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
이다.
3. 이 영화는 문제를 제기할 뿐 해결하지 않는다.
결말을 봐도 이 영화에서 나타난 본질적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넘치는 사랑으로 누그러들었을 뿐이다.
이는, 이 영화에서 제기한 문제 자체가 우리가 말끔히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아와 덕훈의 갈등이 본질적으로 잘 해결되었다면,
각본가는 아무도 대답 못한 철학적 질문을 말끔히 해결한 셈이 된다.
이 영화에서 던진 문제는 우리가 평생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문제이다.
개인의 능력을 통해 규범과 관습을 극복하고 본연의 욕구를 드러내며 살 수 있을지.
물론 모두의 답은 '조화'일 것이다.
적어도 그 '조화'라는 추상적이고도 추상적인 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 '조화'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생각하며 살아야 되는지를 강조해주는 영화였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굉장히 인상깊게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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